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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게 된 모든 것 - 기억하지 못하는 상실,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니콜 정 지음, 정혜윤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7월
평점 :
이 책을 쓴 저자 니콜 정은 한국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자 마자 한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가 살던 오리건은 아시아인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백인 마을로,
'그분들(친부모)은 너에게 입양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라는 설명과 양부모의 충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는 다른 외모로 인해
자라는 내내 많은 아픔을 겪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었던 니콜은 결혼과 임신을 하게 되며
문득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아이에게만큼은 뿌리 없이 살아간다는 감각,
자신만 따로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고독,
윗 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텅 빈 가계도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이유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자 조심스레 가족 찾기에 나서게 된다.
가족을 찾던 니콜은 중계인을 통해
먼저 친자매들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거짓과 비극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하고
또 한 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암울한 가족사와 복잡하고 어두운 진실을 대면할지,
이제 적당히 물러서 재회의 기쁨만을 누릴지.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 관계, 뿌리에 대한 갈망 으로 그녀는
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대면하기로 용기있게 결단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친부모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
존재인지, 진실이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친부, 언니와의 관계로
그는 자신과 그들의 감정,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이런 고민을 하며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들려줄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도울지에 대한 부분에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친부모, 가족과의 재회는
그 자체로 평화를 되찾는 구원이 아니라,
그제서야 그 때부터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뚜렷한 출발점이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
이 일반적인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있는 내가 가진
입양가족과 입양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글 이었다.
'상실'이라는 감정은 본래 가정의 부모와 형제,
혹은 그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에 한해
그것들을 잃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어
인생의 출발점부터 이미 다른 가정에 속한 경우에는
그 뿌리가 궁금할 수는 있지만
상실감이 느껴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왔다.
입양된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명백히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온 경험,
다른 생김새로 받은 숱한 놀림과 따돌림,
'백인이 아닌게 불편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 작가의 담담한 자기고백을
읽어 내려가며 쉽게 단정짓고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뿌리를 찾아나서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상실을 안긴 가족의 모순적인 부분까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로
치유와 성장의 첫 걸음을 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니콜의 모습에서
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는데,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부정하고 지워내
없애는 대신 더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이 더이상 그 상실에 멈춰 있지 않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그였다면 가족을 찾을 마음을 먹었을까,
혹은 어두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해나갔을 뿐 아니라,
그를 증명하든 '니콜 정(정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써내려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저 입양된 한 사람 만에게 해당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을 통해
삶의 위기마다 이를 어떻게 마주하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고민하게끔 해준 의미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