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 모음 북까페에 가서 맛있는 홍차라떼를 먹으며 집에서 들고나온 책을 본다. 어찌나 그애는 책을 빨리 보는지.. 도대체 글씨를 제대로 읽기나 하는 것인지.. 한시간 반 만에 읽어버리고 난 '말과활'에 지젝편을 보다가 잠들었다. 지젝은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다시 잡아 자본주의를 더 철저하게 이용하고있는 이 세태에서 혁명은 수정이 아니라 새로이 다시 쓰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아무튼 계속 줄만 치다가 의자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숨자고 일어났을때 춥고 감기끼가 있었지만 벼르고 있었던 산울림 소극장의 연극공연을 보러가기로 결심하고 둘이 열심히 걸어갔다.

워낙 유명한 연극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책도 반정도 읽었었다. 다는 읽지 못하고 이게 뭐지 뭐지 하면서읽었던 기억이 난다. 부조리극이란 말마따나 계속 그들이 지껄이는 말도 안되는 말을 듣는 지겨움을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했는데,, 극으로 만들어진 그 작품은 생생히 살아있었다. 무지렁뱅이같은 자들의 한없는 기다림의 놀이들. 책으로 보았을때의 그 암울함이 연극속에서는 어이없음는 말들의 장난과 대사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고고와 디디는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그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서로함께 보낼뿐이다. 고도는 얼핏보면 그들보다 지위가 높은 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마냥 그를 기다릴뿐 그를 찾아서 떠난다거나 하지 않고 그저 매일 만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서로의 말과 장난으로 시간을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마치 그들은 감옥에 갇혀서 놀것도 없고 볼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서로를 가지고 노는 것에 몰두한다. 그들은 한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인간이 가진 내면의 목소리끼리의 만남같이도 느껴진다. 기다림의 지친 그들은 그저 죽자고 말하기도 한다. 기다림 역시 그들에게 강렬한 삶의 희망을 주는 기다림이 아닌 것이다.

그런 그들앞에 포조와 럭키가 나타난다. 포조는 럭키를 마치 동물다루듯 함부로 부린다. 그런 럭키는 내면이 없거나 지적으로 떨어진 인간으로 고고와 디디는 지켜보지만 럭키가 생각했을때 엄청난 방언같은 얘기들은 좀 섬뜩하다. 포조는 럭키를 인간이하로 취급하고 있지만 럭키의 눈물과 쏟아지는 얘기들은 불행한 노예의 내면을 보여준다.

 왜 포조는 눈이 멀었나..? 그리고 포조와 디디는 왜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가? 고도가 오지않는다고 말하는 그 아이는 왜 동일한 아이가 아니인가? 연극은 왜 그런지 알수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설명과 이해따위는 없다.  

극이 끝나갈쯤 고고는 '습관은 귀를 틀어막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기다림이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 그들은 기다리지 않을 수도 기다릴 수 없는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귀를 틀어막고 어제인지 오늘인지 알 수 없는 시간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인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르는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시간을 죽이고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보낸 오늘 하루, 스스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오늘  나의 하루는 과연 무엇을 기다리며 흘러간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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