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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닌 여행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3년 9월
평점 :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재미있는 필명을 가진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엔가 우연히 읽게 된
《키친》이라는 소설이 시작이었다
이 소설의 단편 중 하나인
〈달빛 그림자〉에 푹 빠져버려서
한창 모든 사이트의 닉네임을
달빛 그림자로 하며
단연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을 만큼
20대를 거쳐 30대가 되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읽고 또 애정 해왔던 터
그런 요시모토 바나나가 쓴 에세이라니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읽을 책이 쌓여있는 와중에 이 책을 펼쳤다
조금 스트레스 받는 일상,
어딘가 답답하고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미래를 향한 걱정과 두려움까지 더해져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갈증이 드는 요즘이라
여행기라는 제목에서
작가가 어딘가를 여행하며 느낀 시선을
담은 책일까 하는 기대감에 펼쳐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다르게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어성초 이야기를 읽고 나니
왜 책 제목이 《여행 아닌 여행기》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별과 슬픔 혹은 여유가 없는 바쁨 속에서도
발견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즉,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하며
느낀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으로
1부에서는 반려동물이나 음식 등
일상의 작은 것들이나 해외여행을 통해
얻은 단상들을
2부에서는 친구 선생님 좋아하는 사람들 등
주변인에게 배운 좋은 것들에 대해
3부에서는 예상치 못한 피해나
이별을 겪으며 깨달은 생각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그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작가이자 엄마이자 딸 그리고 아내로서
모든 역할을 잘 해내는 것에 지친 그녀가
불쑥 '내 인생은 내 것'임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며
아무리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자기를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확실한 감각을 바탕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된 그 새로운 하루를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조급한 인생에서
그저 꽉 움켜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바람을 타고 파도를 타고 판단하는 것뿐
그런 본능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만약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면 된다고
책을 통해 인생 선배와 같이 바나나는
담담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일상에서 만나는 음식, 반려동물, 물건을 비롯해
주변 지인과 좋아하는 사람, 가족과의 관계까지
다양한 인생의 희로애락과 흐름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가 인생의 제대로 된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해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삶을 살자는 단단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손을 꼭 잡아 주거나,
죽어가는 개가 마지막 힘을 다해 다가오는
그런 너무도 슬픈 힘을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주 무거운 책임을 맡기는 그 힘.
그러나 살아 있는 한 무거워도 받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죽을 때는 모두의 손을 꼭 잡고 싶다.
온 힘을 다해 간절히 바통을 넘긴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소한 것들을 귀하게 보듬으며 살아온
바나나의 삶의 태도가 담긴 이 메시지는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래오래 잔상처럼 남아
만일 내일이 마지막 하루라 하더라도
오늘과 똑같이 지낼 수 있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날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자꾸만 되뇌게 되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인생이나 엇비슷할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는 날도,
그저 평범하게 산책을 즐기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에는
깊이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순간도 있고 말이다
그 속에서도 깊고 아름다운
生의 반짝임을 건져낼 줄 아는,
소중히 살펴보고 그것에서 감동하고
다시 새로운 하루의 마음을 단련하면서
나날이 어른이 되어가는 그녀의 생각을 좇아
나 역시 조금은 마음의 키가 자란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눈을 가리고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며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오직 나를 위해 조정하는 내 인생.
근육을 단련하듯 매일 마음을 단련해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새로운 매일을
만들어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자고
이 책을 통해 다짐해 본다
모든 게 다 내 마음 같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요즘의 나를 다시금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참 고마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