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개업
담자연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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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난 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끔 죽음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는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있기도 한 걸 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잠시 걸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인기가 있었던 tvN의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삶을 다한 사람들이 저승사자의 이끌림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 어떤 공간에 잠시 머무르며

저승사자가 건네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이승의 기억을 잊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은 채

다음 생을 기약하며 저승으로 건너가곤 했다.


이 책은 그 이승과 저승 사이에 위치한

환승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로,

생일을 하루 앞두고 환승 세계에 뚝 떨어지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쩌다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영채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은 그녀는

제 사장이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아직 삶이 남은 자는 이승으로

삶을 다한 자는 저승으로 건너가기에

국수 한 그릇만 먹으면 되겠지 쉽게 생각했지만,

국수에 담기는 '자신만의 구슬'이 없어

환승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구슬이 생길 거라는 기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제 사장의 국숫집에서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정이 많고 다정한 다미 아저씨,

가끔은 노인처럼 때로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진여사,

차갑고 냉철하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제 사장과 함께 지내며

어느덧 이승에서의 시간은 흐릿해진 채

국숫집 생활에 적응해 나가게 된다.


국숫집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들렀다.

엄마와 딸, 20년 지기 친구,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겪은 아내 등

짝지어진 듯 서로를 이어주는

인연의 실타래가 엮여있다.


그들의 사연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네는 채이가 영 못마땅했지만,

항상 손님이 다녀가고 나면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고통으로 힘겨워하던 제 사장은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깨닫게 되며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환승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채이는 환승에 엮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아무런 이승에서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벌받는 시간을 보내던 제 사장도 자신과 엮인

채이의 운명에 관해 하나하나 알게 된다.


과연 형벌을 받는 제 사장은 기억을 찾고,

또 채이는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환승 세계의 사람들에게 숨겨진

비밀의 진실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갑자기 이승을 떠나 저승 사이 환승 세계에

동떨어지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기에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은

이야기를 따라 흥미로운 환승 세계의 설정에

푹 빠져들기에 충분한 서두였는데


환승 세계에 적응해 나가는 채이를 통해

국숫집에서 마주하는 각각의 감동적이고

마음 아픈 사연을 통해

결국에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타인과의 '인연'이라던가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승의 국숫집에서 제 사장이 내놓는 국수는

국물이나 고명을 떠나 붉은빛의 운명 구슬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얼핏 국물을 맛깔나는 빛깔로 물들이는 것 같지만

그 구슬을 먹는 손님들은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게 되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꿈을 포기했다고,

본인이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끼는 딸은 국수를 통해

사실 엄마가 자신을 좀 더 믿어주길 바라는

진심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보육원에서 자라

혼자 까칠하게 살아왔던 남자는

가족을 잃고 세상에 혼자뿐이라 오해했지만,

사실 평생 옆을 지켜주었던 친구가

가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략결혼이지만 외로웠던 삶의 유일한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남편과의 사별로 힘들어하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잃는 저주에 걸린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불행과 행복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늦게나마 알게 된다.


각자의 삶을 국수를 먹고 채이와 제 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과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그들은

후회 없는 끝맺음을 위해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이승에 돌아가게 된다.


전하지 못했던 진심과 어긋난 타이밍을 바로잡아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고 다시 이승으로,

혹은 누군가는 저승으로 떠나가는 발걸음을 보며

비록 '환승 세계'에서 국수를 먹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의미 있었고


채이를 귀찮아만 하는 것 같은 제 사장이

손님들에게 건네는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덜어지고

또 어린아이인 것 만 같았던 채이가

환승 세계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소설 속 판타지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감동적인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이승에서 저승을 넘어갈 때

우리를 후회 없게 만드는 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

그 사랑을 잊지 않는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서로에게 얽힌 운명을 마주하게 된

제 사장과 채이가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다정함을 잃지 않고

전하지 못한 진심과 후회의 마음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어떤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흘러가 사라지게 되고,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매 순간 후회 없이 소중한 진심을 담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혹여 미운 마음에 진심을 숨긴 인연은 없었던가,

미처 깨닫지 못해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은 없던가,

내 마음속 진심을 이만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한 진심과 함께 한 시간은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잊어버리더라도 잃어버리는 건 아니라는

책 속 채이의 말처럼 삶과 인연에 담겨있는 다정함이

결국엔 우리를 살게 하고 꼭 필요한 마음이라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 같은 뭉근한 온기가 남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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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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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불평등 아래에서도 키워올린 희망이라는 씨앗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되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 소년을 자라게 했다.
그 성장은 각자를 억압하고 규정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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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의 밑줄 - 나와 일 모두 함께 크는 사람의 성장법
김상민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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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홍보학을 전공하며 마케팅을 배우고

디자이너이자 기획자, 마케터로서

직장 생활의 전부를 채웠던 나이지만

마케팅은 매 순간 어려웠고,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마케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구인구직 사이트나 직원 모집을 하는 회사의

'마케팅'이라는 업무를 들여다보면

영업부터 시작해 고객상담 및 응대 업무까지

포함되어 있기도 할 만큼 마케팅의 범주는 폭넓다.


그래서일까, 현업자의 입장에서도 마케팅은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워낙 많은 범주의 일을 포함하고 있는

이 행위에 대해 '확신'을 갖기란 쉽지가 않다.


마케터로 일하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늘 순간순간마다 내가 기획하고 판단 내린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지고

또 그 답을 찾느라 모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시간들을 쌓아가며 때로는 성공,

혹은 실패 등 다양한 경험을 했음에도

'뭘 좀 알겠다' 싶은 생각보다는

마케팅은 참 어렵고 그 흐름과 분위기를 읽는 일은

막막한 과제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늘 헤매는 것 같은 나와는 달리

다른 마케터의 결과물을 보면 그야말로 참 기깔난다.

군더더기 없는 메시지와 기발한 아이디어,

고객들의 반응이나 활동으로 척척 이어지는

그들의 마케팅은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일명 B급 감성 마케팅과 기발한 접근법으로

마케터들 사이에서도 손꼽는 사례로 불리는

배달의민족에서 10년여간 마케터이자

팬덤과 소통하는 뉴스레터 팀장으로 일한

저자가 일을 하며 생각이 복잡해지는 순간마다

현자에게 답을 구하듯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그러모은 책이다.


수시로 변해가는 트렌드를 앞서가야 하고,

말과 글을 '맛있게' 다뤄야 하는 마케터의 숙명은

때론 크리에이티브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뒤처진 사람, 감 없는 사람'으로

작아지기 일쑤인데,


일에 있어서도 퇴근 후 일상에 있어서도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법 등

마케터의 일과 생활, 인간관계에

현타가 오는 순간마다 그를 붙잡고 다독여준

인사이트이자 더 나은 직업인으로 만들어주는

태도와 감각이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헤매면서도

그 답을 찾기 위해 길어올린 문장들에 담긴

여러 위로와 조언을 쫓아가며


내가 부족한 마케터라서 혹은 일을 잘 하지 못해서,

아니면 흘러가는 트렌드를 읽지 못해서

이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때로 좌절하고 작아지던 그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구나,

다들 같은 고민을 하고 때로 실패하면서도

서로를 믿고 일어나 다시 또 도전하고

이따금 성공했던 거라는 걸 알게 되며

조금은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


수시로 변해가는 세상의 불확실성,

한계가 있는 마케팅 비용,

그리고 혼자서 하는 혹은 녹록지 않은 인력 등

수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런 제약 안에서 탄생하는 창의성의 힘을 믿으며

한걸음 한걸음 미래를 향해 내딛는

내공 있는 마케터의 태도에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프로 마케터에게도 어려운 業인 마케팅이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하고 오래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본인의 일과 생활, 인간관계, 미래에 관해

기댈 수 있는 문장들을 꾸준히 모아오고

자신의 인사이트를 덧대온 그의 매일은


'일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취감뿐 만 아니라

삶에서도 심지 있게 '나다움'을 지니게 하고

성장을 이끄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줌으로써

이를 읽는 나 역시 더 나은 직업인이자

선명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본받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책을 처음 펼칠 때만 하더라도

실무에 필요한 직접적인 노하우나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는데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더 나은 직업인이기를 꿈꾸며

일을 해내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한 사람의 고민 어린 매일과 성장이 담긴 이 문장들은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의 오늘에

따뜻한 위로이자 따끔한 충고로 다가왔고,

잘 해내갈 수 있다는 용기로 이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현실의 부족한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워

많이 망설이고 안주했으며,

수없이 확신을 찾고자 도전을 뒤로 미루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일단 해보는 것'의 힘,

그리고 성과가 있었을 때나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는 것 등

그동안의 일하는 태도와 자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태도를

되짚어준 좋은 가르침이자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내가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을 기본으로,

나답게 문제와 상황을 마주하고

내 주관과 단단한 심지에서 끌어올린 판단으로

그에 맞는 답을 찾을 때

비로소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일을 잘 해내는 능력만 키우거나

혹은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각기 다른 곳에 답이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일, 생활과 직장, 인간관계는

모두 연결되어 무한하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을 달리한다면

일 잘하는 사람이자, 내가 주인인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남은 독서였다.


비단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답게 살고 싶고 제대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일의 선명한 윤곽선을 만들어주는

그의 밑줄 그은 문장들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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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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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수없이 많은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가, 박완서.

소설가로 알려져 있는 그녀이지만

그에게는 소설로써 말하고 싶은 것과

산문으로써 말하고 싶은 두 가지 욕구가 늘 같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 두 가지를 같이 존중해왔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와 똑같은 기쁨과 고통과 열성으로

써 내려간 그의 에세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펼쳤다.


작가로서, 그리고 자녀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그의 삶에서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을 기록한 이 책은


굴곡진 시대를 담은 증언 문학으로

감동을 주었던 작가의 소설 작품 외에도

자신의 삶으로서 생생한 기억의 역사를 풀이하였기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깊이 있게 엿볼 수 있어 그 어떤 작품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화롭고 안온했던

유년 시절과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

먼저 서울로 떠난 엄마와 오빠를 떠나

상경하게 된 시골뜨기의 기억은

한 번도 들은 적 없었지만 딱 할머니 연배인

그녀의 삶을 통해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짐작하고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하기도 했고


대문과 담장이 있을 뿐,

한집 건너 한집의 사정은 다 꾀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서로를 챙기고 가족처럼 여기던 이웃 간의 情을

담은 글들을 보면서는

'맞아, 이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아쉬움의 마음으로 그때의 향수를 그리기도 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마라토너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차도까지 내려가

꼴찌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는 따스한 마음에서도,

함께 흙장난을 한 손주의 손톱에 낀 흙을 보며

웃음 짓는 할머니의 사랑은

'작가'라는 모습에서 짐작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라

참 반가운 마음이었다.


가장 좋은 것, 순수한 사랑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

먼저 떠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모성을,


그러면서도 사회나 변해가는 시대에 대해

냉철하게 의견을 토로하는 당찬 글에서는

대장부같이 단단한 심지를 느낄 수도 있어


그 어떤 문장에서도 포장 없이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인 그녀의 진솔한 글을 통해

단단하게 심지 어린 곧은 시선,

그리고 깊은 혜안으로 보통의 일상을

따뜻하고 묵직하게 어루만지는

내공 있는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이 글들은

한 사람의 성장이자 인생의 일대기일 뿐 만 아니라,

30년대에 태어나 타계하기까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경제성장과 IMF 등

70-90년대 급변하는 시대의 모습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기록이지 않나 싶다.


따스한 시선으로 당신의 삶과

아이와 가정과 이웃을 바라볼 줄 아는 섬세함은 물론

지금 읽어도 다시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만한

그가 던지는 유의미한 질문들과 의견은

시대를 넘어 인생 선배로서 후대에 건네는

따스한 조언으로 다가와 더 좋았던 책이었다.


그가 남긴 삶의 단편을 마주하며

이렇게 시대와 세대를 넘어 힘 있는 울림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새삼 이제야 더 이상 그녀의 새로운 문장을

마주할 수 없음의 아쉬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처럼

"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변함없이 마음을 덥혀주는 그의 진솔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늘 인자한 웃음으로 보듬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멀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자식의 매일을 살피고 챙기는 엄마처럼,

때로는 따끔한 잔소리로 정신을 번뜩 들게 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처럼

오래 마음에 새기고 자주 찾고 싶은

그런 글이 될 것 같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뭉근하고 따스하지만 무겁고 부담스럽지 않게

세상과 삶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심 어린 그의 마음이 이렇게 글을 통해 전해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배울 수 있는

뜻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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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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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매일 꿈을 꾼다고 하지만

유독 깨고 나면 기억하지 못해

'나는 꿈을 안 꾸는데' 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같이 꿈속 이야기를 기억해

되려 꿈을 꾸지 않으면 이상하다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인데,

한 번씩 기억에 남는 특별한 꿈을 꾸면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궁금해진 마음에

눈을 뜨기 무섭게 꿈 해몽을 검색해 보며

수수께끼 같은 꿈의 세계가 보낸 메시지를

어떻게든 알아보려 애쓰곤 한다.


누군가는 꿈은 내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어느 측면에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몽'이라고도 한다.


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논쟁은 다양하지만,

태몽처럼 대체적으로 누구나 믿기도 하는 것처럼

꿈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이 가까운 존재다.


항상 삶과 죽음, 꿈에 대한 소재를

작품을 통해 다뤄온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꿈 이야기를 모아 기록한 에세이를 출간하였다기에,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 마음에 펼쳐보았다.


그는 평소에도 '감촉마저 느껴지는 컬러풀하고

리얼한 꿈을 잘 꾸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특이할 것 하나 없이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나의 꿈과는 달리

그는 에이즈로 죽은 작가의 책을 읽고는

꿈속에서 죽어가는 느낌을

무섭도록 리얼하게 경험하기도 했고,

연인이 외도하는 꿈이나

너무도 그리운 죽은 친구와 재회하는 등

현실이라고 여겨질 만큼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는데


그는 그런 꿈들이 대부분

현실의 어떤 부분을 함축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껴

이러한 직감을 글로 담아 그가 쓰는 작품에

투영하게 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바나나의 꿈은 그의 작품 그 자체이자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또 다른 예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된 것 아닐까 싶다.


바나나의 꿈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니

문득 나의 꿈속은 어땠었더라 하고

지난 꿈들을 돌이켜보니


때로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얼굴을 만나

애틋한 반가움과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 즉시 '이것이 꿈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꿈에서 깨면서도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어

아쉬움이 가득한 꿈을 꾸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좋은 예감을 주는 꿈을 꾸고는

'좋은 꿈을 꿨으니까 분명 잘될 거야.' 하고

단단한 자신감을 가지는 날도 있었다.


비단 바나나의 꿈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무엇보다 현실과 끈끈하게 이어져 있고


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영적 직감을 떠나

현실의 삶을 아름답게 살게 하고

내 이면에 있지만 나조차 깨닫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생명력이 가득한 꿈의 세계'가 가져다주는

힘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일기처럼

어젯밤의 꿈을 기록하는 그녀의 꿈 일기를 통해,

꿈에 담긴 마음속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붙잡아 두는 노력이 언젠가 하나둘 이어져

나만의 우주가 탄생할 것 같다는 기대,

또 그녀처럼 '무한대의 이야기 재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엉뚱한 기록이라 할지 몰라도

이를 쉬이 흘려보내지 않고 나도 한 번

기록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꿈에서 본 어떤 모습이

과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

혹은 가까운 사람의 걱정이 도착한 것이거나

그 공간이 나에게 호소하는 메시지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직관을 활짝 열어두고 현실과 꿈속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워나간다면

나에게도 내가 믿고 또 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너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이건 무슨 꿈이지' 하고 흘려보내던

수많은 밤의 꿈들이

내게 보내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지나쳐버린 궁금증을 뒤로하고,

다가올 꿈의 세계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리라

기다리게 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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