...책이 내게 보여 준 새로운 세계는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이상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어서, 이 세계 속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기 위해 현재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느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일었다. 책에서 고개를 들고 내 방이나 옷장, 침대 혹은 창밖을 보았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 여행을 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내 앞에 나타날 것 같다가도 사라져 버리고,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더 찾고 싶게 만드는 시선을, 오랜 세월 동안 죄악이나 불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던 부드러운 시선을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되고 싶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아주 평범한 날에, 주머니 속에는 사용한 극장표와 담배꽁초가 들어 있고, 머릿속에서는 신문기사와 자동차 소음, 구슬픈 말들이 서로 부대끼는 가운데, 매일매일의 일과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갑자기 자신이 엉뚱한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발을 내디뎠던 그곳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유리창 뒤에 서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옅은 색보다도 더 옅은 색 속으로 녹아 없어졌다....

..그다음엔 베이올루 시립 병원에 들렀다. 그런데 아까 저쪽 병원에서 보았던, 서로를 칼로 찌른 친구들과 옥도정기(요오드팅크)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여자들, 팔이 기계에 끼거나 손가락이 바늘에 찍힌 견습생들, 버스와 정류장 사이에, 혹은 배와 부두 사이에 끼여서 실려 온 승객들이 여기에도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굉장히 조심해 가며 경찰에 진술을 했다. 내가 품고 있는 의혹을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한 경찰관을 위해 비공식적인 진술을 했던 것이다. 그 후 산부인과가 있는 위층에 올라가자, 이제 막 행복한 아기 아빠가 된 사내가 친절하게 우리 모두의 손에 라벤더 화장수를 뿌려 주었는데, 그 향기를 맡고 나는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불이 밝혀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했다. 너무나 간절히 소원하며 상상했기 때문에,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지저분한 하얀 벽 앞 희미한 오렌지색 전등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한순간 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너무나 가슴 벅찬 자유의 느낌이 밀어닥쳐서, 난 너무나 놀랐다. ‘모든 게 이렇게나 단순한 거였어.’라고 생각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본 내 방의 남자는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방으로부터, 집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어머니의 냄새로부터, 내 침대로부터, 22년 동안 살아온 내 인생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새로운 인생은 그 방을 떠나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그 방을 나와서 밤마다 그 방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한, 자난이나 그 나라, 둘 중 어느 쪽에도 가까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버스에 올라탔고, 수많은 버스에서 내렸다. 수없이 많은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버스에 올랐고, 버스에서 잠을 잤다. 밤낮으로 버스를 탔다. 작은 마을에서 버스에 타고 내렸다. 며칠 동안 어둠 속을 달리기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젊은 여행자는 미지의 영역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그를 새로운 세계의 입구로 데려다줄 길에서 쉼 없이 이동하는구나.

...의치를 한 어느 중년 남자는 "내 시계는 모바도라 절대 틀리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가 입을 벌리고 자고 있을 때, 나는 그 정확한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시간은 무엇인가? 사고다! 인생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사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 새로운 인생이다! 지금껏 이런 것을 생각해 낸 사람이 없었다는 데 놀라워하며, 나는 이 단순한 논리에 굴복하여 버스 터미널로 가는 대신, 오 천사여, 곧장 사고 현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천사에 관해, 그리고 그의 성숙하고 진지한 의붓오빠처럼 보이는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자난이 노점에서, 모퉁이 철물상에서, 한가한 잡화상에서 흥정 끝에 산 후 잠시 좋아하며 만지작거리다가 터미널 찻집이나 버스 좌석에 놓고 내린 허름한 물건처럼, 연약하고 허약한 말들로 이어 나갔다. 죽음은 모든 곳에 있었다. 그곳에 가장 많았다. 바로 그곳에서 죽음이 모든 장소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화면 안에 또 다른 텔레비전의 모습이 보였다. 그 화면 안에 또 다른 화면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푸른빛을 보았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그 무엇. 그렇지만 죽음은 아주 멀리 있었다. 빛은 우리가 탄 버스들이 돌아다녔던 광활한 벌판에서 하릴없이 맴돌았다. 그리고 아침, 달력에서 많이 보았던, 동트는 장면이 보였다. 이것은 천지가 창조되던 그 여명의 순간처럼 보였다. 낯선 마을에서 술에 취해, 애인은 호텔 방에서 자고 있고, 인생이 무엇인지에 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양복점에 앉아, 갑자기 인생이 무엇인가를 화면으로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미적미적거리는 해가 채 다 내리쬐지 못한 언덕을 오를 때, 나린 박사는 내게 물건들도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물들도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들을 저장해 두는 부분을 갖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이해하고 속삭이며 서로 간에 비밀스러운 하모니를 만든다네. 그 음악이 바로 우리가 세계라 부르는 것을 형성하고 있지." 하고 나린 박사는 말했다.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듣고 보고 이해할 수 있어." 땅에서 주운 마른 나뭇가지에 석회질이 묻은 것을 보고 그는 이곳에 개똥지빠귀들이 둥지를 틀었다는 것을, 진흙의 흔적을 보곤 이 주 전에 내렸던 비에 나뭇가지가 어떻게 부러졌을지를 내게 설명했다.

..천사여, 두 개의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아마시아시에서, 한밤중에 진열장 앞에 선 채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 아이들에게 묻곤 하잖아. 얘야, 왜 우니 하고. 사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울면서도, 아이는 물어 보는 아저씨에게 파란색 연필깎이를 잃어버려서 운다고 말하지. 그와 비슷한 슬픔이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던 나를 덮친 거야. 무심코 살인자가 되고 싶었을 때 내게 엄습했던 그 느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나는 영혼 깊은 곳에서 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느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건과 가게에서 해바라기 씨를 살 때, 아니면 나 자신을 비춰 볼 거울 몇 개를 식료품점에서 살펴볼 때, 아니면 냉장고와 난로들로 가득한 행복한 삶을 볼 때, 내 속에 있는 저주스럽고 사악한 목소리가 (봐, 이빨을 드러내는 비열한 검은 늑대를) 으르렁대면서 너는 유죄라고 외쳐 댄다. 하지만 천사여, 나도 한때는 인생을, 선행을 믿었어.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믿을 수 없는 자난과, 내가 믿는다면 내가 곧 죽여 버려야 할 메흐메트 사이에 끼어서, 발터 권총과 행복한 삶에 관한 환상 외에는 달리 매달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 불신과 불안이 극단적으로 얽혀 있는 계획에 바탕을 둔 오리무중의 상상 말이야. 내 마음속에는 냉장고들, 오렌지 짜는 기계들, 월부로 판매하는 안락의자들의 이미지가 소리 없는 통곡을 반주로 해서 차례로 흘러 지나갔어.

..한순간 마음속에서 질투심이, 사악한 짓을 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났다. 그러나 나는 더욱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아챘다. 내가 지금 총을 꺼내서 그의 눈동자를 쏜다 해도, 그는 책을 베끼는 행위를 통해 이미 영원한 시간의 균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정지한 시간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존재해 나갈 것이다. 쉼 없이 불안에 떠는 나의 영혼은 목적지를 잊어버린 버스 운전사처럼 어디로든 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책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어쩌면 모든 책이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책은 실제로 책 속에 존재하지는 않으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말을 통해 내가 그 존재감과 지속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일부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세상의 정적 또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그 무엇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정적과 소음도 그것 자체는 아니야."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내가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번 다른 말로 설명하고자 했다. "좋은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일종의 무(無), 일종의 죽음을 설명하는 글이지…… 그렇지만 단어들 너머에 존재하는 나라를 글과 책 밖에서 찾는 것은 헛일이야." 그는 이것을 책을 반복해 쓰면서 알았고, 충분히 배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생과 나라를 글 밖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나를 죽이려 했던 살인자는 서툴렀어. 어깨에만 상처를 입혔거든."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단지 내 온 인생을 바꾸어 버린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상처 입은 내 인생에 깊은 어떠한 의미를 주려고도, 위안을 찾으려고도, 더욱이 슬픔의 아름답고 존중할 만한 부분을 찾으려고도 절대 시도하지 않았다. 체홉에게, 폐렴에 시달리는 그 재능 있고 겸손한 러시아인에게 사랑과 경탄 이외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나 헛되이 지나 버린 상처받고 슬픈 인생을 체홉주의라는 감성으로 미화시키고, 인생의 빈곤함에 대해 으스대면서 아름다움과 숭고한 감정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위안을 구하는 이러한 독자들에 응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약삭빠른 작가들을 혐오한다. 이 때문에 나는 많은 현대 소설들을 읽다가 말고 도중에 덮어 버리곤 한다. 아, 말[馬]과 대화하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슬픔에 가득 찬 남자. 아, 자신의 사랑을 하염없이 물을 주던 화분 속 꽃들에게 바친 무력한 귀공자. 허름한 의자에 앉아서 절대 오지 않을 편지를, 옛날 애인을 또는 이해심 없는 딸을 기다리는 예민한 남자. 우리에게 계속해서 상처와 아픔을 전시하는 이 주인공들을, 체홉을 투박하게 모방하고 훔쳐서 다른 지형과 기후에서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작가들도 사실상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보시오, 우리를,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보시오, 우리는 얼마나 예민하고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특별한가요! 고통은 우리를 당신들보다 더 섬세하고 감성적이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도 우리처럼 되고 싶고, 당신의 불행을 승리로, 특히 우월함으로 바꾸고 싶지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우리를 믿으십시오. 우리의 슬픔이 인생의 평범한 즐거움보다 더 멋지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내 손에 들린 사탕 그릇을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말해 두자. 내가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기억한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은제 사탕 그릇에 거울과 같이 방 전체와 나, 그리고 라티베 아주머니가 동그랗게 휘어져서 비쳐 있었다. 얼마나 마법 같은가. 한순간 세상을, 우리의 눈이라고 말하는 열쇠 구멍을 통해서가 아니라, 잠시 동안 일종의 다른 이성의 렌즈 체계를 통해 보는 것이. 영리한 아이들은 이것을 이해한다, 영리한 어른들은 이에 미소 짓는다. 독자여, 내 이성의 반은 다른 곳에 있었고, 나머지 반은 또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었다. 당신들에게도 무엇인가를 기억하려다가, 기억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기도 전에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기억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일이 일어나는가.

...나처럼 인생을 망친 사람들에게 슬픔은 영리해지려고 노력하는 분노로 나타난다. 그리고 영리해지려는 열망은 결국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것은 잔혹함이 아니라 그냥 무대에 있고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배우였다. 누군가 죽어도 반드시 죽은 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그것은 각본이 있는 일 같았고, 다들 비극에 아이러니가 녹아 있는, 저마다 외우다시피 한 대사가 있었으며, 마치 죽음 자체의 현실감을 포낭째 파괴하려는 듯 다들 죽음을 다른 말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체를 걷어찼다.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잘랐다. 그들은 보졸의 은어를 썼다. 그들은 테드 라벤더의 보급품인 진정제에 관해서도 그 불쌍한 놈이 전혀 감각이 없다고, 이 얼마나 진정된 것이냐고 이야기들을 했다.

..빗속에서 잠깐, 크로스 중위는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마사의 회색 눈과 마주쳤다.
..그는 이해했다.
..그는 매우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이 속에 가지고 다니는 것들. 남자들이 하거나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

...어떤 면에서는 딸아이가 맞는 것 같다. 나는 잊어야 한다. 하지만 기억하는 일의 요점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은 인생 속 어딘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에서 글감을 찾아 가져온다. 기억의 차량이 당신 머릿속의 원형 교차로에 흘러들어 거기서 한동안 맴을 도는데, 그러면 이내 상상이 끼어들고 다 같이 뒤섞이다 차량이 천 갈래의 서로 다른 길로 제 길을 서두른다. 작가로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길 하나를 골라 운전해 가면서 당신에게 닥쳐오는 것들을 그대로 적는 것이다. 그게 진짜 강박이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마흔세 살, 전쟁은 반평생 전의 일이 되었으나 기억하는 일은 아직도 그것을 현재로 만든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은 가끔씩 이야기로 이어져 그것을 영원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지난날을 미래와 이어주려고 존재한다. 이야기는 당신이 있었던 자리에서 당신이 있는 자리로 어떻게 다다랐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슥한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는 기억이 지워진, 이야기 말고는 기억할 게 없는 영원의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위기가 극에 다다르면─악당이 충분히 악하고 선인이 충분히 선하면─지난 세월 내 안에 쌓아온 용기의 저장고를 군말 않고 두드릴 생각이었다. 나는 용기가 우리에게 유산처럼 유한하게 주어지므로 그걸 절약의 자세로 은행에 넣고 그 이자로 도덕적인 자산을 꾸준히 부풀려 훗날 계좌에서 인출해야 할 때를 대비하는 게 옳은 줄 알았던 것 같다. 위로가 되는 이론이었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그날그날의 자질구레하고 성가신 행동을 죄 감면해주었다. 그것은 번번이 비겁해지는 사람에게 희망과 체면을 불어넣어주었다. 그것은 미래를 청산하면서 과거를 정당화했다.

...그 남자의 자제력은 대단했다. 그는 결코 캐묻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거짓말이나 부정을 하는 입장이 되도록 몰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의 과묵함이 아직도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미네소타의 전형적인 면이었다고 보는데, 내가 만약─팔이 네 개에 머리가 셋인─끔찍한 불구의 몸으로 배회하고 있었더라도 그 노인은 분명 팔과 머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그건 단순한 예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을 한참 뛰어넘어, 그 남자는 말로 충분하지 않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내 문제는 논의의 범위를 이미 넘어 있었다. 그 긴 여름 동안 나는 다양한 논쟁을 거듭하며 모든 찬반양론을 살폈고, 그것은 이제 순수이성 행위로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였다. 지성은 감성에 맞서지 못했다. 양심은 나더러 달아나라고 말했지만 어떤 비이성적이고 강력한 힘이 저항해 마치 그 육중한 무게로 나를 전쟁으로 떠미는 것 같았다. 결국은 멍청하게도 수치심에 이르렀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멍청한 수치심. 나는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랐다. 내 부모님도, 내 남동생과 누이도, 심지어 고블러 카페에서 죽치고 있을 사람들도. 나는 팁 톱 오두막에 머물러서 부끄러웠다. 나는 내 양심이 부끄러웠고 양심적인 일을 하느라 부끄러웠다.

..20년이 지나 돌아보니 나는 가끔 그 여름의 일들이 다른 어떤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살아보기도 전에 삶이 존재하는 차원, 그리고 그 삶이 나중에 진행되는 차원. 그 일은 지금껏 한 번도 현실 같지 않았다. 팁 톱 오두막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내 살갗을 빠져나와 지근거리를 맴돌고, 그러는 사이 내 이름과 얼굴을 한 웬 딱한 얼간이가 스스로는 이해도 못 하고 이해할 생각도 않는 미래로 나아가려고 낑낑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바로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전쟁에 갈게요─가서 사람을 죽이고 그러다 어쩌면 죽을게요─쪽팔리기 싫으니까요.

..전쟁을 일반화하는 건 평화를 일반화하는 것과 같다. 거의 모든 게 진실이다. 거의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다. 핵심을 보면 전쟁은 아마 죽음의 다른 이름일 것이고, 진실을 말하는 군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말하겠지만, 죽음이 가까워지는 만큼 삶이 가까워진다. 화력전이 끝나면 항상 살아 있다는 엄청난 기쁨이 든다. 나무들이 살아 있다. 풀, 흙─모든 게 살아 있다. 당신 주변의 사물들이 온전히 살아 있고, 그것들 사이에서 당신이 살아 있고, 그 살아 있음이 당신을 전율하게 만든다. 당신은 당신의 살아 있는 자아를 강렬하게, 사무치게 깨닫는다─당신의 가장 진정한 자아, 당신이 되길 바라고 그 간절함에 언젠가 되고 말 인간. 악의 한가운데서 당신은 선한 사람이길 바란다. 당신은 품위를 바란다. 당신은 정의와 관용과 인간적인 화합을, 당신이 바라는 줄 몰랐던 것들을 바란다. 거기에는 일종의 관대함, 일종의 독실함이 있다. 좀 터무니없지만,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만큼 당신이 살아 있는 때도 없다. 당신은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제 막, 마치 처음인 양 당신은 당신 자신과 세상 속에서 으뜸인 것, 잃어버릴지 모를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저물녘, 당신은 참호에 앉아 분홍빛의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넓은 강을 마주하고 저 너머 산들을 바라보면서, 비록 아침에는 저 강을 건너 산에 들어가 끔찍한 짓들을 해야 하고 어쩌면 그사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강물에 비친 고운 색깔을 꼼꼼히 살펴보는 자신을 깨닫게 되고, 해가 지는 모습에 경이감과 경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세상이 따를 수 있었고 언제나 따라야 했지만 이제는 따르지 않는 방식에 대한 열렬하고 아픈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그녀가 겪은 일은 그들 모두가 겪었던 일이라고 랫은 말했다. 깨끗한 몸으로 건너와도 한번 때가 묻으면 그 뒤로는 절대 되돌릴 수 없어. 정도의 문제지. 멀쩡하게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거야. 메리 앤 벨의 경우 베트남이 마약처럼 강력한 효과를 낸 듯했다. 위험하단 걸 알면서도 주삿바늘을 찌를 때 오는 알 수 없는 공포와 알 수 없는 환희의 뒤섞임. 엔도르핀이 돌기 시작하면 그다음엔 아드레날린이 돌고, 그러는 사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달빛의 야경에 스르르 동화된다. 위험과 친해진다. 마치 지구의 다른 쪽 반구에 가닿듯 자신의 저쪽 모습을 접하게 되고, 그러면 하염없이 시간을 끌면서 여행길이 어디로 이끌리든 몸을 내맡겨 자기 안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싶어진다. 나쁘지는 않아, 그녀는 말했다. 베트남은 그녀를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더한 걸 바랐고, 즉 그녀 자신의 미궁으로 더 깊이 파고들길 바랐고, 얼마 안 가 그 바람은 필요가 되더니 그 뒤에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비가 어찌나 그치질 않던지. 한기가 어찌나 뼛속에 스며들던지. 때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일은 밤새 앉아서 뼛속의 한기를 느끼는 일이었다. 용기가 언제나 예, 아니요의 문제였던 건 아니다. 때로 그것은 한기처럼 정도의 문제로 다가왔다. 때로 어느 선까지는 매우 용감하다가도 그 선을 넘으면 별로 용감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놀라운 일을 해내다가도, 적의 포화 속을 전진하다가도 다른 상황에서는, 별로 나쁘지 않다 싶은 상황인데도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똥밭에서 보낸 그날 밤처럼 때로 용기와 비겁함은 뭔가 작고 시시한 차이가 있었다.

..총에 맞는 건 일말의 자부심을 건질 수 있는 경험이어야 한다. 마초적인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다만 그 일에 관해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총알이 주먹처럼 단단하게 날리는 타격, 숨을 토하고 콜록거리게 만드는 그 충돌, 웬일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들려오는 총소리, 그리고 아득한 느낌, 당신 자신의 냄새, 이 직후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할 일들, 작고 흰 조약돌 내지 풀잎에 주목하는 당신의 눈길과 그때 비로소 당신에게 드는 생각, 이런, 저게 내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는 거구나, 저 조약돌, 저 풀잎, 즉 당신을 울고 싶게 만드는 것들.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알맞지 않다. 나는 알맞은 단어를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쪽팔림이 느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치심이 그 일의 일부여서는 안 된다.

..지금은 1990년이다. 나는 마흔세 살, 4학년 아이에게는 불가능해 보였을 나이이지만 1956년에 머물러 있는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면 중요한 면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때 나는 티미였다. 지금은 팀이다. 하지만 본질은 똑같이 남아 있다. 나는 헐렁한 바지나 스포츠머리나 행복한 웃음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나는 내 눈을 잘 안다─카메라를 보고 웃는 티미는 여지없이 지금의 팀이다. 몸 안에 또는 몸을 뛰어넘어 무언가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인간의 삶은 전체가 한 덩어리이며 마치 스케이트 날이 빙판 위에 그리는 고리(loop) 같다. 어린아이, 스물세 살의 보병 병장, 죄책감과 슬픔을 아는 중년 작가.

..그녀는 때로 놀라운 얘기를 했다. "한번 숨이 붙은 건," 그녀는 말했다. "영원히 죽지 않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 일이 끝난 뒤 기숙사에서 숙제를 하고 그것을 대학에 보냈다. 지도 결과가 온 날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복습을 했다.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 그 결과를 평가받는다는 기쁨을 태어나서 처음 맛본 것 같았다.

..두 시간의 연습이 끝난 뒤 멤버들과 싸구려 술집에 가서 한잔할 때가 나오키에게는 가장 편안했다. 여자 이야기,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대한 불평, 패션 이야기. 이 세상 다른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나오키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들 수 있었다. 츠요시 사건 뒤로 처음 맛보는 청춘의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나오키가 오랜 시간 접하지 못했던 세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이었다.

.."그렇다고 우리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는 건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 난 이렇게 하면서 자기들은 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엽서 한 장이라도 보내주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우린 잊고 싶어도 미키의 상처를 볼 때마나 생각이 나.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점점 잊어가지. 그래서 우린 더 상처를 입어. 우린 이 세상에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잠깐 위안을 얻을 수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만큼 나는 그를 증오했다. 그는 나의 지로를 죽였다.
..내 마음속에 살고 있던 지로를 무참하게 지워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격이란 개인의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특징의 집합체이다. 유전적 소양에 근간을 둔 성격은 흔히 아동기에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다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가 되면 완성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인을 괴롭히면 성격장애로 판정 나게 된다. 특히 개인의 행동 및 내부 경험이 자신이 속한 문화적 규범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될 때 성격장애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인지, 정서, 대인 관계, 충동 조절 등에서 장기간 지속적인 문제를 보인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은 언제나 공격적 충동에 취약하다"고 가정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위험한 수위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표출 혹은 배수돼야 하는 공격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모든 형태의 폭력은 공격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표현이며,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적절하게 발산하지 않을 때 위험한 수위로 축적된다는 것이다....

..내재된 불안, 두려움, 좌절 등과 같은 내적 갈등의 해결책을 폭력적 행동에서 찾는 사람이 저지르는 살인을 ‘감정적(catathymic) 살인’이라고 한다. 이는 스위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한스 마이어(Hans W. Maier)가 소개한 용어로, 그리스어인 kata, thymos(분노, 격앙)에서 유래했다. 이 용어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적절한 해석은 ‘감정에 따라서’이다. 심리학자들(Gayral, Millet, Moron&Turnin, 1956)은 기질적 원인에 의하지 않은 감정적 폭발을 ‘감정적 위기(crises catathymiques)’라고 하여, 이러한 감정적 폭발이 수분에서 수일까지 지속된 후에는 갑자기 멈춘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감정적 위기는 일시적 통제 불능 상태로 볼 수 있다. 마이어에 의하면 감정적 살인은 두려움이나 불안과 같은 강한 감정을 수반하는, 뿌리 깊은 콤플렉스에서 유발된다. 이러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해야만 두려움이나 불안 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집착적 사고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폭력적 행동은 외견상 보이는 의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들의 사고는 대부분 망상적 특성을 가지고 논리적 추론이 허용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