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의 관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다.

아직 어린 나이라 하더라도 여자아이들은

친해지면 자기들만의 공감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가장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화장실 마저 함께 가기도 하고,

특히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단짝 사이에서는

그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을만큼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을 터놓기도 한다.

마치 내가 너 인듯, 네가 나인듯.


그 끈끈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관계는

학창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기까지

결혼의 유무나 자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대상이 바뀌어 갈 때도 있지만

항상 여자의 곁에 존재한다.


아마 그렇기에 이 소설이 일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만 바꾸면 마치 '내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 더 몰입하게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서로를 더 가깝게

여기는 것 같은 특별한 관계의 나쓰코와 사에.


이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나쓰코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대신

혼전임신을 한 지라 한 번도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해 본적이 없고

사에는 결혼은 했지만 간절히 바라는 아이는 없고,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이다.


얼마나 둘 사이가 견고한지 사에의 남편이

실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사에는 나쓰코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며


집 열쇠를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나쓰코가

사에의 집 열쇠를 맡아준다거나

자신과 똑같은 이불을 선물하고,

같은 이불이 깔린 나쓰코의 집에서도

내집인양 편하게 잠들수 있는 사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사에의 남편 다이시가 불륜을 고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되고,

그가 결국엔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 둘의 관계와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에 남편인 다이시의 죽음

자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각 장에서 '주변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주인공들에 대한 소스를 제공하는데

마치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일까'를

찾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 아닐까

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랄까.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둘의 관계를 깨닫는 순간,

내가 자연스레 믿고 있고 알고 있던

이들의 관계가 틀렸던 것인가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반전에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읽어보기도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속아 넘어가는 쾌감'이라는

책의 소개글이 제격인 것 같다.


비뚤어진 어머니 아래서 자라난 나쓰코,

그런 낫 짱을 전적으로 믿는 사에.

각기 서로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그들의 복잡한 관계가 다 읽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듯 이해가 갔다.


이들의 관계까 진실한 우정일까,

혹은 비뚤리게 어긋한 사랑의 파국일까

사실 조금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았었는데

그 관계의 진실을 깨달아가며 몰입하고

반전에 깜짝 놀랬던 추리소설 한 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자락에 있는 땅을 좀 갖고 싶어.
현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자연뿐인 곳으로.
인간이 손댄 흔적은 내 집이랑 헛간이랑
작업장밖에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딱 꿈에 그리던 그런 집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한 해리와 사샤.

내다보이는 모든 곳에,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든 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에
곧바로 이 집과 사랑에 빠진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일한 이웃인
노부부가 찾아와 수상한 인사를 건넸다.
"이사 온 걸 환영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곳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어요."

그들이 말한 세 가지 규칙은 기묘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절대 믿지 말 것.
당신이 죽인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 것.
규칙을 벗어나려 하면,
집이 그 의도를 알아챈다는 것.

미친 소리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의
이야기에 불쾌해지던 찰나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이웃인 노부부가 말한
악령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떠날 수도 없는 이 집에 갇혀버린 신혼부부는
살아남기 위해, 이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사냥을 하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며
사람을 여럿 죽인 경험이 있는 해리가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살인'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 같은 이 남자도 수상했지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한
그들의 새로운 집에 찾아온 노부부의 친절도
어쩐지 신뢰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이웃 사냥》이라는 책 제목 때문인지
이들의 집을 둘러싸고 매 계절마다 찾아오는
악령의 존재와 그 악령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웃지븨 댄과 루시가 어쩐지 그 악령과
연관되어 있는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이 하는 악령을 쫓는 방법 조차도
사실은 되려 악령이 이 둘 부부에게 다가오게끔
하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이야기는
처음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다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는데' 싶었으나
흡입력있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문체는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게 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각각 해리와 사샤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데,
각 인물의 상황과 성격 등이 어우러져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그 시점을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책을 읽는 나 역시 이들이 접한
악령의 본질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듯한
알면 안되는 진실에 접근하게 된 듯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다.

계절을 거듭할 수록 그 강도가 강해지는 악령의 모습,
집과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해리와 사샤의 선택과 행동,
그 이면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죄책감과 상처 등이
눈에 보여지는 무언가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의 문제는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상대방을 지키기 위한
둘의 진심과 용기있는 행동,
자신이 가진 문제를 직면하고 제대로 바라보며
두려움 속에서도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해리와 사샤를 통해
공포를 넘어선 어떤 인생관이랄까
한 사람의 성장을 살펴보게 되어
완전히 닫힌 결말이 아님에도
안심하게 되는 마음이었다.

되려 이웃 사냥이라는 말이 그 '이웃'을 의심하게 하고
악령의 진실이 무엇일까
일부러 헷갈리게 한 듯한 느낌이다.
현현하는 각 계절별 악령의 모습과
그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고뇌하면서도 용기를 낸
해리와 사샤의 모습이 넷플릭스와 만나
어떤 영상으로 펼쳐지게 될 지
기대하고 궁금하게 하는 책이었다.

덥고 습한 여름날의 날씨,
오싹한 공포는 물론 몇 번이나 책 속의 이야기가 떠올라
보이지 않는 어떤 두려움을 끄집어내 준
그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딱 한 번만이라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다루는 작가 마스다 미리.

《수짱의 연애》 를 비롯한 다양한 만화 작품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이자 만화가로 알려진 그녀는
만화를 제외하고는 여행에세이 등의
작품활동을 주로 하는 편이지만,
드물게 장편소설도 집필하곤 했는데
이 책이 그녀가 써낸 두 권의 장편소설 중 하나이다.

사별 후 여유로운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기요코 이모의 제안으로 불쑥 갑자기
브라질 패키지 여행을 떠나게 된 히나코.

그녀는 이혼 후 혼자 살아가고 있는
언니 야요이의 집에 얹혀
파견직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30대로,

화려하고 뜨겁게 빛나는 브라질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에 빠진듯한
느낌에 휩싸여 총 천연색으로 빛나는
새로운 삶의 자극을 받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며 외모가 별로라 관심없던
직장의 영업팀 정규직인 이시오카씨가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하나로
그를 새로이 보게 되서는
여행을 계기로 그와 공감을 이뤄 관계를 진전해
인생의 반려자가 되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하는
소위 '김치국'을 마시기도 하고

같은 패키지에서 알게 된 화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기무라 부부의 미혼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그들 중 하나와 결혼해 기무라 부부의 가업을 물려받아
'젊은 사모님'의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히나코가 함께 살고있는 언니 야요이는
결혼을 이유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이혼으로 인해 경단녀(경력단절 여자)로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동생이 여행을 간 동안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매일 새로운 일을 하는 룰’을
정해 하나씩 기록해나가기로 하며
그녀 역시 나름대로 일상에서의 일탈을 통해
본인의 삶에 변화를 주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언니인 야요이 역시 동생 히나코처럼
요양보호사로 방문하는 가정에서 알게 된
아들과의 미래를 잠시나마 떠올린다거나
수영장에서 만나 새로이 알게된
(부자이며 여유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며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일탈을 통해 빛나는 장밋빛 인생을
꿈꾸고 상상하던 그녀들은
각각 여행이 끝나고 일명 '현타'로 인해
와장창 다시 조금은 암울한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능력도 없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그녀들은
여전히 현실에서도 기요코 이모의 유산과 같은
요행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느 픽션과 달리
마스다 미리의 소설에서는 어림없는 소리이다.
꿈에서 와장창 깨서 현실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과하지 않은 현실적이고 신선한
마스다 미리식 마무리에 피식하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의 꿈처럼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약간만 일상에서 변화를 주어도
그 일상 속에서 내 모습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평범한 그녀들의 일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매일을 살아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기요코 이모는 여행을 통해
내심 자신을 데려가지 싶어 질투가 난 듯한 언니와,
노력하지 않는 히나코,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삭해 약은듯 싶은 야요이까지
세 여자에게 좋은 자극은 물론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방법을
일깨워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로든 이 여행을 통해
엄마는 오래된 본가의 주방 리모델링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히나코는 좀더 코드가 맞는 직장을 찾게 되었으며
야요이는 마지못해 하고있다고 생각했던
요양보호사 일에 대한 확신을 다시 얻게 되는 등
각자의 성장을 얻게 되었으니,
다뤄지지 않은 그들의 미래는
좀더 뜨겁고 뜨겁게 빛나는 시간으로
바뀌었으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