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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1970년 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판사가
'기왕 버린 몸이니 오히려 짝을 지어줘
백년해로 시키자'라며 양가 부모를 설득해
성폭행범과의 결혼을 제안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라며
피해당한 여성을 '문란한 여성'으로 지목했고,
당시만 하더라도 성범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때에는 당연했던 인식이자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이란
위와 같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억압과 차별로 피해를 받았을지
쉬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기에
그 일들은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
지금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종교, 사회, 정치가 여성에게 가하는 잔혹함은
지구 한편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거나
그 과정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고,
그들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단순한 하위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 대표적인 나라로 인도를 손꼽는다.
여자 혼자서 인도를 여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여성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는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1970년 보다 더 하다.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약자인 여성, 불가촉천민인, 노동 계급과 같이
억압받는 계층을 향한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반다야 사히티야'라는 저항문학 운동으로,
문학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카스트 제도와 가부장제, 위선적 전통과 관행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
고통을 겪은 이들이 스스로 이야기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5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자
인도 여성 작가인 마누 무슈타크의
단편소설 모음집 《하트 램프》는
여성을 둘러싼 자국 내 다양한 일상적 사건과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
무력한 삶에 대해 조명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있지만
종교, 사회, 정치 아래에서 핍박받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시없을 평생의 사랑을 속삭였지만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 앞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 아내를 들이는 남편,
딸만 내리 셋을 낳은 아내를 버리고
새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
어머니를 무시하는 아내를 탓하지만
그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의 의사도 묻지 않고
어머니의 재혼을 결정해 버리는 아들,
바람난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온 딸을
다시 집으로 되돌려 보내며
남편을 이해하고 기다리라 말하는 친정 부모,
남편의 바람대로 아들을 낳고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지만
그저 자신과 같은 종신 포로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여자.
각각의 주인공들은 종교와 사회,
그리고 남자들에 의해
자신의 주체성, 존재를 부정 당하고
자신의 의사를 짓밟히며 괴로워한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어떤 이는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거는 등
이 상황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한다.
남자는 아들을 출산하지 못하거나,
아이를 낳느라 아름다움을 잃은 여자들을
외면하고 쉽게 버리기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에게
그저 자신의 욕망을 투여해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걷게 한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 번 이혼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헤어질 수 있으며,
외도에 대해서도 신의 이름 아래
그를 충족시키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인
아내의 잘못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인 픽션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현실인 이야기로
읽는 이들에게 여성이 겪는 억압과 불평등을
때로 날카롭고 아프게,
어떤 장면에서는 블랙코미디처럼 우습게
이 날것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마주하며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애달픔,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의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약자에 대한 불평등,
여성에게 얹어진 비뚤어진 시선은 물론
그들을 깎아내려 우습고 천하게 만들며
그 위에 군림하고 속박하려는
사회와 남성들의 비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일이 아니니까,
내가 겪지 않은 일이니까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소설 속 궁지에 몰린 여성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를 쉬이 외면할 수 없었던 다른 여성처럼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로 느끼게 되었다.
책과 영화로 발표되며 남성들 사이에서
이 모든 일이 한 여자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며
지나치고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했던
<82년생 김지영>과 같이,
현지에서도 해석과 의견이 분분한 이 작품 역시
여성과 남성, 세대와 종교 등에 따라
분명 다른 시선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로 체감했던,
그들이 마주한 세상은 결코
소설보다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되려 더 한 경험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소설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르포르타주처럼 느껴지는 글이었다.
책을 읽는 이들이 그저 누군가의 참상,
특정 종교나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게 가혹하게 얹어진 이 현실이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것임을 깨닫고
비단 타국의 여성이 아닌
내가 속한 사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어머니, 누이, 아내나 여자친구 등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시선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억압과 복종에도 굴하지 않고,
남성들을 향한 저항의 목소리로
수탉을 저주하던 용기,
교육을 받고 학위를 따낸 스스로를
남편보다 낮추고 싶어 하지 않던 그녀들처럼
이 책의 문장들이 변화의 시작점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