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 개정판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 11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윤희기.박찬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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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의 경제적 문제 (1924년) 

 프로이트는 인간은 긴장, 흥분량을 감소시켜 안정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고통 그 자체가 목표인 것 경우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조히즘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정신생활 감시하는 파수꾼이 마약을 먹고 행동 불능이 된 상태, 즉 쾌락원칙이 마비된 상태를 본 논문에서 탐구한다.  쾌락원칙에 반하는 비경제적 심리가 있다는 얘기다.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에 대해 죽음본능과 생명본능인 쾌락원칙과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보았다. 페이너는 '열반원칙'을 들어 흥분의 상태를 무로 돌리는 것, 다시 말하면 유기체의 생물성이 무기체로 돌아가는 것이 안정성을 유도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곧 죽음본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본능이 어떠한 변형을 일으키는데, 이 변형의 원천은 리비도이다. 프로이트는 열반원칙이 변형된 것이 쾌락원칙이며, 이 변형의 요소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 요소의 투입으로 보았다. 프로이트가 말한 질적 요소란 '리듬', '시간의 변화', '자극량의 부침'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이전에는 쾌락원칙을 양적요소만 고려했다면 이제는 질적 요소들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리비도의 요구를 반영하여 쾌락원칙이 되고, 외부세계의 영향을 표현하기 위해 현실원칙이 도입된다고 보았다. 

 열반원칙, 쾌락원칙, 현실원칙은 각각의 목적에 따라서 작용할 뿐이고, 열반원칙은 자극의 양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쾌락원칙은 질적인 특성을 고려하고, 현실원칙은 자극의 방출을 지연시키고 긴장으로 인한 불쾌감을 잠정적으로 묵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마조히즘의 세 가지 형태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이 세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먼저 <성감 발생적 > 마조히즘이다. 

이는 보다 생물학적이고, 체질적인 측면의 마조히즘으로 고통과 불쾌로 인한 긴장이 있을 때 리비도의 공감적 흥분이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유기체 속에서 리비도가 죽음이나 파괴본능을 만나 무기체적 안정상태로 만들고자 리비도가 파괴 본능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변형시키려고 그러한 본능을 외부의 대상으로 돌리고자 한다고 보았다. 그 본능이 정통 사디즘이고, 그 본능의 다른 일정량은 내부에 남아 성적 흥분의 도움으로 리비도적으로 묶이게 되면 그것이 최초의 성감 발생적 마조히즘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말한 '성감발생적' 마조히즘은 성적취향의 유래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 여성적 마조히즘 > 의 형태는 주체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프로이트는  성감발생적 마조히즘의 발전 단계에 따라 정신적으로 변한 다는 것을 연구했는데, 그는 그 기원을 토템(아버지)에게 잡혀먹힐 것 같은 공포에 기원하고,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싶은 욕망은 그 공포 뒤에 오는 사디즘적 단계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거세공포 후에 '성기기 조직의 침전물'로 마조히즘적 환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성적 마조히즘은 자신을 여성으로 위치시킨다. 남성의 경우 자신을 작고 무력한 어린아이와 같이 취급받기 원하는 환상이 작용한다. 또한 그들은 거세당했고, 성교를 당했으며, 어린 아기를 낳았다는 의미로 여성적 자리에 위치시킨다. 

 세 번째 형태는 <도덕적 마조히즘>이다. 

도덕적 마조히즘은 성감발생과 여성적 마조히즘이 대상을 있는 것과 달리 '고통'그 자체가 문제시 된다. 프로이트는 죽음본능이 내부로 투사된 것이라고 말하고 끝내고 싶지만, 연구를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에게 <무의식적 죄의식>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의식적 죄의식이란 우리가 '병' 속에 머무려는 고집, 즉 신경증의 고통은 마조히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 한 형태의 고통이 다른 형태의 고통에 의해 대치”되고 있으며, “고통은 일정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라깡의 '증상은 다른 증상'에 의해 대체될 뿐이라는 언명은 프로이트의 위 와 같은 언급에 기반하는 것 같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죄의식'을 '처벌에 대한 욕구'라고 환자에게 말한다면 저항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신경증자에게 고통은 그냥 고통이 아니라 주이상스이다. 라깡은 이러한 측면을 환자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힘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프로이트는 이 무의식적 죄의식을 '양심의 기능'을 하는 초자아의 속성과 연결시킨다. 초자아는 외부세계와 이드의 대변자이지만, 탈성화되면서 직접적인 성적 목표는 벗어나 양심의 기관으로 활동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이디푸스콤플렉스가 극복된다고 보았다. 초자아는 감시, 힘, 엄격함, 벌주는 태도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분열로 인해 그 가혹함이 증대된다. 초자아는 마치 외부세계의 인물들 처럼 강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외부세계의 대변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개인적 윤리의식, 도덕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배후에는 부모가 있다. 부모의 개인적 의미는 사라지지만 부모의 남겨놓은 이마고는 선생님, 권위자 등의 인물들과 결부되고, 이러한 과정 끝에 내투사가 아닌 외부의 마지막 인물이 세워진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신'과 결부되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 본다면 인간은 '신'을 부모의 이마고로 간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한편, 도덕적 마조히즘은 강력한 억압 속에서 오히려 <죄가 되는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죄를 지어 속죄를 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도덕적 마조히즘은 초자아의 사디즘과 자아의 마조히즘의 결합하여 자신에게 해가되는 일을 수행한다. 탈성화된 초자아는 도덕적 마조히즘의 귀환으로 성애적 요소가 도입되는 것이다. 도덕적 마조히즘의 위험성은 그것이 죽음 본능에서 나온 것이며, 파괴본능이 외부로 향하지 않고 내부에 있는 죽음 본능의 일부와 일치하기 때문에, 주체의 자기파괴 행동 역시 리비도의 만족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마조히즘의 청산 

도덕적 마조히즘은 증상인가? 내 증상의 중심은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교차 발생이다. 마조히즘의 목표는 결국 리비도의 만족, 주이상스 때문이다. 그러나 주체의 의식은 고통스럽다는 것이 문제이다. 만약 주체가 자신의 고통을 즐긴다고 한다면 그것은 도착과 신경증의 경계에 선 인간일 것일까? 잉여향유의 노예인 것일까? 

마조히즘적 경향은 언제나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든다. 내 무의식이 목적하는 바가 자기 파괴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자기파괴를 통과해 살아남은 일상의 영웅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제인가,,, 꽤오래전 <무의식적 죄의식> 에 대해서 생각을 종종했었고, 결론은 원죄가 없다는 것이였다. 나는 이때 부터 초자아와 즉, 양심과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양심이라는 것이 터무니 없게 느껴질 때도 많았고, '내부검열자를 위반하기', 벌은 타자가 줄 수 없다.. 등등의 논리를 만들어 내전이 일어나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결국 자아의 탈을 쓴 초자아가 아니였을까. 자아이상과도 같을 수도 있겠다.  

이제 이 매저키스트 생활도 청산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리비도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얘기다. 인생이 많이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건강하게 살지도 모르는 일인데 언제까지 내상을 입히면서 나홀로 전쟁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종전을 선언한다. 어쩌면 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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