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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평점 :
몇 년 전쯤 한창 가정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수저 판별법'이 유행했었다.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위치한 금수저는
대학 졸업이나 결혼을 전후해
부모님이 정기적인 상속을 해주고
또 법인이나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가정을,
은수저는 대학 졸업이나 결혼을 전후해
부모님이 주거비의 일부라도 지원해 주는 경우,
동수저는 부모님에게 대학 졸업 혹은 결혼 후
어떤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 등급의 가장 아래를 차지하는 '흙수저'는
부모님의 부양을 취직, 심지어 결혼 후에도 하는
가정을 말한다.
내가 무슨 수저인지를 따지기도,
또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라는 말도 등장했는데
재미를 넘어 '가난'을 희화화하고
스스로의 가정을 비하하는 느낌에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는 씁쓸한 유행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 흙수저,
은폐되어야 할 상황이거나 모욕의 대상,
또는 불행의 상징이거나 출생과 함께 벗어날 수 없는
신분 같은 현실이 된 '가난'의 범주에 속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빈곤 대물림이나 청년 빈곤, 개근 거지 등의 말로
설명되고 있는 이 시대의 가난이
실질적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며
일명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옛말이고,
돈을 투자한 만큼 성공한다는 지금의 현실은
노동의 가치마저 하락해 깜깜하기만 하다.
경제 위기 속에 '평범한' 사람들도 힘든 요즘,
과연 흙수저의 범주에 속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꿈꾸어왔는지,
그들이 체감하는 가난과 불평등에 대해
치밀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본
10년여의 관찰기라 할 수도 있겠다.
가난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철저히 증언하고 폭로한 이 이야기들은
가족 문제, 진로 고민, 우울증, 탈학교,
가출과 범죄, 사회 진출과 성인으로서의 자립,
청소년의 노동 경험 등 다양한 각도로
심층적인 조명을 통해 차마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그들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또 교육과 노동, 사회복지나 정책 등의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고
양지로, 가난이 아닌 삶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지
날카로운 진단과 제안까지 이어졌다.
책에서는 저자가 10 년여의 시간에 걸쳐 만난
여덟 명의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부모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우울증과
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희,
성실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모범생 영성,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말 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주관 있게 밀고 나가는 지현,
가족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서도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연우,
어머니의 병과 빚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가
이제야 독립하게 된 수정,
전과자라는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채워나가려는 현석,
'돈 좀 만지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우빈,
학교 밖 청소년으로 낮은 자존감을 가졌지만
이제 자기 자리를 찾고 꿈을 꾸는 혜주.
사실 이 아이들은 우리의 시야에서는
'비행 청소년'이나 '싹이 틀려먹은'
아이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에게 관심이 없고 방임하는 부모,
그런 무관심 속에 학교 밖으로 겉돌게 된 아이들,
사랑받지 못한 환경 속에서 정신적으로 취약해지며
어딘가로 내몰리게 된 퍽퍽한 현실과
이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와 주변의 차가운 시선까지
과연 이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초래한 결과일까?
그리고 과연 이런 '가난한 아이들'은
이제라도 성장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 속으로 우리 사회 속으로 나아가면 안되는 걸까?
처음에는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어디서부터 손을 뻗어야 할지 모르겠던
그들의 현실 앞에 내가 가진 필터로
편견을 가진 채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책을 읽을수록 안타까움은 물론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빈곤에 대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 여러 굴레 안에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스스로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발견하는
그들의 성장이 기특하게 느껴졌고,
가난과 가족,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가며 이런 '가난'의 문제가
개인의 무기력함이나 게으름을 탓하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인해 가정과 학교, 사회 밖으로
밀어내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지 제도적인 차원에서
또 이들을 바라보는 시야의 개선이
필요하겠다는 가르침도 얻을 수 있었다.
마냥 쉽고 당연하게 느껴졌던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의 기준치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것이 전제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부모가 학교에 차를 태워 데려다주는 것,
아이들의 진로를 지지하고 학비를 대 주는 것,
노동시장에 일찍 내몰리지 않고
꿈을 좇을 수 있는 것 등
한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 자연스레 취하고,
내 몫인 양 누리고, 눈 감고 선 그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닫고 나니
가난한 아이들과 그들의 사연을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가난한 주인공의 성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음을 잃지 않고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며,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립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픽션이기 때문이라는 걸
그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제대로 이를 마주하고
또 받아들이며 포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은 것이 기본값이 된 시대이다.
늘 '친구들은 다 ~하는데'라며
우리 집의 부족함을, 아쉬움을 토로하는
많은 '평범한'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도,
성장의 시간을 이만큼 지나
내 몫을 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독서인 것 같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동화 속 마지막 문장처럼
이제서야 스스로를 제대로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마음을 가지게 된
'가난한' 아이들의 삶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