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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아이
다케미야 유유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놀 / 2024년 3월
평점 :
여기 올해로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을 맞이한 소년 고타로가 있다.
방학 동안 한여름의 시골 뙤약볕 아래
수박밭에서 하루 여섯 시간 동안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생 기억될 만한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학의 끝을 맞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받은 수박 한 통을 손에 든 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그의 평범하고 '아무 일 없던' 삶의 어느날
어딘가 어색하고 괴짜처럼 행동하는
카무이를 마주치게 된다.
엉겁결에 엉키게 된 그에게서
알 수 없는 낯섦과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느낀 고타로는
적당히 가짜 이름을 둘러대고 자리를 떠나는데
새로 시작한 새 학기 학교에서 다시 그를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고타로에게는
사실 숨겨진 사연이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으며 심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이 있고, 온 가족이 동생을 간병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어 혼자 집안 일과 학업을 병행하지만,
힘든 내색을 하기는커녕 주변 친구들에게는
여동생의 존재와 투병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방학에 마주친 후 학교에서 다시 만난
카무이가 고타로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친구가 되어달라 조르고, 그의 뒤를 쫓던
카무이에게 아픈 여동생의 존재를 들키며
고타로의 평범한 일상이 뒤집히고 무너지게 된다.
시간을 더해가며 자꾸 얽히는 고타로와 카무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 속 폭발을 가져오게 되는
카무이의 정체와 한 사건은
열일곱 소년들의 삶을 뒤흔들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누적 판매 부수 500만 부의 기록을 세운
《토라도라》의 저자 다케미야 유유코의 최신작으로,
출간 전부터 출판사 직원 및 서점 적원,
저널리스트 등에게 재미와 작품을 인정받은
압도적인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반짝이는 열일곱 청춘 속에서 겪는
두 주인공의 불안과 외로움, 우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꽤 두께감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펼치고 난 뒤에는 덮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가져다준 책이었다.
일본 작품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은 물론
학원물 특유의 순수하면서도 흔들리는 10대의
마음을 담아내었기에
고타로의 감정선을 따라 그 시절의 마음으로
되돌아간 듯 때로는 아찔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그들의 학교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사연을 가진 듯한 카무이로
일상이 흔들리는 고타로의 혼란스러움은
그만의 감정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이해 가지 않을 만큼
'저 아이의 정체는 뭘까? 왜 저러는 걸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탄탄하고 디테일한 구성으로
1장에서는 고타로와 카무이의 만남,
2장에서는 학교에서 다시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쌓아가는 그들의 우정,
마지막 3장에서는 갈등과 비로소 마주한 진실 앞에
방황하고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순수한 학창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일상의 싱그러움을 시작으로
잔혹한 성장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구원'의 의미까지
다양한 감정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속 감정을 숨긴 채
'가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 고타로가
카무이를 만남으로써
'태어난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
자기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은 삶을 살아온
카무이 역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알아주는 고타로를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으며
서로 감춰왔던 속마음과 비밀을 공유하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우정을 나누며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비록 겉으로는 나약하고 이상한
청춘의 모양인 듯 보이지만
그것이 서로를 향한 구원이라는 것이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반전처럼 다가오는 카무이의 진실,
그리고 그 아래 어둡고 심각하게 드러나는
반전과 다시 마주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은
숨을 턱 막히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루뭉술한 결말이 아니라
충격적인 진실은 물론 하나씩 차근차근 회수되는 복선,
'인생의 쓸모'에 대한 질문은
청춘소설을 넘어 인생의 모든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어 많은 여운이 남는다.
평범한 일본 특유의 학원물 감성을 예상했다가
세게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지만
책이 남긴 메시지가 기대한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과 생각을 안겨준 독서여서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