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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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느 날 갑자기 머지않아 곧
시력이 전부 사라지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장애가 아닌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장애 앞에서
과연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 책은 열다섯 살에 시력을 잃기 시작해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을 사는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가 써 내려간
일명 '지랄맞은' 글이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소극적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말을 할 수 없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몸을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자의'대로 살아내기 힘들기에
주체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타인의 도움'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내듯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발칙하고 요망한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승리는 장애인이자 마사지사로서,
한 명의 딸이자 여성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써 내려갔다.

책은 마사지사로 일하는 그녀가
급작스러운 선배의 부탁으로 출근하던 길
택시 안에서 마주한 불꽃축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맞닥뜨린 불꽃놀이는
이제 그녀의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
펑펑 터지는 별과 불꽃들은
뜨겁고 치열하게 부딪히며 채워온
인생 이야기를 위한 서두이기도 했는데

읽어 내려 갈수록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때로는 얼얼하고, 모성애가 없는듯싶다가도
사방으로 딸의 눈을 낫게 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던
엄마와의 애증 어린 과거의 조각들부터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
집성촌에서 더부살이하듯 눈치 속에 살아온
어린 시절의 이야기,

성인이 되고 장애인 마사지사로 살아가면서
'비극'에 머물러 있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가 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핍과 그 과정에서 생긴 흉터까지
가감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용기 있게 드러낸
지랄맞지만 화끈한, 진짜 조승리라는 사람을
알게 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나
혹은 장애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현실의 높은 벽이나 한계를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은 '이러다 비극으로 끝나겠구나'라며 자조했지만,
어둠이 가득한 현실은 많은 것을 집어삼키고
그녀의 일상과 삶을 뒤흔들었음에도
그 안에서 동시에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그녀에게서
짙은 밤 빛나는 불꽃같은,
축제가 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이 쥐여주는 '지랄'에 맥없이 당하고 쓰러지지 않고
망나니 칼춤을 추듯
'어디 누가 더 지랄맞나 한번 나랑 싸워보자'라며
그에 맞먹을 정도로 열정적인 조승리의 '승리'에
책장을 넘길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담담하게 써내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아리고 슬프고 애틋한 그녀의 삶에
응원과 존경의 마음이 든다.

아득하고 울화 터지는 삶 속에서도
눈을 가만히 감고
어딘가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에 맞춰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별과 불꽃 줄기를 피워내는
그녀의 축제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참 빛나고 또 아름다운 모양일 것 같다.

화려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불꽃놀이 한 판,
혹은 굿놀이 한 판을 보고 나온 듯한 그녀의 글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아리는 잔상이 남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뛰어넘게끔
주체적인 삶을 살고
마냥 착하고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평범하고 솔직한 한 사람 조승리라면
이 삶의 지랄맞음을 축제로
언제까지고 기꺼이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안심이 된다.

이런 순간이 쌓이고 쌓이면
그녀가 그러했듯 우리 그리고 나 역시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으로 살면
모두의 삶은 축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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