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 -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말하기의 힘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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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묻고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양해를 구하거나 어떤 언질도 없이

바로 반말과 함께 아랫사람 대하듯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보다 나이 많으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는 말에도 함께 존댓말을 써주며

존중해 주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 그 사람의 말투나 말하는 습관에서

불편한 마음이 느껴져 입을 닫게 되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에는 대화가 즐겁고

그에게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나 역시 더 신경 써서 말하고 배려하게 된다.


이렇듯 대화 속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언어습관에서

가장 쉽게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곤 한다.

말하는 태도나 언어는 그 관계의 지속이나

상대방과의 소통에 영향을 미치니,

어쩌면 말하기는 관계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연들 중,

음식점이나 상점 등에서 종업원에게

말하는 태도로 인해 상대방에게 실망하게 되어

그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조금 지나친 걸까 고민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상대를 얕잡아보았다는 사실을 떠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소통 방식이,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

나에게 단절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불통으로 이어지게 될까 걱정되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 사이가 편하니까'라는 말로

상처될 만한 표현을 서슴지 않거나,

이따금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서

'우위'를 느끼며 불편한 말 한마디를

듣는 경우는 생각보다 심심치 않게 겪을 수 있다.


나 역시 때로는 그런 불편한 말들을

뭐라 지적하지는 못한 채 마음속으로 삼키며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말을 건넨

상대방과의 거리를 멀리하게 된 경험이 있기에

말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정작 나의 말하기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말해야 나도 상대방도 즐겁고,

또 모두가 불편함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언어 감수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전파하기 시작한

신지영 교수님의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이 책은 관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말하기의 중요성, 힘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였다.


누구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을 들이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취업 면접이나 인터뷰 등에서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런 말하기 노력은 일시적일 뿐,

일상에서 맺어진 수많은 관계에서의 대화가

진짜 관계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워낙 개인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인 만큼

단절과 불통을 넘어 진실한 관계를 꿈꾼다면

가장 먼저 나의 언어생활을 성찰하고,

타인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언어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일상에서의 대화법은 물론

세대 간의 소통 방법,

그리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호칭을 파괴한

직장 내에서 부딪칠 수 있는 언어 문제나

불통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등

실생활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관계,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다양한 사례의

말하기 방법을 제시하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이 있듯

한마디 말이 상대의 마음을 녹이기도 하지만,

되려 한마디 말의 실수로 인해 오해를 받거나

그 말로 인해 단절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말하는 사람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불편한, 그래서 소통은커녕

관계마저 악화되는 표현들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척이나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서다.

즉, 말이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라는 책 속의 표현처럼

듣는 사람을 생각한 말하기는 당연한 듯싶지만

가장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라는 생각에

그동안의 나의 말 습관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독서이기도 했다.


공적이고, 사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또 존댓말은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하려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논쟁을 피하면서도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해야 할지 하나하나 짚어주는

온기 어린 작가의 조언을 통해

나고 자라면서 '당연한 듯' 내뱉었던

말하기 방법을 다시 배우는 기분을 느꼈다.


일부러 꼬아서 말하는 것도 아닌데

'꼬아서 듣는 사람이 문제' 라거나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라는 식의 태도는

불편한 대화와 말 앞에서 우리를 작게 만든 것 같다.


혹은 그런 대화 앞에서도

'그냥 말을 말자'라며 외면하는 것도

되려 상대방을 외롭게 만들고 고립되게 만들어

점점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로 만들도록

방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은 언어습관을 가지거나

사라져야 마땅한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이를 지적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그릇된 습관을 지적해 주고

새롭게 익혀야 할 말로 이끌어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부터라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

너무 당연해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 안에

어떤 생각과 인식이 담겨 있는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고,


또 혹여나 말에 담긴 생각이

과거의 낡은 생각이나 편견에 머물러 있고

권위의식이나 차별을 담은 표현이라면

과감히 새로고침하듯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상대방임을

항상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존중의 마음을 더한다면

그런 존중의 언어가 존중의 문화로 이어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처럼

서로에게 따스하고 행복한 사회로

변화할 것이라는 단단한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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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세계 - 우리가 사랑한 영화 속 컬러 팔레트
찰스 브라메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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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색감으로 인해

더 오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되는,

독특하고 고유한 감성을 가진 작품들이 있다.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건물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색 조합의

페이스트리가 등장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노란색 원피스 차림으로 춤을 추는 스틸컷 하나로

다양한 굿즈가 쏟아졌던 《라라랜드》,

같은 영화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나 역시 디자인을 업으로 삼아 왔기에,

독특한 색 조합을 가진 이런 작품들을 보고는

'언젠가 나도 써먹어야겠다' 생각할 만큼

영화 속에 사용된 컬러 팔레트는

많은 현업의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컬러에 포인트를 맞춘 책으로,

영화 평론가인 찰스 브라메스코가

50여 편의 작품 속에 담긴 색의 의도를 분석한

조금은 특별한 영화 이야기이다.


컬러영화의 태동기부터 디지털 아이맥스 영화까지

100여 년의 영화 역사를 관통하는 작품 중

인상적인 표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영화 속 컬러에 대한 숨은 의도가 담겨있기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현업의 디자이너에게도 흥미로운 소재가 될 것 같다.


책에서는 우리가 작품을 볼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등장인물의 의상 색이나, 배경의 색감 톤에도

감독의 의도와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유명한 감독들의 작품은

스틸 사진 만으로도 어떤 감독의 스타일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모르고 보았다면 그냥 스쳐 지나갈 장면을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숨겨진 의도를 파헤치고

영화의 스틸컷과 함께 컬러 팔레트를 보고 나니,

'여기에 이런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그리고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만든 거라고?' 하는

놀라움과 신기함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는데


어떤 컬러를 쓰느냐에 따라

단순히 따스하고 차갑고의

온도차나 분위기뿐 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거나

앞으로의 사건을 암시하기 위한 복선의 도구로,

혹은 등장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할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창작자의 의도대로 관객들을 이끌어가기 위해

색깔을 사용한다는 것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또 신뢰감을 주거나 물건을 사게끔 유도하는

내가 해왔던 디자인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다양한 사례에 담겨있는 색의 의도를 쫓아가며

그동안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던

화면 속 숨은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를 알게 되어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또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색의 의도를 파악하는 시선을 통해

앞으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간판이나 광고, 건축물 등을 관찰하며

'어떤 의미일까' 고민하고 탐구할 수 있는

디테일을 가지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저 감성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독특한 색감을 사용했다고만 생각했던

작품 속 색의 의도와 의미를 살펴보고,

또 사용된 컬러 팔레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며


립스틱 컬러를 두고도

'세상에 같은 레드 립은 없다'라는 말을 하듯

'그냥' 사용하는 컬러는 없다는 것을,

그 의미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여태까지 봐왔던 많은 '컬러'들을

다시 되짚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이런 의도를 생각하지 않은 채 보내왔던

지난날의 시간이 '흑백영화' 였고,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세상이 '컬러영화'인 듯

색다르게 느껴진다.


나처럼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혹은 색에 주목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의미로 신선한 자극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까지 그냥 지나쳐왔던

평범한 일상 속의 모든 사물과 생명의 컬러를,

지루해서 금방 넘겨버리는 화면 속 컬러의

의도를 찾으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상이 익숙한 현대의 비주얼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모든 우리들이 알 필요가 있는

컬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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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작은 별 하나까지 널 도와줄 거야
씨씨코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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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 MBTI에서

계획형을 의미하는 J를 가진 나는

일상에서든 여행에나 휴식에서든

많은 것을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는 편이다.


친구와의 만남도 즉흥적이기보다는

일주일에서 2주 전에는 약속을 잡고,

어디에서 만나 어디를 갈지 등등을

미리 찾아보고 그 계획대로 실행해야

'비로소 완벽한' 하루를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파워 J의 성격이기에 여행을 준비할 때도

꽤나 피곤한 부분이 많다.

여행지 역시 가야 하는 이유나 명분 등이 있어야 하고

장소를 정하고 나면 뒤따라오는 과제처럼

숙소나 맛집, 가볼 만한 관광지 등을 추려서

가장 마음에 드는 1안은 물론,

혹시나를 대비해 2안과 3안까지 정해놓곤 한다.


그렇기에 한번 외출을 다녀오거나

누군가와의 만남,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에너지가 충전되고 즐겁다는 기분도 있지만

되려 피곤한 마음에 얼른 집에서 조용히

평온한 일상 속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에게 무계획 여행은 꿈에서도 불가능한

아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감히 상상해 볼 수 없는 일이기에,

출발하는 편도 비행기 티켓만 발권하고

한 달이 넘게 훌쩍 일상을 떠나는 작가의

무계획 유럽여행을 담은 이 에세이는

미지의 세계를 만난 듯 흥미롭기도 했고


그 여행지에서 깨달은 즐거움과 위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책 이란 소개에

그동안 살아오며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15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와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달성한 크리에이터이자

96주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인 씨씨코가 전하는

무계획 여행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디테일한 여행 코스나 관광정보,

혹은 여행 팁을 담은 게 아니라

지인의 SNS에 올라오는 여행의 발자취를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그렇기에 더 가까이 그녀의 여행을 함께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참 즐거운 독서였다.


빼곡하게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일기를 쓰듯 짤막하게 써 내려간

그녀의 생각과 함께

그녀의 시선으로 담아낸 유럽의 이국적인 풍경 사진들은

유명한 관광지나 특별한 장소를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한 장 한 장 여행 속에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여행에는 마냥 장밋빛 즐거움만

가득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약속했던 지인과의 만남이

갑자기 뒤로 미뤄지고,

졸지에 혼자 시골의 한 마을 호스텔에

머무르게 되며 좌충우돌의 사건이 발생한다.


보통의 누구나 그렇듯 그녀 역시 처음엔

'괜히 마음 내키는 대로 하자고

여행을 저질렀다가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후회하던 것도 잠시

친절했던 버스기사와 동네의 예쁜 풍경,

낯선 그녀를 위해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감을 얻고 뚜벅뚜벅 용기 있게

여행의 발걸음을 이어나간다.


나였더라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그냥 돌아갈까'

후회의 감정만 남겼을 것 같은데

'내 여행이 어떤 여행이 될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분 좋은 시작과 끝을 다짐하는

씨씨코 특유의 명랑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래 나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한 거였어.'

하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유럽 이곳저곳을 많이 누볐다.

일 년여만에 만나는 친구의 집에서

한 침대에 잠들기도 하고,

때로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웃음 짓거나

맑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오리를 구경하고,

처음 보는 친구의 지인에게 옷을 빌려 입고

훌쩍 파티에 참석하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코 끝 찡한 감정도,

알 수 없게 해방감과 자유로움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도, 별이 몇 개인 레스토랑도 없이

때로는 5유로짜리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먹고,

그저 동네를 거닐으며 마음이 내키는 대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최선을 다한'

이 여행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는지 모른다.


과연 나라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여행을 통해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한 걸음 성장한 모습으로 발전한 씨씨코를 통해

그녀의 여행처럼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타인의 기준이나 내가 만들어낸

엄격한 잣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하고 힘들어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거우며,

때로 넘어지고 실패해도 '괜찮아' 하고

툭 털고 일어나 다시 나아갈 수 있는

더 단단하고 용기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너무 큰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과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또 두려워도 한 걸음 더 내디디면,

용기 있는 발걸음에 부응하듯 행운이 찾아오고

따스함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의 친절 등

우주의 작은 별 하나까지 나를 도와줄 거라는

잔잔한 그녀의 응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책장을 다 넘기고 나니 마지막 장에,

장난스레 그려 친구의 편지에 끼워둘법한

그녀의 글씨와 그림이 담긴 '귀여워지는 부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가벼운 위로인듯싶지만

'마음대로 걸어가 봐도 괜찮아,

돌아보면 결국 멋진 길이 되어 있을 거니까!' 하고

단단한 믿음으로 나를 응원해 주는

그녀의 목소리와 눈 질끈 감고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녀의 여행기를 읽고 나니,

조금은 긴장의 끈을 풀고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때로는 망설여지더라도 행운과 자신감이라는

선물이 따라올 것이라는 기대로

일단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덕분에 오랜만에 여행이 고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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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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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자현고등학교와 함께 맞붙어 있는

특성화고등학교 자현기계공업고등학교

하이텍기계과 2학년 김두현.

그에게는 청산가리라는 별명이 있다.


어머니와 두현을 두고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가정을 꾸리겠다고 이혼을 요구했고,

그 충격으로 두현의 어머니는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을 떠난다.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이 사실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단톡방에 올라가며

그날부터 그의 별명은 청산가리가 되었다.


특성화고라는 선입견,

그리고 파탄에 이른 가정과 그 안의 두현에게

아이들은 따스한 시선을 건네지 않고

밀어내고 외면하며 빈정거린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세상에 혼자 남겨진 좌절감,

상황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 어느것 하나 자신의 탓이 아닌데

이를 빌미로 그에게 빈정거리는

평범한 아이들에 대한 분노까지.


그를 거둬준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복집의 맹독을 가진 복어처럼

두현은 뾰족하고 날선 독을 품은 아이이다.


친구라고는 어려운 가정형편 아래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들을 보살피고,

그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대해주는 준수와

특성화고의 모범적인 롤모델 같은 존재,

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일상을 찾지 못하는 준석선배의 동생

재경이 유일하다.


오빠의 억울함을 풀고 사과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재경과

이죽거리는 아이들에게 '내가 청산가리가 있다'며

본인의 아픔을 무기처럼 펼쳤으나

되려 살해협박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봉사 처분을 받은 두현은


봉사를 위해 찾은 무료급식소에서

아직 감옥에서 출소하지 않았을

아빠를 닮은 사람을 마주하게 되고

늘 마음속 어딘가에 덮어두고 외면하던

엄마의 삶의 마지막,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진신을 마주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데……


이 책은 가정의 붕괴라는 아픔을 겪은 두현이

그 감정의 종류는 다르지만

나름의 아픔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 두명과 함께 덮어두었던 어두운 과거를

다시 펼쳐 제대로 마주하며

'무얼 알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깨닫고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보통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가질법한 뻔한 편견인

질이 좋지 않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고,

가정에서도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순종적이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분노를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표출해내는 두현의 삐딱한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조금은 위태로운 듯 흔들리면서도

스스로에게 닥친 현실을 그저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탓을 하기 보다는

본인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독을

용기있게 마주하고 마음을 열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용기가 참 멋지게 느껴졌다.


두현의 감정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가며

처음에는 어머니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과

가정을 버린 아버지의 사연이 궁금했으나,

책을 다 읽고난 이후에는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단단해지는 두현의 성장과 치유 앞에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내면,

두현의 사연뿐 만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준수와 재경,

그리고 강태와 또 같은 시간을 겪고

이만큼 자라나 어른이 된 정명진 선생님까지


그들의 날서고 뾰족한 바늘과 독은

시간을 지나고 스스로의 깨달음과

주변에서의 애정어리고 때로는 터프한 손길아래,

부모님을 대신해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독을 제거한 복어로 끓여낸 할머니의 복국처럼

진한 성장의 맛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따스하고 설레이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작가는 슬픔, 좌절, 원한과 분노같은 아픈감정도

삶을 살게하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런 독기 어린 감정이 두현을 살게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현장에서의 현실이나

사회적인 편견 등도 함께 깨달을 수 있어

의미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들을 청소년 문학으로 풀어내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 사회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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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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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6월 초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최고기온이 33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질 거라며 폭염 관련 소식이 전해지고,

밖에 외출하면 벌써부터 지하철을 비롯해

각종 쇼핑몰, 상점에서도 에어컨을 가동하느라 바쁘다.


작년 2023년을 떠올리면

참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봄에는 따뜻하다가 이틀 후에는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기도 하고,

기온이 급상승 급강하를 반복하며

과실수들의 꽃과 열매가 떨어지며

사과값이 금값이라 할 만큼 상승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36-38도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그야말로 살갗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에

떠올리기만 해도 고개를 절로 휘저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 싶다가도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전 세계를 긴장시키는 기후 이변이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나니

조금씩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구의 메시지를

너무 외면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한

2023년의 폭염을 예견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르포타주다.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기원과 실태를 그려낸 것으로

평균기온 섭씨 45도

생존불가 지대에서 살아가는 파키스탄 시민,

야외 노동 중 희생당한 멕시코인 노동자와

미국 옥수수 농장의 농부들,

그리고 수 십 명의 기후과학자부터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에 걸쳐 폭염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폭염은 더 이상 이상고온이 아니라 기후 위기이며,

이런 기후 위기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도

'이거 정말 큰일이네' 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혹은 이런 위기를

좀 더 유예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

읽는 내내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작년의 더위만 해도 그렇다.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으니 '에어컨을 틀자'

라는 일차원적인 생각만 했을 뿐

이런 생각과 에어컨을 트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에어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더위가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에 설치된 에어컨은 10억대 이상으로,

인구 7명 중 1명꼴로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 바깥에 있는 빈곤국, 빈곤층에게는

쉽게 꿈꾸고 누릴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폭염 시대에 서늘한 기온은

계급과 집값을 나누는 새로운 지표로 떠올랐다는

지적은 참 씁쓸하기만 하다.


비단 에어컨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이 벌어져

육상 동물들은 10년마다 20km씩 북상하고,

대서양 대구는 같은 기간 동안 160km,

산호마저도 매년 32km씩 북쪽으로 이동하며

따뜻해진 해류를 피해

지구적 기후 이주가 벌어지고 있고,

이런 현상은 동물뿐 만 아니라

해수면의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면

인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은

공포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한참 팬데믹으로 우리 모두의 일상을 묶어두었던

코로나19 역시, 전염병 매개체로 지적되는

생명체의 서식지가 북상하며

인간의 서식지에 가까워져서 발생한 문제이기에

이것은 시작일 뿐 더위로 인해 다양하고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발생하리란 예측은

우리의 미래를 회색빛으로 그려지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벚꽃 모기, 사과값 폭등, 실내 온도 계급화,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 등

우리에게 닥친 〈폭염 살인〉의 수많은 사례를

접하다 보니 충격과 동시에

지금껏 살아온 나는 둘째 치더라도

남은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현상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까,

조금이라도 밝아진 미래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사후 약방문이지만 뭔가를 해야만 하겠다는

행동 의지가 샘솟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지구 열탕화, 폭염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고 말했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의 기온을 바꿀 수 있으며,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폭염 불감증'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기 위해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브랜딩 해서

우리가 미리 폭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인지도,

혹은 이런 행동이 과연 폭염 살인을 멈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 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극에 스키여행을 떠났던 저자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인간의 거주지 근처를

찾은 북극곰과 직면하게 된 순간,

'죽음 직전에 사형 집행이 연기된 죄인이

된 것 같았다'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지금의 이 현실을 만들어낸

폭염 살인의 방조자이자 공범임을

외면하고 부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대로 '이미 너무 늦었으니 내 생 안에는

지구가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하기보다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우리 스스로가

하나하나씩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며 지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먹게끔 하는 것이

그가 이 책을 쓰고자 한 목적이 아닌가 싶다.


문제 인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결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면

점차 지구의 위기 앞에 '당장의 시원함'을 위해

에어컨을 우선 돌리기보다는

나와 가족과 세계와 지구를 위해 조금은 참고,

도시에 가득한 열기를 줄이고 식히기 위해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을 찾아

폭염 살인을 막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들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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