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부가 있었다 - 흔들리는 투자자를 위한 부자의 독설 41
정민우(달천)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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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다양한 연령층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어느 편에서는 아버지 역할을 맡은
성동일 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었다.

"금리가 쪼까 떨어져서 15% 밖에 안하지만
그래도 따박따박 나오고 은행만큼 안전한 곳이 없지."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것 같은 은행금리가
그 당시에는 낮다고 한탄하는 모습에서
세월에 따른 격세지감이 느껴졌는데,

내가 어릴 적 부모님 세대가 한창 경제생활을 하던
1980년대 부터 1990년대는
직장생활을 통해 받은 월급을 가지고 생활하고,
좀 알뜰하게 '미래'를 생각하는 가정에서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투자'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만 해도 금리 덕에 꼬박꼬박 저축해두기만 해도
그 이자율 만으로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또 집이나 차를 살 수도 있었으니 지금과
투자의 대상과 이유가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은 저축만으로는 집을 사기도 빠듯하고
그렇기에 대출을 받는 경우가 허다한지라,
아무리 예전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지만
올라간 금리에 이자를 내느라 허리가 휘고
한창 금액이 널뛰는 부동산에 투자하자니
곧 '가격은 내린다'는 소문이나 경기침체기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은 자꾸 투자를 망설이고
안정적인 곳만 찾게 한다.

이 책을 쓴 저자 정민우는 30대에 전세금 1,500만원을
종잣돈으로 시작해 현재 100억대의 자산가이자
12년간 단 한번도 손해본 적이 없는 부동산 대가이다.

책의 표지와 도입부에 소개된 그의 성공을 접하고는
어떻게 그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누구나 빚을 지며 집을 얻고 평생 대출금을 갚으며
거북이 등껍질 같은 집을 지고 다니는거겠지 싶은
요즘 세상에 이렇게 대단한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진건지
알 수만 있다면 그런 미래가 나에게도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마음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부동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일반인은 물론
어떤 방향으로 부동산 투자를 해야할 지 고민하는
초보투자자를 위한 바이블 같은 마인드셋을 제시하며

'이런 투자가 성공한다'는 공식같은 이야기보다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우리의 '태도'와 바꿔야만 하는 '관점'을 깨우쳐주는데
그 초점을 맞추었는데

갭투자나 부동산 경매, 수익형 부동산을 보는 눈 등은
당장에 부동산 거래가 전무하다시피 한 내게는
어렵고 낯설은 부분이 많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낸' 자수성가한
한 사람의 마인드와 '부'를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은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부분을 자극하기도 했고

또 부동산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조언과 팁으로
'부동산으로 부에 다가가는 길'에 대한
그와 수강생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막연하게 '나는 부동산 같은건 모르니까 안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부모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투자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이라 생각해왔다.
리스크가 있는 투자는 수익을 눈 앞에 두고도
간발의 차로도 주저앉을 수 있으니,
그 수익이 미미하더라도 원금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저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부모님이 늘 저축만으로 집을 사고 늘리고,
부동산을 사는 것처럼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건
'진짜 내 능력이 아닌 불필요한 돈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도 부동산 투자는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단순히 당장 내 손에 주어질 수 있는
단기적 수익만을 계산하기 보다
이 경험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겠다는 가르침,
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도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판단력과 추진력이 있을 때
비로소 '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저축만을 투자의 전부로 삼았던 초심자이지만,
그가 책을 통해 써내려간 조언들을 통해
그 고정관념의 알을 깨고 나가면 내가 꿈꾸던 것 이상의
부를 가진 부동산 투자의 고수가 될 수 있을거라는
두근두근 떨리는 기대감이 든다.

부동산 투자를 떠나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생각부터가 이미 다르기에,
그처럼 부자의 관점과 태도로 임하면
그 어떤 일이든 쌓아가는 시간과 경험 아래
다른 결말로 나를 이끌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곁에 두고 차근차근 공부해나가며
그의 책과 함께 멀지 않은 미래에 부동산 첫 발을
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저축만 해오신 부모님께도 추천하고 싶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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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타 가족
브랜던 홉슨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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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체로키족 소년인 열 다섯살의 레이 - 레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쇼핑몰에 가다가 인종주의를 가진
경찰의 오해로 인해 총격으로 죽게 된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레이 - 레이 가족의 삶은 변했다.
15년후 가족은 따로 떨어져 살며 각자의 이유로
외로이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마인 마리아는 남편 어니스트의 치매가 악화되어
고민이 많은 한편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누나 소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과의 로맨스에
집착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고독한 삶을 산다.
오래전 가출한 막내 에드가는 가족들이 온통
레이 - 레이 중심인 것에 느낀 소외감을 달래려
약물에 의존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정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마리아와 어니스트는 한 체로키족 소년을
위탁보호하게 되며 그를 집에 들이게 되는데,
낯선 그 아이에게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느끼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딸인 소냐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빈 호프라는 남자에게
아슬아슬하게 접근하는데, 만남을 거듭할 수록
그에게는 흥미를 잃지만 그의 아이인 루카에게는
알 수 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그의 약물복용에 지친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자,
약에 잔뜩 취해 홀로 모텔방 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에드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 '어스름의 땅'이라는
어딘지 알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공간에 빠진다.

이후 며칠간 이들은 육신과 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 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현실공간과 그들에게 벌어진 초자연적 현상,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후 각자 다르게 나타나는
트라우마를 폭넓게 보여주며 쉴새없이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 역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처음에는 나의 아픔과 같을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에
공감과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데,
읽어나갈수록 이 가족에게 닥친 현대적 비극과
그들의 조상인 체로키족 원주민이 맞닥뜨렸던
역사적 대학살의 연관성을 탐색하며

수 세기에 걸친 폭력의 유산에 여전히 시달리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통해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와 지속적인
불평등이라는 더 넓은 시선으로 읽게 되었다.

또한, 중간중간 등장하는 체로키족 구전에 나타난
'눈물의 길'이라 불리는 인디언민족 대이동과
학살이라는 역사로까지 이어지게 되며,
인종주의가 만들어낸 사회문제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계속되는 이 차별의 역사를
문학에 녹여내었다는 점에서도
참 의미있는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각 가족들의 트라우마는 각기 다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엄마인 마리아는 위탁소년의 눈동자에서
아들의 영혼을 보기도 하고,
소냐는 스토커처럼 빈에게 접근하는 와중에
그의 아들 루카의 표정에서 남동생을 느끼기도 하며,
에드가는 여자친구 이름을 죽은 형의 이름처럼
바꿔 부르기도 한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그런 등장인물의 행동을 제 3자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인 그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보여주며
그들로서 살아보도록 그 고통속에 불러들임으로써
오히려 진심으로 공감하고 연민하게 된 것 같다.

비극적 사건 앞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에
대처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영혼을 저미는 고통의 심연에 빠지게 하고
나의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도 했지만,

"어쩌면 연민이 치유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던
마리아의 용서 아닌 용서,
루카를 위해 빈을 떠나게 해주는 소냐,
형을 미워했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에드가가
어스름의 땅에서 떠날 수 있게 된
아픔의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상처를 덜어내고 그들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모닥불을 사이에 마주하는 결말이
책장을 덮을 때는 마음을 무척 따뜻하게 해주었다.

비록 비극적인 일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화와 회복, 조화와 평화, 연민과 공감으로
마침내 치유를 경험하게 된 그들의 용기있는 노력에
뭉클한 마음도 든다.

마음 한자락에 나 또한 위로와 치유가 되었으니
이 또한 참 감사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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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게 된 모든 것 - 기억하지 못하는 상실,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니콜 정 지음, 정혜윤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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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 니콜 정은 한국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자 마자 한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가 살던 오리건은 아시아인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백인 마을로,
'그분들(친부모)은 너에게 입양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라는 설명과 양부모의 충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는 다른 외모로 인해
자라는 내내 많은 아픔을 겪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었던 니콜은 결혼과 임신을 하게 되며
문득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아이에게만큼은 뿌리 없이 살아간다는 감각,
자신만 따로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고독,
윗 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텅 빈 가계도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이유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자 조심스레 가족 찾기에 나서게 된다.

가족을 찾던 니콜은 중계인을 통해
먼저 친자매들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거짓과 비극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하고
또 한 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암울한 가족사와 복잡하고 어두운 진실을 대면할지,
이제 적당히 물러서 재회의 기쁨만을 누릴지.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 관계, 뿌리에 대한 갈망 으로 그녀는
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대면하기로 용기있게 결단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친부모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
존재인지, 진실이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친부, 언니와의 관계로
그는 자신과 그들의 감정,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이런 고민을 하며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들려줄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도울지에 대한 부분에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친부모, 가족과의 재회는
그 자체로 평화를 되찾는 구원이 아니라,
그제서야 그 때부터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뚜렷한 출발점이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
이 일반적인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있는 내가 가진
입양가족과 입양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글 이었다.

'상실'이라는 감정은 본래 가정의 부모와 형제,
혹은 그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에 한해
그것들을 잃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어
인생의 출발점부터 이미 다른 가정에 속한 경우에는
그 뿌리가 궁금할 수는 있지만
상실감이 느껴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왔다.

입양된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명백히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온 경험,
다른 생김새로 받은 숱한 놀림과 따돌림,
'백인이 아닌게 불편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 작가의 담담한 자기고백을
읽어 내려가며 쉽게 단정짓고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뿌리를 찾아나서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상실을 안긴 가족의 모순적인 부분까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로
치유와 성장의 첫 걸음을 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니콜의 모습에서
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는데,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부정하고 지워내
없애는 대신 더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이 더이상 그 상실에 멈춰 있지 않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그였다면 가족을 찾을 마음을 먹었을까,
혹은 어두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해나갔을 뿐 아니라,
그를 증명하든 '니콜 정(정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써내려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저 입양된 한 사람 만에게 해당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을 통해
삶의 위기마다 이를 어떻게 마주하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고민하게끔 해준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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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수납 -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무레 요코 지음, 박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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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약 3년여 전,
예상치 못하게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일상이 이어지며
'집 정리' 와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이야 집은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 인식이 되었다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는 물론
감염 시 2주일 정도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격리 생활이 이어지며 한정적인 집의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해 쾌적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람들에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tvN 채널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공간인 '집'의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전하며
꽤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짐을 지고,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도,
꼭 필요해 남겨두어야 하는 물건과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물건, 버려야 할 물건을 구분해
과감하게 정리를 이끌어주는 전문가의 손길을 보며
한 번씩 흘끔거리며 내 방과 집을 살펴보게 되었던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공감과 찬사를 받은
일본의 유명 작가 무레 요코,
싱글 라이프 36년 차로 프로 작가인 그녀는
방 두 개가 딸려있는 멘션에서 고양이와 함께
20년째 살아가고 있다.

워낙에 책을 業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기에
수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건 예상 가능한 범주이지만,
고양이 스크래치도 네 개씩 두고 방에는
기모노가 수 십 벌씩 넘쳐나고 있으며
혼자 살고 있지만 거실과 주방 등에는 일인용 의자만
일곱 개나 가지고 있을 만큼 정리와 수납에 있어서는
젬병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집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집에 쌓아두거나 모른 체 방치해 둔 속짐이 얼마나 많을지
그녀의 글에 담긴 내용으로만 봐도
내가 다 막막할 지경이었다.

그런 작가가 한 살 한 살 더 나이 듦에 따라
나중에는 내 뜻대로 짐이든 몸이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짐을 줄이고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이 에세이의 시작이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쌓아둔 물건과의 작별을 결심한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어떤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가 가진 물건을 꺼내
그 물건의 숫자와 앞으로의 사용 가능성을 셈하고
이것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시험 기간에는 책상 정리는 금물이다.'하는 것처럼
정리를 위해 물건을 살펴보던 작가는
이 물건을 어떤 마음으로 얼마를 주고 샀는지,
그리고 '아직은 쓸모가 있는데' 싶은 생각에
제대로 정리에 임하지 못하고
다시 물건을 봉인해버리는 난관에 빠지기도 하며
글을 읽는 내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짠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이따금 한 번씩 마음을 먹고 정리를 하려다가도,
'지금은 전혀 쓰지 않지만 아직 새거라 버리긴 아까운데'
라는 생각에 버리려는 마음을 접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을 바라보면서도 쉽사리
정리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망설임과 고민이 더 남의 일 같지 않고
마냥 '이 사람의 정리는 낙제점이야'하고
비난하거나 우습게 생각할 수 없기도 했다.

물건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구매한 것이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디게 흘러가는 정리와 수납에서도
조금씩 물건을 비워내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며,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정답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은 아니어도
이따금씩 이렇게 결심을 하고 한 번씩 비워내며
물욕을 잠재우고 깔끔하고 산뜻한 생활을 추구한다면
그 노력 자체로도 좋은 성장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비워내고 또 비워내다 보면
어느새 무레 요코 작가도, 또 나 역시 언젠가는
비록 '적은 물건을 가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는 없어도
'조금 많아도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진 맥시멀리스트'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바탕 비워냈던 방의 짐이 조금씩 늘어갈 기미가 보이고,
계절의 변화를 앞에 두고 물욕이 생겨 쇼핑 욕구가
솟구치는 요즘의 마음을 반성하게 해주는
딱 필요한 시기의 독서였다.

일단 비우고 나서, 진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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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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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연히 네 살 터울의
언니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따라가게 되었던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원장선생님이 내 옆에 앉아 무척 상냥하게
건반을 누르는 법, 노래를 연주하는 걸 알려주며
"너무 재밌지? 여기 다니면 매일 배울 수 있어.
집에 가서 엄마한테 피아노 다니고 싶다고 해."
하며 꾀임의 말을 건네었고,
그게 나의 첫 '피아노 데뷔'로 기억된다.

마냥 즐거울 것만 같던 피아노였지만 막상 배우게 되니
까만색 방음판이 붙은 피아노방은
무섭고 지루하기만 했으며,
하루에 한 번 원장 선생님께 그날 연습한 피아노를
연주하고 레슨받을 때면 혼나는 때가 대부분이라
레슨을 앞두고는 공포감이 들 정도 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피아노를 배우며
콩쿨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즐겁기는 커녕 언제나 피아노에게서
도망칠 생각만 하다 6학년이 되며 비로소
겨우 피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일본도 마찬가지 였는지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피아노 입문기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피식 하며 웃음을 짓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가 된 인생 후반전에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랄까
다시 만나게 된 피아노는 그때와는 다른 마음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배움에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50대라는 나이에 무언가를 다시 배우고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몸은 더 뻣뻣해지고, 힘도 예전만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게 더 명확히 보이니
의욕 또한 젊을 때에 비하면 약할 것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악보를 보는 법을 까먹고,
마음과 다르게 느리게 더듬더듬 연주하는 손가락을
체감하며 저자는 나이들어 배우는 피아노의 어려움을
몸소 실감하게 된다.

악보를 확대복사해 볼 수 밖에 없는 노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건반의 무게라던가
어릴 적엔 무시했던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따라가며 겨우 한 곡을 연주하는
웃을 수 만은 없는 헤프닝 속에서

웃음과 눈물이 섞인 성장과 고비의 경험을 통해
'괜히 시작했나' 하는 걱정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 싶다'는 의지를
모두 느끼게 된 것이다.

책의 서두를 읽어나갈 때만 해도
나이 들어서 다시 시작하게 된
배움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알려주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늙음과 노후' 앞에 좌절하던 작가가
피아노를 만난 뒤 비로소
즐겁게 나이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

자신과 같은 모험을 시작할 누군가를 응원하고,
또 그런 자신을 위해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단단한 다짐을 통해
피아노로부터 배운 나이듦의 즐거움과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담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저자는
인생 후반전에 누려야 할 즐거움은
그 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는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고
또 이렇게 살아가야 겠다는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한 해가 갈수록
더 늙어가는 내일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고,
오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쾌활한 다짐을 통해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도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독서였다.

아직 30대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무언가를 하기엔 내 나이가 좀, 하며
몸사리고 망설이게 되는 때가 있었다.

배움과 도전 앞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늦게 시작하는 만큼 어려움도 있지만
그 나이에만 깨달을 수 있는 통찰이 있으니
힘껏 도전해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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