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p. ...나는 가정 속에 나타난 사회주의 또는 내부적으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파편과 부스러기를 모아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나는 항상 인간…… 하나의 인간이라는 작은 공간에 매료되곤 한다. 사실 모든 역사가 그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146p.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시겠어요? 전 지금 우리의 그때 그 삶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전 저 자신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불쌍해요……
152p.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저는 미쳐갔어요. 미치면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낚싯줄처럼 거칠어져요. 제일 먼저 미치는 건 머리털이더라고요....
157p. ...시골 사람들은 뭔가 바뀌는 것을 두려워해요. 왜냐하면 뭔가 바뀌고 나면 항상 남자들이 병신이 되어 돌아왔거든……
175~176p. ...선생께선 사람을, 사람의 진심을 지나치게 신뢰하시는 것 같더군요. 괜한 짓을 하시는 겁니다. 역사는 사상의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역사를 기록하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의 진심은 못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모자를 걸어두는 그런 못이요……
237p. ...상점 매대마다 햄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꿈꿨죠. 그 햄들이 소련의 가격으로 팔리고 정치국 위원들도 그 햄을 사기 위해서 모두와 똑같이 줄 서는 모습들을 상상했어요. 햄은 모든 것의 기준점이었어요. 러시아인들은 햄에 대해 실존적 사랑을 느끼거든요. ‘신들에게는 죽음을! 공장을 노동자에게! 땅은 농부에게! 강은 수달들에게! 땅굴은 곰들에게!‘ 가두시위나 인민대표대회 중계는 멕시코 드라마를 훌륭하게 대체했죠……
307p. ...그 사람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임신한 여자가, 무엇 때문인지 항상 불만이 가득했던 저 여자가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해서 저러는 걸까? 도대체 당신은 뭐가 아직도 부족하냐고?‘ 그런데 저는 그냥 책장을 넘긴 것뿐이었어요…… 저는 그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아주 기뻤고, 나중에는 그가 내게 없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매우 기뻤어요. 제 인생은 항상 저금통 같았어요. 가득 모아두면 없어지고, 또 모아두면 없어지는.
333p. ..저는 말의 노예랍니다.…… 저는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요. 항상 사람의 말을 기대하죠. 모르는 사람에게서도요. 모르는 사람에게서는 더 많은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은 아직 기대해볼 만하거든요. 저도 말이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결심하죠…… 준비가 되어야만 하죠. 제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제가 꺼내놓은 이야기가 있던 지점에서는 더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게 돼요. 그곳엔 빈 공간이 생겨요. 전 꺼내놓은 그 추억을 잃게 돼요. 그 지점에는 일시적으로 구멍이 생겨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그 추억이 되돌아오죠. 그래서 저는 침묵을 고수하는 편이에요. 모든 걸 제 속에서 다듬고 있어요. 통로나 미로, 그리고 굴을 만들어가면서요……
334p.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자기 연민이 남아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아직 내면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지 않았다는 의미예요. 그 사람은 아직 사람들로부터 떠나지 않은 거예요. 사람들을 떠나면, 그 사람에게 더이상 ‘사람‘이 필요치 않게 되거든요.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443p. ..전 다니지 않아요. 정치적 쇼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걸 굳이 해명하고 싶지도 않고요. 시위는 가장 값싼 허세예요. 솔제니친의 가르침대로 우리부터 먼저 거짓 위에서 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것 없이 우리는 1밀리미터도 더 전진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 없이는 그저 원을 빙빙 돌게 될 거예요.
484p. ..러시아의 삶은 악하고 하찮아야 해. 그래야 영혼이 깨어나거든. 그래야 자신들이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야. 삶이 더러워지고 피투성이가 되면 될수록 영혼이 움직일 공간이 넓어지는 거야……
523~524p. ...전 태어날 때부터 머릿결이 좋았어요. 하지만 전 제 아름다움에 대해 잊은 지 오래예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온몸이 물에 퉁퉁 불어버린다고 하더군요. 그것처럼 제 몸에 아픔이 스며들었어요. 전 제 몸을 부정하는 것 같아요…… 영혼만 남았어요……
530p. ..전쟁이 필요하다고 봐요. 어쩌면 인간다운 인간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만 ‘인간‘을 보았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선‘이 부족해요.
542p. .."용 한 마리가 숲속을 산책하다 곰을 만났다. 용이 말한다. ‘곰아, 난 8시에 저녁을 먹어. 그러니 그때 와, 내가 먹어줄게.‘ 그런 뒤 계속 길을 가는데 뛰어오는 여우가 보인다. 용이 말한다. ‘여우야, 난 7시에 아침을 먹어. 그러니 그때 와, 내가 먹어줄게.‘ 용이 또다시 가던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토끼 한 마리가 깡충거리며 다가온다. 용이 말한다. ‘토끼야, 잠깐 서봐. 난 2시에 점심을 먹어. 그러니 그때 오렴, 내가 먹어줄게.‘ 그때 토끼가 앞발을 들고 서서 묻는다. ‘저, 질문이 있는데요.‘ ‘해보렴.‘ ‘안 가도 될까요?‘ ‘그럼, 안 와도 돼. 그럼 명단에서 너의 이름을 지울게.‘" 하지만 실제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제기랄!
544p. ...체호프가 쓴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매일 자신의 몸속에서 노예의 피를 한 방울씩 짜내야 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도, 옷도, 생각도 모두 아름다워질 것이라고요. 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정반대요! 때때로 사람은 노예가 되고 싶어해요. 그걸 좋아하기도 하죠. 사람의 몸속에서 사람 한 방울을 짜내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