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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평점 :
채집 採集이라 하면
널리 찾아서 얻거나 캐거나 잡아 모으는 일로,
열매를 따거나 물고기를 잡는 등
채집과 수렵활동 만으로
모든 식생활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글쎄, 하고
누구나 말끝을 흐리게 될 것이다.
일단 내 경우만 하더라도 아파트 단지와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심에 살고 있으니
채집활동을 할 만한 '자연'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채 하루조차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다못해 텃밭 재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채집이라 함은 그 조차 불가능하고
오직 줍거나 따고, 잡는 행위만으로
식생활에 필요한 재료를 조달해야 하니
너무 제약조건이 많아 애초에 이 도전을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무려 일 년 동안
과감하게 뛰어든 사람이 있었으니
이 책을 쓴 작가, 모 와일드이다.
그녀가 채집 생활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자연 파괴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 요즘,
'어느 날 지구에 식량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만약 그런 식량 위기가 닥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채집과 수렵 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일 년간의 커다란 도전에 나선다.
돈은 일절 쓰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고,
본인이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중부 자연에서 나는 것만
직접 채취를 통해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과연 일 년 동안 그녀는 굶주리지 않고,
음식과 소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무사히 이 실험을 끝마칠 수 있을까?
이 책은 채집 생활 실험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그녀의 도전기, 도전을 끝마친 후까지
일 년여의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낸 글로,
그녀가 써 내려간 글을 읽어 내려가며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과 그 자연이 선사하는 먹거리,
이를 활용해 만든 음식 레시피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채집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거나
나물 채취, 각종 잎을 활용한 샐러드 같은
채식 위주의 단순한 식단이 채집으로 얻어낼 수 있는
식사 메뉴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렴풋한 짐작으로
'장을 보지 않고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는다'라는
그녀의 도전 자체가 꽤나 궁핍하고
고통과 고난 속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단순히 열매를 얻는
방법 외에도 물고기나 사슴, 토끼나 까마귀 등의
동물을 잡는 수렵과 새들이 낳은 알을 얻는 등의
육식 메뉴도 꽤 다양하게 있었고,
되려 계절에 따라 채소나 견과류는 섭취하지 못한 채
육류로만 끼니를 채워야 하는 시기도 있는 만큼
채집 생활에 대해 그동안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실험 당사자이자 책을 집필한 작가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낸 이력이 있는
자연을 사랑하는 채취인 이자 평소에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실행하고 있는 약초 학자이기에
다양한 식용식물에 대한 지식이 있어
조금 더 유리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찌 그 도전이 쉽기만 할까.
숲에서 다양한 나뭇잎과 버섯을 채취하고,
시간을 기다려 바다에서 해초를 뜯고,
고등어 낚시에 직접 도전하거나
'채집 생활'의 유지를 위해 채식에서 벗어나
육식을 위주로 식사를 하며 괴로워하는 에피소드,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에
오르내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따라가며
그녀가 이 실험으로 깨우치고자 한 질문의 답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도 나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날 것의 자연이 주는 야생의 맛과
건강(다이어트를 떠나 혈당이나 체내 미생물 등)에
주는 효과를 읽어내려가며
야생식에 대한 흥미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 무엇을 지불하지 않아도,
자연이 공평하게 베푸는 풍성함에 감사함이 든다.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에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계절마다 본인을 헐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자연의 경외로움까지 잊고 있던 문제를 깨달으며
이 책을 덮었다.
야생의 식탁은 단순히 입에 맛있고 배가 부르며,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먹거리는 아니다.
시간은 걸리고 매 끼니 고군분투 투성이지만
자연에 집중하는 순간 복잡한 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단순히 '채취'하며 솟아나는 즐거움과
마음의 배부름까지 가져다줄 수 있는 만큼
이 책에 써 내려간 그녀의 도전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갈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얻게 되어 참 뿌듯한 마음이다.
좀 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인간과 자연의 몸과 마음이 한데 건강해지는 길을
고려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