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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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느 날 갑자기 머지않아 곧
시력이 전부 사라지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장애가 아닌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장애 앞에서
과연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 책은 열다섯 살에 시력을 잃기 시작해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을 사는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가 써 내려간
일명 '지랄맞은' 글이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소극적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말을 할 수 없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몸을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자의'대로 살아내기 힘들기에
주체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타인의 도움'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내듯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발칙하고 요망한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승리는 장애인이자 마사지사로서,
한 명의 딸이자 여성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써 내려갔다.

책은 마사지사로 일하는 그녀가
급작스러운 선배의 부탁으로 출근하던 길
택시 안에서 마주한 불꽃축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맞닥뜨린 불꽃놀이는
이제 그녀의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
펑펑 터지는 별과 불꽃들은
뜨겁고 치열하게 부딪히며 채워온
인생 이야기를 위한 서두이기도 했는데

읽어 내려 갈수록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때로는 얼얼하고, 모성애가 없는듯싶다가도
사방으로 딸의 눈을 낫게 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던
엄마와의 애증 어린 과거의 조각들부터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
집성촌에서 더부살이하듯 눈치 속에 살아온
어린 시절의 이야기,

성인이 되고 장애인 마사지사로 살아가면서
'비극'에 머물러 있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가 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핍과 그 과정에서 생긴 흉터까지
가감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용기 있게 드러낸
지랄맞지만 화끈한, 진짜 조승리라는 사람을
알게 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나
혹은 장애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현실의 높은 벽이나 한계를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은 '이러다 비극으로 끝나겠구나'라며 자조했지만,
어둠이 가득한 현실은 많은 것을 집어삼키고
그녀의 일상과 삶을 뒤흔들었음에도
그 안에서 동시에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그녀에게서
짙은 밤 빛나는 불꽃같은,
축제가 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이 쥐여주는 '지랄'에 맥없이 당하고 쓰러지지 않고
망나니 칼춤을 추듯
'어디 누가 더 지랄맞나 한번 나랑 싸워보자'라며
그에 맞먹을 정도로 열정적인 조승리의 '승리'에
책장을 넘길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담담하게 써내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아리고 슬프고 애틋한 그녀의 삶에
응원과 존경의 마음이 든다.

아득하고 울화 터지는 삶 속에서도
눈을 가만히 감고
어딘가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에 맞춰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별과 불꽃 줄기를 피워내는
그녀의 축제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참 빛나고 또 아름다운 모양일 것 같다.

화려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불꽃놀이 한 판,
혹은 굿놀이 한 판을 보고 나온 듯한 그녀의 글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아리는 잔상이 남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뛰어넘게끔
주체적인 삶을 살고
마냥 착하고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평범하고 솔직한 한 사람 조승리라면
이 삶의 지랄맞음을 축제로
언제까지고 기꺼이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안심이 된다.

이런 순간이 쌓이고 쌓이면
그녀가 그러했듯 우리 그리고 나 역시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으로 살면
모두의 삶은 축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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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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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해진 '혼기'가 없는 시대라지만

부모님에게 있어 자식의 결혼은

자식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본인들의 '인생과업' 중 하나로 생각해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뒤부터는

'결혼할 생각 없니?' 하는 질문을

잔소리처럼 자꾸 들먹인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그런 질문이 나오면

자연스레 다른 화제로 돌리거나

'내 인생인데, 왜 당신들의 뜻을 강요하지?'

싶어서 되려 반발이 드는 마음이 들곤 했는데

우연히 이 책 제목을 보고는

'부모님이 어떤 마음인 걸까' 하는 궁금증에

펼쳐들게 되었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해 갈등 아닌 갈등을 겪고 있는

부모님과 자녀 세대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법한

소재가 담긴 이야기로


현실 속 사회문제를

재치 있고 생생한 표현으로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이다.


책의 주인공은

28살 외동딸 도모미를 둔 50대 주부 지카코.

그녀는 어느 날 문득

나이가 들어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딸 옆에 부모인 자신들이 있어주지 못하게 되고

아직 결혼하지 않아 혼자 남게 된 딸을 떠올리자,

혼자 살면 경제력도 문제이지만

외로움 속에 살아갈 것이라는 걱정으로

'부모 대리 맞선'이라는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부모 대리 맞선은 먼저 부모들끼리 만나

신상명세서를 교환한 뒤

자녀들에게 의사를 물어 맞선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지카코는 맞선에만 참여하면

딸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하지만,

막상 맞이한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지카코는 결혼도 하나의 손익계산처럼 따지는

부모들 앞에 생각이 많아지기만 하고

여기에서 누구를 골라야 하나 고민에 빠지고 만다.


몇 번의 대리 맞선의 실패에 지치는 건

지카코와 남편뿐만 아니라

딸인 도모미 역시 매한가지이고,

회차를 더해갈수록 '억지로 끼워 맞춰

적당히 하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보다는

혼자 사는 삶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각오가 된다.


그제야 '결혼=인생의 완성'이라 생각했던

그동안의 삶이 정답은 아니라고 깨닫게 된다.


그녀의 주변에만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 커리어를 쌓으며

독신인 친구들과 집을 사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이뤄가며 삶을 사는 친구도 있고,

일찍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한 뒤

혼자서 육아를 꾸려가는 친구도 있다.


이에 비하면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자신의 커리어도 놓지 않은

지카코와 같은 삶도 있고 말이다.


이처럼 같은 나이, 세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삶의 형태로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녀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물론,

딸의 결혼 앞에 우선시했던 가치가 흔들리고

재정립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혼자 남은 외로운 삶'과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에게 기대어 소극적이던 딸 도모미 역시

맞선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나이나 외모,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또 본인의 '주관'을 가지게 되었다.


지카코 가족은 맞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단합하며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결혼의 역할,

그리고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어떠한 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수많은 경험 끝에 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그런 답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결혼'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결말을 맞이하였다.


원하는 조건을 추려 맞는 값을 충족하는 사람끼리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는 조건을 선택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과 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은 울림을 주었다.


결국엔 가정을 이루어 긴 인생을 살아가는 건

자녀의 몫이자 시간이기에

부모님의 가치관이나 강요만으로

결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결혼을 하면 고민은 끝인 것 같아도

자식은 부모에게 늘 걱정거리이기에

무조건 '적령기'를 따져 독촉하기보다는

자녀가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 결혼을 결심할 수 있도록

뜻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


자식 역시 마냥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기 싫다는 편견을 가지고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결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도 답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인생에 있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 결혼이라는 선택의 길목 앞에

행복할 수 있고

서로의 뜻을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연을 찾아가기 위한 지카코 가족의 여정,

결혼을 하는 것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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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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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를 뽑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는
어릴 때 젖니를 뽑던 때의 기억이 문득 선명하게 떠올랐다.

원래 있던 이 였음에도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감,
엄청나게 흔들려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불안함,
그렇지만 쉬이 빠지지 않은 채 자꾸 미끄러지기만 하고
밥을 먹을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에 자꾸 혀로 이를 밀어내면서도
아플 것 같은 두려움에 뽑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공포감이 느껴지던 그때의 기분 말이다.

표준을 강요하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맞추느라
흔들리는 여성의 '존재',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흔들리고
또 이를 극복해나가고자 애쓰는
주인공 '나'의 모습에서
젖니가 흔들릴 때 느끼던 그때의 마음과
닮은 감정을 엿볼 수 있고,
또 젖니를 뺀 뒤에 찾아오는
이만큼 자라난듯한 성장의 마음은
읽는 내내 '나'의 이야기인듯한 느낌이라
어마어마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20대 여성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이름은 따로 언급되지 않고 오직 '나'의 입장에서
연인인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어떤 이야기든 자연스레 화자의 입장을 쫓기 마련이지만
이를 떠나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는
읽을수록 아직 미성숙하고 흔들림이 많았던
20대를 떠올리게 해
진짜 '나'의 이야기인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그녀는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결핍과 불안정 속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두고 떠나
애정 없이 깨져버린 평온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
'사랑받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진짜 본 모습과 욕구는 감춘 채
사회가 규정하는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식욕과 욕구를 억제한다거나
거절하고 싶은데도 거절하지 못하며,
실현 불가능한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이상을
자신에게 강요해오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어느 날 강한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28살이 되던 해에 만난
'당신'과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존재는 그녀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언가를 꿈꾸고 욕망하게 하며,
그 과정 속 외면해왔던 과거를 직면하게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를 런던에서 바르셀로나로,
관능과 감각으로 가득한 새로운 삶으로 이끌지만
그녀는 '욕구가 충족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게고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채
위축되고 상대의 반응에만 신경 쓰게 된다.

시간순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뒤죽박죽 사건 순으로 나열된 그녀의 이야기 속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불안과 두려움,
상처받은 영혼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녀는 '당신'에게 독백하는 듯한 이 고백들 속에
미처 뽑아내지 못한 젖니와 같은
과거의 상처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결국엔 스스로 마주하며,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성장해
용기 있게 걸음을 내딛는 모습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다.

그저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면적인 한 여성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노동자 계층의 삶, 신체에 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복잡한 감정에서 오는
혼란하고 흔들리는 마음은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마주하게 된
지금까지의 그녀를 만든 과거의 궤적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새로운 세상,

이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하는 그녀의 망설임조차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감정이었기에
무척이나 공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가 떠난 가정환경에서 느낀 죄책감이나 눈치,
여성을 향한 일상적인 폭력과
불쾌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터치,
사회에서 규정하는 '표준'에 맞추기 위한 다이어트 등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하고
사회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진짜 모습과 욕구는 감춘 채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과 감정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기도 했다.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따라갈수록,
실은 그 깨진 조각들이 미처 뽑아내지 못한 젖니처럼,
그녀만이 아닌 우리 몸에도
여전히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계속해서 "뭘 원해?"라고 묻는 '당신'에게
어떤 대답도 솔직하지 못했던 그녀가
스스로 억눌러왔던 감정과 욕구를 다시 펼쳐
주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된 모습은

용기 있게 젖니를 뽑고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거쳐 새로이 나아가는
그녀의 성장이자 '나'의 성장을 엿본듯해
후련하고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단 여성들에게 씌워진 프레임을 깨부수고
자신을 찾는 여성 소설이라기 보다
사회가 규정하고 기대하는 기준 아래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자기 자리를 찾고자 하는 모두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는 성장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지막 '당신'의 이야기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나'의 이름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낼지
그 뒤가 더 궁금해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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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편의점 -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
유철현 지음 / 돌베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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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어디서든 쉽게 편의점을 만나볼 수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체인 형태의 슈퍼마켓이나
작은 개인 잡화점이 대부분이고
편의점은 거의 만나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었다.

일반 슈퍼마켓은 과자 겉봉에 쓰인
소비자 판매가 보다 다만 몇십 원씩이라도
할인 판매를 하는 게 일명 국룰이었기에
매정하게 정가 그대로 받는 편의점은
깍쟁이처럼 인간미 없고 '비싸게 파는 곳'이라는
편견으로 엄마는 '절대 가지 마'라며
단단히 일러두곤 했었다.

그런 편의점은 시간을 거듭하며
삼각김밥이나 김밥, 샌드위치 같은
즉석식품을 가볍게 살 수 있는 장소이자
거스름돈이 급할 때 껌 한 통을 사고
잔돈을 만들기 위해 들르는 장소로 발전했다.
자주 찾기엔 '꼭 편의점에 와야 할 이유'가 없어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리고 또 한바탕 시간이 지나 이제 편의점은
내가 찾는 어떤 종류의 물건이든 있는 곳,
든든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식당 대신
혹은 시원한 얼음컵과 파우치 음료로 카페 대신
시간이 늦거나 주말엔 약국 대신 찾을 수 있는
내가 찾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장소로서의
역할을 해주는 고맙고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편의점이 생겨난 이후 긴 시간을 거쳐
이렇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변화의 이면에
편의점에서 일하며 땀을 흘리고
'편의점을 찾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편의점 회사를 첫 직장으로 선택해
인생의 3분의 1, 하루의 절반을 편의점이라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홍보팀 직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가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사고 즐기는
각종 편의점의 제품부터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들과의 에피소드까지,

몇 년여 전부터 편의점을 운영하거나 일하며
다양한 방문 고객과의 일화나
자영업자로서의 현실적인 고충을 담은
봉달호, 봉부아 작가의 에세이와 달리
본사 차원에서의 제품 마케팅이나
가맹점을 관리하며 느낀 감정들을 담아내
그동안 익숙하게 방문했던 편의점이라는 장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저 발주가 들어온 제품을 납품하고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행위를 넘어서
'보통'의 결과를 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의 매일에 쌓인
열정과 애정 어린 노력을 통해

우리가 평소 숨 쉬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마주하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감탄 어린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단순한 제품과 매출 이야기를 넘어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과 업을 진심을 다해
도전하고 시름하고 돌파해온 작가의 마음속에 담긴
애정 어린 메시지들은 장르와 업종이 다를 뿐
퍽퍽하고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고군분투기라는 점에서도
많은 공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편의점에서 일한다'라는 말에서 떠올리기 쉬운
고정관념이나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변화하는 의미를 찾으며
자긍심을 갖고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그의 프로페셔널함에 존경스러운 마음과
'나는 내 일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또 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내 일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된 독서였다.

그저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이라 생각하며
쉬이 지나치는 편의점이라는 세계
그 이면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향기와
문명의 발자국이 남겨져있다는 걸
작가의 입사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따라오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삭막하고 깍쟁이 같은 곳이라 생각했던 편의점이
이제는 어두운 골목 한 켠에 밝게 불을 밝히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든든하고 고마운 장소가 되어 우리 곁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 변모해온 편의점이
매일을 애쓰며 노력하는 '편의점 홍보맨'의
하루하루가 더 쌓여 이만큼 시간이 더 지나가면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게 될지
그 변화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오해하고 있던 한 사람의 진면모를 느끼듯
편의점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삼각김밥 하나,
우유 하나가 이제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편의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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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아이
다케미야 유유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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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올해로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을 맞이한 소년 고타로가 있다.

방학 동안 한여름의 시골 뙤약볕 아래
수박밭에서 하루 여섯 시간 동안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생 기억될 만한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학의 끝을 맞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받은 수박 한 통을 손에 든 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그의 평범하고 '아무 일 없던' 삶의 어느날
어딘가 어색하고 괴짜처럼 행동하는
카무이를 마주치게 된다.

엉겁결에 엉키게 된 그에게서
알 수 없는 낯섦과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느낀 고타로는
적당히 가짜 이름을 둘러대고 자리를 떠나는데
새로 시작한 새 학기 학교에서 다시 그를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고타로에게는
사실 숨겨진 사연이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으며 심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이 있고, 온 가족이 동생을 간병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어 혼자 집안 일과 학업을 병행하지만,
힘든 내색을 하기는커녕 주변 친구들에게는
여동생의 존재와 투병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방학에 마주친 후 학교에서 다시 만난
카무이가 고타로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친구가 되어달라 조르고, 그의 뒤를 쫓던
카무이에게 아픈 여동생의 존재를 들키며
고타로의 평범한 일상이 뒤집히고 무너지게 된다.

시간을 더해가며 자꾸 얽히는 고타로와 카무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 속 폭발을 가져오게 되는
카무이의 정체와 한 사건은
열일곱 소년들의 삶을 뒤흔들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누적 판매 부수 500만 부의 기록을 세운
《토라도라》의 저자 다케미야 유유코의 최신작으로,
출간 전부터 출판사 직원 및 서점 적원,
저널리스트 등에게 재미와 작품을 인정받은
압도적인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반짝이는 열일곱 청춘 속에서 겪는
두 주인공의 불안과 외로움, 우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꽤 두께감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펼치고 난 뒤에는 덮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가져다준 책이었다.

일본 작품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은 물론
학원물 특유의 순수하면서도 흔들리는 10대의
마음을 담아내었기에
고타로의 감정선을 따라 그 시절의 마음으로
되돌아간 듯 때로는 아찔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그들의 학교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사연을 가진 듯한 카무이로
일상이 흔들리는 고타로의 혼란스러움은
그만의 감정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이해 가지 않을 만큼
'저 아이의 정체는 뭘까? 왜 저러는 걸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탄탄하고 디테일한 구성으로
1장에서는 고타로와 카무이의 만남,
2장에서는 학교에서 다시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쌓아가는 그들의 우정,
마지막 3장에서는 갈등과 비로소 마주한 진실 앞에
방황하고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순수한 학창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일상의 싱그러움을 시작으로
잔혹한 성장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구원'의 의미까지
다양한 감정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속 감정을 숨긴 채
'가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 고타로가
카무이를 만남으로써
'태어난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

자기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은 삶을 살아온
카무이 역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알아주는 고타로를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으며

서로 감춰왔던 속마음과 비밀을 공유하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우정을 나누며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비록 겉으로는 나약하고 이상한
청춘의 모양인 듯 보이지만
그것이 서로를 향한 구원이라는 것이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반전처럼 다가오는 카무이의 진실,
그리고 그 아래 어둡고 심각하게 드러나는
반전과 다시 마주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은
숨을 턱 막히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루뭉술한 결말이 아니라
충격적인 진실은 물론 하나씩 차근차근 회수되는 복선,
'인생의 쓸모'에 대한 질문은
청춘소설을 넘어 인생의 모든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어 많은 여운이 남는다.

평범한 일본 특유의 학원물 감성을 예상했다가
세게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지만
책이 남긴 메시지가 기대한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과 생각을 안겨준 독서여서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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