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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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수없이 많은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가, 박완서.

소설가로 알려져 있는 그녀이지만

그에게는 소설로써 말하고 싶은 것과

산문으로써 말하고 싶은 두 가지 욕구가 늘 같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 두 가지를 같이 존중해왔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와 똑같은 기쁨과 고통과 열성으로

써 내려간 그의 에세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펼쳤다.


작가로서, 그리고 자녀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그의 삶에서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을 기록한 이 책은


굴곡진 시대를 담은 증언 문학으로

감동을 주었던 작가의 소설 작품 외에도

자신의 삶으로서 생생한 기억의 역사를 풀이하였기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깊이 있게 엿볼 수 있어 그 어떤 작품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화롭고 안온했던

유년 시절과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

먼저 서울로 떠난 엄마와 오빠를 떠나

상경하게 된 시골뜨기의 기억은

한 번도 들은 적 없었지만 딱 할머니 연배인

그녀의 삶을 통해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짐작하고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하기도 했고


대문과 담장이 있을 뿐,

한집 건너 한집의 사정은 다 꾀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서로를 챙기고 가족처럼 여기던 이웃 간의 情을

담은 글들을 보면서는

'맞아, 이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아쉬움의 마음으로 그때의 향수를 그리기도 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마라토너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차도까지 내려가

꼴찌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는 따스한 마음에서도,

함께 흙장난을 한 손주의 손톱에 낀 흙을 보며

웃음 짓는 할머니의 사랑은

'작가'라는 모습에서 짐작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라

참 반가운 마음이었다.


가장 좋은 것, 순수한 사랑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

먼저 떠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모성을,


그러면서도 사회나 변해가는 시대에 대해

냉철하게 의견을 토로하는 당찬 글에서는

대장부같이 단단한 심지를 느낄 수도 있어


그 어떤 문장에서도 포장 없이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인 그녀의 진솔한 글을 통해

단단하게 심지 어린 곧은 시선,

그리고 깊은 혜안으로 보통의 일상을

따뜻하고 묵직하게 어루만지는

내공 있는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이 글들은

한 사람의 성장이자 인생의 일대기일 뿐 만 아니라,

30년대에 태어나 타계하기까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경제성장과 IMF 등

70-90년대 급변하는 시대의 모습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기록이지 않나 싶다.


따스한 시선으로 당신의 삶과

아이와 가정과 이웃을 바라볼 줄 아는 섬세함은 물론

지금 읽어도 다시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만한

그가 던지는 유의미한 질문들과 의견은

시대를 넘어 인생 선배로서 후대에 건네는

따스한 조언으로 다가와 더 좋았던 책이었다.


그가 남긴 삶의 단편을 마주하며

이렇게 시대와 세대를 넘어 힘 있는 울림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새삼 이제야 더 이상 그녀의 새로운 문장을

마주할 수 없음의 아쉬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처럼

"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변함없이 마음을 덥혀주는 그의 진솔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늘 인자한 웃음으로 보듬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멀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자식의 매일을 살피고 챙기는 엄마처럼,

때로는 따끔한 잔소리로 정신을 번뜩 들게 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처럼

오래 마음에 새기고 자주 찾고 싶은

그런 글이 될 것 같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뭉근하고 따스하지만 무겁고 부담스럽지 않게

세상과 삶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심 어린 그의 마음이 이렇게 글을 통해 전해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배울 수 있는

뜻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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