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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개업
담자연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죽고 난 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끔 죽음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는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있기도 한 걸 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잠시 걸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인기가 있었던 tvN의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삶을 다한 사람들이 저승사자의 이끌림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 어떤 공간에 잠시 머무르며
저승사자가 건네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이승의 기억을 잊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은 채
다음 생을 기약하며 저승으로 건너가곤 했다.
이 책은 그 이승과 저승 사이에 위치한
환승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로,
생일을 하루 앞두고 환승 세계에 뚝 떨어지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쩌다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영채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은 그녀는
제 사장이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아직 삶이 남은 자는 이승으로
삶을 다한 자는 저승으로 건너가기에
국수 한 그릇만 먹으면 되겠지 쉽게 생각했지만,
국수에 담기는 '자신만의 구슬'이 없어
환승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구슬이 생길 거라는 기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제 사장의 국숫집에서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정이 많고 다정한 다미 아저씨,
가끔은 노인처럼 때로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진여사,
차갑고 냉철하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제 사장과 함께 지내며
어느덧 이승에서의 시간은 흐릿해진 채
국숫집 생활에 적응해 나가게 된다.
국숫집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들렀다.
엄마와 딸, 20년 지기 친구,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겪은 아내 등
짝지어진 듯 서로를 이어주는
인연의 실타래가 엮여있다.
그들의 사연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네는 채이가 영 못마땅했지만,
항상 손님이 다녀가고 나면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고통으로 힘겨워하던 제 사장은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깨닫게 되며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환승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채이는 환승에 엮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아무런 이승에서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벌받는 시간을 보내던 제 사장도 자신과 엮인
채이의 운명에 관해 하나하나 알게 된다.
과연 형벌을 받는 제 사장은 기억을 찾고,
또 채이는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환승 세계의 사람들에게 숨겨진
비밀의 진실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갑자기 이승을 떠나 저승 사이 환승 세계에
동떨어지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기에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은
이야기를 따라 흥미로운 환승 세계의 설정에
푹 빠져들기에 충분한 서두였는데
환승 세계에 적응해 나가는 채이를 통해
국숫집에서 마주하는 각각의 감동적이고
마음 아픈 사연을 통해
결국에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타인과의 '인연'이라던가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승의 국숫집에서 제 사장이 내놓는 국수는
국물이나 고명을 떠나 붉은빛의 운명 구슬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얼핏 국물을 맛깔나는 빛깔로 물들이는 것 같지만
그 구슬을 먹는 손님들은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게 되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꿈을 포기했다고,
본인이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끼는 딸은 국수를 통해
사실 엄마가 자신을 좀 더 믿어주길 바라는
진심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보육원에서 자라
혼자 까칠하게 살아왔던 남자는
가족을 잃고 세상에 혼자뿐이라 오해했지만,
사실 평생 옆을 지켜주었던 친구가
가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략결혼이지만 외로웠던 삶의 유일한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남편과의 사별로 힘들어하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잃는 저주에 걸린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불행과 행복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늦게나마 알게 된다.
각자의 삶을 국수를 먹고 채이와 제 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과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그들은
후회 없는 끝맺음을 위해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이승에 돌아가게 된다.
전하지 못했던 진심과 어긋난 타이밍을 바로잡아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고 다시 이승으로,
혹은 누군가는 저승으로 떠나가는 발걸음을 보며
비록 '환승 세계'에서 국수를 먹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의미 있었고
채이를 귀찮아만 하는 것 같은 제 사장이
손님들에게 건네는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덜어지고
또 어린아이인 것 만 같았던 채이가
환승 세계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소설 속 판타지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감동적인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이승에서 저승을 넘어갈 때
우리를 후회 없게 만드는 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
그 사랑을 잊지 않는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서로에게 얽힌 운명을 마주하게 된
제 사장과 채이가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다정함을 잃지 않고
전하지 못한 진심과 후회의 마음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어떤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흘러가 사라지게 되고,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매 순간 후회 없이 소중한 진심을 담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혹여 미운 마음에 진심을 숨긴 인연은 없었던가,
미처 깨닫지 못해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은 없던가,
내 마음속 진심을 이만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한 진심과 함께 한 시간은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잊어버리더라도 잃어버리는 건 아니라는
책 속 채이의 말처럼 삶과 인연에 담겨있는 다정함이
결국엔 우리를 살게 하고 꼭 필요한 마음이라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 같은 뭉근한 온기가 남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