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뭐라고 할까요. 남자들은 흔히 자기의 의지를 시험해 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머리는 별로 우수하지 않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어떤 지위에 오른 사람들의 경우, 그 과정에서 자기 의지를 과시해 보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선 자기만족을 얻을 수가 있겠지요.

...병호는 그때까지 흔들리던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윽고 알 수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불행한 행동이 그를 노하게 한 것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산 위에 흐릿하게 떠 있는 워커힐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저런 데서는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이상하다. 감옥 문이 보이네. 감옥에서 나오던 날도 이렇게 눈이 왔었는디…… 역시 나한테는 거그가 좋아. 거그 들어가 있으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거든. 지리산 더덕은 역시 맛이 있어. 그걸 고추장에 찍어 먹으문 맛이 그만이지. 치알봉 올라가는 비탈에 봄이면 온통 빨갛게 피는 그 꽃들, 이름이 뭐드라. 늙어서 이젠 생각이 잘 안 나는군. 그 꽃을 따먹고 배가 아파서 죽을 뻔했었지. 그건 먹어서는 안 돼. 벌써 옛날 일이야. 아, 저기 감옥 문이 열리네. 아, 저건 우리 어멈하고 아들이 아닌가.

..그의 슬픔은 단순한 슬픔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외로운 방랑객이 오랜 여행 끝에 고향에 돌아와 새삼스럽게 자신의 비참함과 생의 허무함을 깨닫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무엇을 찾아 지금까지 헤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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