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세계 -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의 지혜
홍순범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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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깊은 물을 헤아려도 사람의 속마음은

쉽게 알아내기 어렵다는 뜻으로,

겉으로 보이거나 말만으로는

상대의 진심을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늘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속이 어떤지 알 수 없기에 갈등하고 오해하며

때로는 미움과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해야 나의 진심이 오해받지 않을까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듯한 이 질문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홍순범은

《타인이라는 세계》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가 타인을 대하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을 꼬집는다.

'왜 우리는 마음을 완벽한 도구라 믿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추론하고 상상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편견,

착각의 메커니즘을

뇌과학과 심리학적으로 탐구한다.


나 역시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맞이할 때면 으레

상대의 성격이나 행동에서 원인을 찾곤 했다.

그 사람이 이기적이라거나 까탈스럽다는 식으로,

내가 느낀 생각과 감정을 곧바로 진실로 여겼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된 상황이나 맥락으로 인해

섣부른 판단을 후회한 적도 많았고,

반대로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

내 진심이 오해받아 속상했던 경험도 있었다.


책은 이러한 과정이 사실은

'마음이론'이라는 뇌의 추론 장치,

즉 마음이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보며

그 뒤에 의도와 감정, 믿음이 있다고 상상하지만,

이는 실제 마음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고

뇌가 만들어낸 '유용한 가짜'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직접 알 수 없고,

오직 추론할 뿐이라는 메시지는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겪어온

고민을 꿰뚫는 신선한 접근이었다.


책은 이어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언어의 미묘한 표현 하나가 편견을 만들고,

기억은 왜곡되며 때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짓 기억까지 만들어진다.


부모님이 들려준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실제 경험처럼 자리 잡거나,

같은 사건을 목격했어도

질문 방식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실험 결과는

우리가 믿는 진실이

얼마나 허상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러한 오류들은 오해를 심화시키고 갈등을 낳는다.

그래서 저자는 타인의 마음을 가볍게 추측하기 보다

행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또한 우리의 마음이 뇌 속 여러 네트워크의

협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기와 타인을 상상하는데 관여하고,

돌출 자극 네트워크는 주의를 끄는 자극에 반응하며,

집행 통제 네트워크는 목표 지향적 사고를 담당한다.

명상은 이러한 네트워크의 활동을 조절해

잡념을 줄이고 마음의 작동 방식을 바꾸게 한다.


저자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도구'

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는 생각을 절대적 진실로 받아들이기 보다

상황에 맞게 활용하거나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공감과 자유의지,

그리고 표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성찰을 던진다.

공감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상황이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


자유의지는 절대적이지 않지만,

미래가 창발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표상 세계 때문에

고통을 연장하는 존재이지만,

진짜 '나'는 경험의 내용이 아니라

경험하는 주체라는 메시지는

자기 성찰의 깊이를 더한다.


책을 덮고 나니 처음에는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내 생각과 추측에 기대

절대적 진실로 착각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라는 점을 깨달았다.


오류를 줄이는 사고 습관,

생각을 도구로 다루는 유연성,

공감과 자유의지에 대한 성숙한 이해까지

책이 제안하는 방법들을 통해

앞으로는 '타인이라는 세계'를 조금 더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남았다.


추측 대신 질문하기, 행동에 집중하기,

상황에 맞게 생각을 도구로 보기,

공감의 깊이를 확장하기,

표상과 현실 구분하기.

이 다섯 개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겨,

사소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던

과거의 관계를 돌아보고 오해를 바로잡아야겠다.


타인을 이해하는 문제를 넘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더 성숙한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을

새로이 쌓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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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믿어주는 일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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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이 글을 쓴 작가의 인생이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작가만의 필터로 바라보는

특별한 세상을 마주할 때면

이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어땠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생겨나곤 한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뛰어난 필력으로 사랑받는 미야모토 테루.


그의 작품들 가운데 유독 입문 초기에 쓴 것들이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시점에 쓴 산문집 《그냥 믿어주는 일》은

작가에 입문하기까지의 그의 인생,

애정과 사랑, 회환으로 바라본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통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은 물론

사랑과 신뢰, 다정함 등을 담았다.


인정받는 작가가 되기까지 헤매던 시절,

그의 고민과 가정사를 함께 돌아보다 보면

그의 작품에 담긴 풍부한 서정성,

삶과 죽음, 숙명을 다루는 그의 세계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책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와 얽힌 추억을 다룬다.

아버지가 쉰 살이 되던 해에

늦둥이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부모님의 걱정 아래 자랐다.

아버지는 그저 '무사히 커주기만 하면 된다'는

따스한 사랑을 보여주었지만,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어머니와 그를 내버리며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애써 외면했던 작가는

소설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의 사랑과 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

그리고 그가 남긴 책과 영화들은

그의 문학적 뿌리가 되었고

삶의 버팀목이 되었음을 깨달은 작가는


조건 없는 사랑과 신뢰에 대하여

누군가를 '그냥 믿어주는 일'에 대해,

자신의 회한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가진 이들도 많은 반면,

단절된 관계로 연을 끊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사랑을 곡해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이며

이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확장시켜 나간

작가의 다정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카피라이터로서 평범한 직장 생활하던 시절,

갑작스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하며

마주한 높은 현실의 벽,

수없이 투고와 수상에 실패하고

빠듯한 생계에 희생하는 가족을 보며

그만둘까 갈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안정성 속에서도

삶으로 기어이 한 걸음씩 발걸음을 더하는 그의 노력,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문학과

글쓰기에 몰입하는 작가의 성장은

누구에게나 두렵기만 한 처음을 엿볼 수 있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몇 번이고 글을 고쳐 쓰며 분투하고,

병을 앓고 불안증에 시달리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삶의 궤적들은

단순히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후일담이나

추억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아버지, 그리고 문학이 그랬듯

나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었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불안과 결핍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도록 도와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평온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불안증에 시달리면서도 이어온 직장 생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글쓰기.

수많은 불안과 결핍을 떠안고 있음에도

결국 그는 작가로 성공하는 자신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한 선택,

막연하게 시작한 일들이지만

그 자체가 삶의 본연의 모습인 양

일말의 다정함을 붙들고 이어온 그의 글은

나의 불확실한 매일에도 힘이 되어주었다.


사사로운 개인의 삶을 담아냈지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곱씹으며

자신의 운명, 인간을 향한 애정,

소박한 매일을 담은 섬세한 문장들은

잔잔하지만 단단한 믿음을 준다.


개인이 겪은 인생의 사건들,

작품에 얽힌 후일담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삶부터

작품을 집필할 때의 경험과 생각,

지금에 이르기까지 담아낸 그의 인생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꼭 껴안고 있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표지로

누군가를 조건 없이 믿는 것,

다정함을 담아낸 이 책을 통해

누구나 잔잔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삶에 대한 따스한 선의를 느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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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들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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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이나 '전업 자녀'처럼

직업을 가지지 않고 여전히 아이처럼 지내는

청년층이 많다는 소식이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들려온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점점 길어지는 평균연령으로 인해

여러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인생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70대에도

현역으로 일하는 노년층도 많고,

한쪽에서는 은퇴 이후 벌이가 녹록지 않아

가정경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내 앞가림만 하면 참 좋으련만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결혼식 비용은 물론 주택 구입까지,

부모의 지원이 없으면 무책임하다거나

낳았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으니

이래저래 돈 나갈 곳이 많다.


젊을 때부터 아무리 꾸준한 저축을 한다 해도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들어가는 돈,

굵직한 가족행사나 가정사로 인해

금세 지갑이 얇아지다 보니

여기저기 치이다 보면 노후 준비는

우선순위에서 저 멀리 밀릴 수밖에 없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의 주인공인

50대 주부 아츠코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편과 맞벌이로 평생 뼈 빠지게 돈을 벌어왔고

나름 알뜰하게 생활을 이어오며

아이 둘을 무사히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겨우 용돈벌이만 하는 딸에게

생활비를 내라는 소리는 커녕,

어느 날 결혼을 하겠다며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탓에

모아둔 노후자금을 헐게 생겼다.


여기에 오래 사시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말년을 편안하게 모시자는 마음으로

고급 요양 시설에 모셨던 시부모님은

예상과 달리 길게 사시며

다달이 나가는 돈이 엄청나다.


이제야 겨우 주택자금을 갚고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

남편과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딸의 결혼을 치르기 무섭게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장례비용까지 떠안게 된다.


겨우 일을 처리하고 난 직후,

하필 노후자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남편과 아츠코 모두 직장에서 해고되며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픽션이지만 각종 사회문제를 현실적이고

신랄하게 꼬집어내는 가키야 미우 작가의 소설.

이번에는 노후자금을 지켜내기 위한

한 주부의 분투기를 담았다.

일본 가정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담아내 금세 몰입하게 되었다.


책은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정사로 굵직하게 돈을 썼던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면서,

과연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앞으로 노후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배움이 짧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던 부모님 세대.

야근과 특근 혹은 낮은 연봉에도

일단 해보겠습니다 하는 자세로

자식과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책임감으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그들이거늘,


최선을 다해 대학까지 가르치고 돌본 자식들은

그들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살지 못하고

쉽게 부모에게 기대기만 한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을 뿐

어른이 가져야 하는 책임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스스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그제야 나의 힘들다는 투정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

누군가의 인생을 갈아 넣어 만든 테두리 안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편안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부모님에게 결혼마저 손을 벌리는

딸 사야카를 바라보는 아츠코를 보며

우리 엄마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녀의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팠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준비한 노후자금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남은 시어머니에게 매달 드려야 하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워 집에서 모시기로 한 아츠코.


절약하며 알뜰하게 살아왔다 자부했던 그녀도

얇아진 지갑 사정에, 지인들의 삶을 바라보며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그동안 참으며 속으로만 삭였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만들어 간다.


중간중간 연금 사기나 실종, 범죄를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들은 피식 웃음 짓게 하기도 하지만

막막한 현실 속에서 뭐라도 해보려는

등장인물 각자의 노력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인생이란 나 하나만 책임진다고 될 일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가족, 상황에 영향을 받으니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든 노후자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츠코는 부지런히 일자리를 찾고

기존의 살아오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

한 번 더 성장하며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는 많은 돈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돈에 연연하지 않고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가져오고,

그 마음은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워주리라 생각한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미래를

100% 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아끼느라 현실을 퍽퍽하게 살 수도,

현재를 사느라 미래를 저버릴 수도 없다.


책을 읽고 나면 나의 엄마이자 언니, 나 같은

아츠코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숫자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 앞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긍정적인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늘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린다며

당신들 앞가림하랴, 노후를 준비하랴 바쁜

부모님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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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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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털이 날리는 건 지저분해서 질색하던 엄마와

겁이 많은 나의 성격 탓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짧게나마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삶의 궤적 안에 들였던 경험이 몇 있다.


다세대 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

위층 주인집에서 도둑을 막기 위해

1층 마당에 개 한 마리를 들인 것이었는데,

그 집 소유의 개였지만

우리 집에서 밥을 주고 살피는 일이 많아

'우리 개'처럼 느껴지는 아이였다.


상자에 담겨온 작은 강아지 시절을 시작으로

금세 자라 성견이 된 '누렁이'는

어느덧 목줄을 끊고 대문 밖을 나가거나

마당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동물을 전혀 만지지도 못하고 무서워했기에

하루는 대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오는

누렁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 뛰어 도망갔고,

그런 나를 보고 같이 놀자는 줄 알았는지

자꾸만 따라와 눈물을 쏙 뺀 기억이 어제 일 같다.


줄에 묶여 있을 때는

가끔 더운 날 수도를 틀어 물을 뿌려주기도 하고,

소꿉놀이할 때는 꽃 등을 짓이겨 만든 걸

밥이라며 먹으라고 내밀기도 했는데

무섭게만 느껴지던 그 강아지와의 시간은

조금씩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병에 걸려 팔려간 것을 알게 되었는데

빈집만 남기고 인사도 못한 채

누렁이와 헤어진 그날은

꽤나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내 인생에 반려동물은 없다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여전히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종을 넘어 나와 감정을 나누고

삶의 시간을 공유했던 그 특별한 경험은

부인할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반려동물 하면 떠오르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요즘은 식물을 키우는 스스로를 '식집사'라 표현하며

반려 식물이라 칭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다른 생명체를 자신의 삶과 일상에 들여

함께 살아가고 돌보는 매일은

사람끼리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는

서로 대화를 할 수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반려인의 하루》의 세 작가는

각각 고양이, 식물, 개를 돌보는 과정 속에서

이들과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글이지만

하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반려'의 진정한 의미,

그 안에 담긴 책임과 응답,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다.


1부는 김영글 작가와 길고양이 출신의

세 마리 고양이 요다, 모래, 녹두의 이야기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독립성이 강한 고양이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만,

작가는 그 차이를 이해하거나

소통하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대한다.


보통 반려동물을 대할 때 '길들인다'는

표현을 많이 쓰기도 하는데,

작가는 반려 관계에 대해

타자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를 통해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몸소 느끼게 된다.


언어를 넘어선 감각으로의 소통,

그리고 고요한 평화 속에서

꼭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매 순간 함께 하지 않아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따로 또 같이의 관계 맺음을 보여주었다.


2부에서 안희제 작가는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에서 시작해

곤충, 이끼, 거리의 나무까지 관계의 범위를 확장한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과 달리

식물은 '생명'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이들을 죽게 하더라도 죄책감을 갖거나

돌봄에 있어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죽은 화분을 문밖에 내어놓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이에게 나눔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식물을 단순한 취미나

인테리어 요소로 바라보는 요즘에

이를 함께 책임져야 할 반려의 존재임을 강조한다.


식물을 돌보는 과정 속에서 따라오는

벌레나 이끼, 온·습도의 영향 등

식물과의 관계를 인간 중심적인 시선이 아니라

환경과 공동체로 번져가며

나만의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경험을 소개했고,


돌봄과 응답을 통해 일상의 조건을

재구성하는 그의 매일 속에서

고작 풀이나 나무, 화분 정도로 사물화했던

식물의 '반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3부는 정우영 작가와

그의 반려견 풋코, 그리고 그가 구조한

유기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와 스무 해를 함께한 반려견

풋코와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하며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묵직하게 다룬다.


병원 치료와 수액 주사,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

반려 관계의 무게감을 일깨우며,

반려동물과의 죽음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으로서 조명한다.


조금씩 생명이 꺼져가며

마지막을 향해가는 반려동물과의 작별은

작가뿐 만 아니라 반려인들 누구에게나

커다란 절망으로 다가오겠지만,

이런 이별로 사랑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나에게 남아

스며드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반려 경험과 즐거웠던 추억을 담아낸

가벼운 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함께 사는 존재가 아니라,

짝이 되는 동무로서 책임과 응답을 요구하는

세 작가의 글을 모두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반려'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인간이 동물 혹은 식물을

돌보는 행위가 아니라,

이들을 돌보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한 작가들의 경험은

책임감이라는 무게 때문에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이들의 죽음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텐데

이조차 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사랑으로 해석하며


혐오와 배제 등 타자와의 관계보다

개인주의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요즘에,

인간이 아닌 존재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가를

각자에게 묻는 기록이기도 했다.


반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으며

고양이, 식물, 개와의 관계를 통해

타자와의 공존, 책임, 사랑을 탐구한

작가들의 삶이 참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느라,

혹은 일방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를

거둔다는 생각에 외면했던 건 아닌지

새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독서였다.


돌봄과 책임을 넘어 타자와 공존하는 삶을

배울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응답하고 책임지는 '짝'으로서

반려와 사랑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일부러 곁에 반려 존재를 들이지 않더라도

타자의 반려동물이나 식물에,

길에 심어진 나무나 풀 한 포기에서도

의미를 찾게 만들어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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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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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의 아내는 장모님 작품이고,

결혼 한 후의 아내는 남편 작품이다.

결혼하기 전의 남편은 시어머니 작품이고,

결혼한 후의 남편은 시아버지 작품이다.


며칠 전 SNS에서 본 글이다.

결혼 전후의 남편과 아내가 달라지는 것은

각 가정에서의 살아온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예로 든 것 같다.


보통 연애할 때는 다정해서 잘 챙겨주던 남편이,

결혼하고 나니 시아버지가 하던 것처럼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권위적인 행동에 실망했다는 말들을 한다.


이는 둘만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남녀 간의 관계에 권력과 폭력이 발생하며

감정의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일 터.


특히나 결혼 전 동등하게 여겨졌던 관계가

결혼 이후 부딪치며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은데,

비단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너무 늦은 시간》에서도

세 편의 단편을 통해 남녀 관계에 대해 다룬다.

이 이야기들은 남녀 관계 속에 숨어있는

갈등을 통해 특히 여성의 내면과 생존,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문제를 비판하며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인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은

카헐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업무를 하고 있지만

어쩐지 직장 동료들은 그의 눈치를 보는데,

사실 그날은 그의 결혼식이 예정된 날이었으나

약혼녀 사빈과 파혼하게 된 것이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는 약혼녀였던 사빈과의 관계를 회상한다.


그를 위해 애정을 담아 요리를 하고

재료를 사느라 시간과 발품을 파는 데에도,

또 돈을 쓰는 데도 망설임이 없던 사빈과 달리

카헐은 지갑을 두고 온 그녀 대신

결제를 하면서 비싼 값에 놀라거나

다 먹은 그릇을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는

사소한 행동에도 불만을 갖는다.


심지어 살림을 합치기로 한 뒤에도

그녀의 물건이 늘어나는 것에 당황하며,

그저 자신의 공간에 그대로 그녀만 들어와

자신에게 맞춰주길 기대한 것이다.


사랑을 받는 데는 익숙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가부장적인 생각으로

그녀를 대했기에 결국 파혼에 이르게 되는데,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거나 반성하지 않고

술에 취해 욕을 하는 데 그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시간과 욕망,

공간이 어떻게 침해되고 억압되는지

그 씁쓸함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이야기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우연한 기회에 유명 작가의 고택에서

2주간 머물게 된 여성작가의 이야기이다.


지원자가 많았지만 운 좋게 기회를 얻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쓸 계획을 세우던 차,

작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집을 보여달라' 요구하는

한 독일인 남자를 마주하게 된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집을 보여줄 거라던데요?'라며

자신에게 맞출 것을 종용하는 남자였지만,

그런 그를 위해 여자는 시간을 비우고

작업을 미루며 케이크를 굽고 애써 존중한다.


하지만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녀가 준비한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도

작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좋은 기회를 케이크나 굽고, 수영을 하고

자전거나 타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며

그녀를 비난한다.


심지어 자신으로 인해 그녀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받고 있음에도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그녀는 남자의 무례함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직접적으로 그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글로 담아 표현하며

여성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 권력을 문학적으로 응징하는

고상한 복수를 담아냈다.


마지막 〈남극〉은 낯선 남자와

하룻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일탈을 꿈꾸는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혼자서 떠난 여행지에서

매력적인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자신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아이처럼 챙겨주는 그에게 빠져 하룻밤을 보낸다.


여행을 마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를 유혹하는 그를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그의 집을 찾게 되고,

그녀를 가두고 묶어둔 채 사랑한다 말하는

비뚤어진 구속에 갇히게 된다.


그저 한번 자신의 욕망대로 하고자

일탈을 꿈꾸었던 그녀의 어리숙함은,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임을

다시 남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남극처럼 얼어붙은 결말로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는

가치관이 맞지 않아 헤어진 두 남녀,

너무 쉽게 타인의 공간과 시간을 침범하며

타인을 힐난하는 두 사람의 갈등,

일탈을 꿈꾸다 범죄에 빠진 한 여자 등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권력과 폭력,

여성의 생존과 저항을 다뤘다.


겉으로는 고요한 듯 보이지만

각 등장인물의 내면에는 격렬한 긴장이 담겨

어떤 인물의 감정에 나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져오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몇몇 장면은

소설 《82년생 김지영》과도 겹쳐졌는데,

프랑스판 제목으로는 '여성 혐오'로 출간되었듯

가부장제에 대한 증언과 투쟁의 관점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글로써 응징하거나 파혼하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저항하며

생존하려 애쓰는 여자의 분투에는

공감과 응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 큰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팬케이크를 구웠음에도

어느 하나 기다리지 않고 먼저 먹기 시작하고,

기껏 자신의 것을 먹으려 하자

의자를 빼는 장난으로 넘어뜨리고

접시를 깨 음식도 못 먹게 만들고서는

그 폭력을 웃음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마음에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그때 누구라도 웃지 않았다면,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면 달랐을 텐데

이 씁쓸함은 시대와 나라를 넘어

누구나 어디에서든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꽤나 묵직하게 아프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서 권력과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내가 내리는 이 순간의 선택과 태도가

나 혹은 나와 관계 맺는 누군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자신의 태도와 언행을 돌아보고 행동하는

신중함을 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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