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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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를 뽑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는
어릴 때 젖니를 뽑던 때의 기억이 문득 선명하게 떠올랐다.

원래 있던 이 였음에도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감,
엄청나게 흔들려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불안함,
그렇지만 쉬이 빠지지 않은 채 자꾸 미끄러지기만 하고
밥을 먹을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에 자꾸 혀로 이를 밀어내면서도
아플 것 같은 두려움에 뽑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공포감이 느껴지던 그때의 기분 말이다.

표준을 강요하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맞추느라
흔들리는 여성의 '존재',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흔들리고
또 이를 극복해나가고자 애쓰는
주인공 '나'의 모습에서
젖니가 흔들릴 때 느끼던 그때의 마음과
닮은 감정을 엿볼 수 있고,
또 젖니를 뺀 뒤에 찾아오는
이만큼 자라난듯한 성장의 마음은
읽는 내내 '나'의 이야기인듯한 느낌이라
어마어마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20대 여성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이름은 따로 언급되지 않고 오직 '나'의 입장에서
연인인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어떤 이야기든 자연스레 화자의 입장을 쫓기 마련이지만
이를 떠나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는
읽을수록 아직 미성숙하고 흔들림이 많았던
20대를 떠올리게 해
진짜 '나'의 이야기인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그녀는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결핍과 불안정 속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두고 떠나
애정 없이 깨져버린 평온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
'사랑받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진짜 본 모습과 욕구는 감춘 채
사회가 규정하는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식욕과 욕구를 억제한다거나
거절하고 싶은데도 거절하지 못하며,
실현 불가능한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이상을
자신에게 강요해오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어느 날 강한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28살이 되던 해에 만난
'당신'과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존재는 그녀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언가를 꿈꾸고 욕망하게 하며,
그 과정 속 외면해왔던 과거를 직면하게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를 런던에서 바르셀로나로,
관능과 감각으로 가득한 새로운 삶으로 이끌지만
그녀는 '욕구가 충족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게고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채
위축되고 상대의 반응에만 신경 쓰게 된다.

시간순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뒤죽박죽 사건 순으로 나열된 그녀의 이야기 속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불안과 두려움,
상처받은 영혼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녀는 '당신'에게 독백하는 듯한 이 고백들 속에
미처 뽑아내지 못한 젖니와 같은
과거의 상처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결국엔 스스로 마주하며,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성장해
용기 있게 걸음을 내딛는 모습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다.

그저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면적인 한 여성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노동자 계층의 삶, 신체에 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복잡한 감정에서 오는
혼란하고 흔들리는 마음은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마주하게 된
지금까지의 그녀를 만든 과거의 궤적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새로운 세상,

이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하는 그녀의 망설임조차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감정이었기에
무척이나 공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가 떠난 가정환경에서 느낀 죄책감이나 눈치,
여성을 향한 일상적인 폭력과
불쾌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터치,
사회에서 규정하는 '표준'에 맞추기 위한 다이어트 등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하고
사회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진짜 모습과 욕구는 감춘 채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과 감정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기도 했다.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따라갈수록,
실은 그 깨진 조각들이 미처 뽑아내지 못한 젖니처럼,
그녀만이 아닌 우리 몸에도
여전히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계속해서 "뭘 원해?"라고 묻는 '당신'에게
어떤 대답도 솔직하지 못했던 그녀가
스스로 억눌러왔던 감정과 욕구를 다시 펼쳐
주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된 모습은

용기 있게 젖니를 뽑고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거쳐 새로이 나아가는
그녀의 성장이자 '나'의 성장을 엿본듯해
후련하고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단 여성들에게 씌워진 프레임을 깨부수고
자신을 찾는 여성 소설이라기 보다
사회가 규정하고 기대하는 기준 아래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자기 자리를 찾고자 하는 모두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는 성장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지막 '당신'의 이야기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나'의 이름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낼지
그 뒤가 더 궁금해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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