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타 가족
브랜던 홉슨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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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체로키족 소년인 열 다섯살의 레이 - 레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쇼핑몰에 가다가 인종주의를 가진
경찰의 오해로 인해 총격으로 죽게 된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레이 - 레이 가족의 삶은 변했다.
15년후 가족은 따로 떨어져 살며 각자의 이유로
외로이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마인 마리아는 남편 어니스트의 치매가 악화되어
고민이 많은 한편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누나 소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과의 로맨스에
집착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고독한 삶을 산다.
오래전 가출한 막내 에드가는 가족들이 온통
레이 - 레이 중심인 것에 느낀 소외감을 달래려
약물에 의존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정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마리아와 어니스트는 한 체로키족 소년을
위탁보호하게 되며 그를 집에 들이게 되는데,
낯선 그 아이에게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느끼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딸인 소냐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빈 호프라는 남자에게
아슬아슬하게 접근하는데, 만남을 거듭할 수록
그에게는 흥미를 잃지만 그의 아이인 루카에게는
알 수 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그의 약물복용에 지친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자,
약에 잔뜩 취해 홀로 모텔방 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에드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 '어스름의 땅'이라는
어딘지 알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공간에 빠진다.

이후 며칠간 이들은 육신과 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 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현실공간과 그들에게 벌어진 초자연적 현상,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후 각자 다르게 나타나는
트라우마를 폭넓게 보여주며 쉴새없이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 역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처음에는 나의 아픔과 같을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에
공감과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데,
읽어나갈수록 이 가족에게 닥친 현대적 비극과
그들의 조상인 체로키족 원주민이 맞닥뜨렸던
역사적 대학살의 연관성을 탐색하며

수 세기에 걸친 폭력의 유산에 여전히 시달리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통해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와 지속적인
불평등이라는 더 넓은 시선으로 읽게 되었다.

또한, 중간중간 등장하는 체로키족 구전에 나타난
'눈물의 길'이라 불리는 인디언민족 대이동과
학살이라는 역사로까지 이어지게 되며,
인종주의가 만들어낸 사회문제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계속되는 이 차별의 역사를
문학에 녹여내었다는 점에서도
참 의미있는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각 가족들의 트라우마는 각기 다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엄마인 마리아는 위탁소년의 눈동자에서
아들의 영혼을 보기도 하고,
소냐는 스토커처럼 빈에게 접근하는 와중에
그의 아들 루카의 표정에서 남동생을 느끼기도 하며,
에드가는 여자친구 이름을 죽은 형의 이름처럼
바꿔 부르기도 한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그런 등장인물의 행동을 제 3자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인 그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보여주며
그들로서 살아보도록 그 고통속에 불러들임으로써
오히려 진심으로 공감하고 연민하게 된 것 같다.

비극적 사건 앞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에
대처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영혼을 저미는 고통의 심연에 빠지게 하고
나의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도 했지만,

"어쩌면 연민이 치유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던
마리아의 용서 아닌 용서,
루카를 위해 빈을 떠나게 해주는 소냐,
형을 미워했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에드가가
어스름의 땅에서 떠날 수 있게 된
아픔의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상처를 덜어내고 그들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모닥불을 사이에 마주하는 결말이
책장을 덮을 때는 마음을 무척 따뜻하게 해주었다.

비록 비극적인 일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화와 회복, 조화와 평화, 연민과 공감으로
마침내 치유를 경험하게 된 그들의 용기있는 노력에
뭉클한 마음도 든다.

마음 한자락에 나 또한 위로와 치유가 되었으니
이 또한 참 감사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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