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국어시간 - 문학작품 들고 교과서 밖으로 튀어! 생각하는 10대
공규택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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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북트리거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진 속 인물의 옷이나 머리를 바꾸거나

배경을 지우기도 하며,

내가 입력한 설명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정보를 조합해

다양한 이미지와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가 등장했다.


예술은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디자인 이미지 생성은 물론

혹은 어떤 질문에 대한 리포트 작성이나

내용 요약 등이 가능해지면서

어느덧 기술 개발이나 혁신을 넘어서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보다 똑똑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 혹자는

공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한다.

직접 공부해 머리에 가지고 있는 지식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AI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묻거나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굳이 무언가를 직접 공부하고

깨우쳐야 하는 것인가 하는

학습의 필요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인터넷 기사만 하더라도 그렇다.

길게 이어지는 기사를 읽지 않고

'그래서 뭐라는 건가요? 세 줄 요약해 주실 분'

이런 댓글을 다는 요즘 세대들의 성향에 맞춰

AI가 분석한 기사 요약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기도 하니

가뜩이나 책은 읽지 않고

미디어나 쇼츠에만 집중되어

지속적으로 문해력과 어휘력 부족,

심각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문제들 앞에 AI 등장은

그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다.

요약은 물론 생성이나 결과물까지

만들어주니 애쓸 필요 없이

그저 묻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던지는 질문에 맞춰

답을 해주는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어떤 답을 얻는지가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답, 깊이 있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그냥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뭘 알아야 원하는 적절한 질문을 고를 수 있고

결과물을 발전시킬 수 있기에,

단편적이고 겉핥기 식으로 정답만을 묻는

한두 개의 질문만으로는

인간을 대체할 만큼 뛰어난 인공지능을

실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때로는 인공지능이 말하는 답에서도

오류도 존재하기에

이를 깨닫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부분도 있다.


즉,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등장 아래에서도

우리는 원하는 '정답'을 얻기 위해

그와 '대화'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소통의 기술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 책 《차이나는 국어시간》은

더 이상 교과서 지문을 비롯한 문학과 과학,

예술을 들여다보지 않는 작금의 시대에

AI를 활용한 융합교육법을 안내한다.

역사, 지리, 사회, 경제는 물론

예술, 문학, 과학, 미래의 관점에서

다양한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이를 읽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야를 틔워주는

길잡이라 할 수 있겠다.


교과서에 갇혀있는 국어를

다양한 시선으로 재조명하고

AI를 이용한 질문과 소통을 통해

익숙하고 뻔한 방식으로만 읽어오던 작품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게끔 만들어주어

자유로운 호기심의 발전, 상상력의 자극,

더 나아가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난

익숙한 작품들이 참 많았다.


잔잔한 메밀밭 풍경 속 이곳저곳을

떠도는 장돌뱅이들.

메밀꽃을 바라보며 예전의 추억을 떠올린

허생원은 눈앞에 있는 청년이

자신의 '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이 대표적이다.


서정적이며 자연을 묘사한 장면들,

그들이 혈연관계라는 결론은 없지만

함께 제천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관계임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과학적 측면에서 조명해 보며

'왼손잡이가 유전'의 형질이 되려면

과학적 측면에서는

어떤 조건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작품 속 오류를 찾기도 하고,


지문 속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을 통해

MBTI를 추론해 보는 소소한 재미들은

그저 작가의 의도나 글 속에 담긴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는 등

그저 문장만을 읽는 지루함을 넘어

보다 가까이 책을 깊이 있게 읽도록

만들어주는 의미 있는 시선이라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또한 우리의 고전과 유사한 서양의 이야기,

이들의 공통점을 찾고 AI를 이용해

각각의 작가의 예술적 표현방식에 대해

공감과 소통하는 방식은

실제 작가들 간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시대를 넘어서 독자와 작가,

각 공간을 넘어선 유의미한 대화였기에

'절대 만날 수 없는 조합'을 엿본 듯

짜릿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에 접근하기 위해

AI 질문 기능을 활용했는데

실질적으로 AI가 제공한 답변을

예시로 소개하면서도,

그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답을

공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공한 답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질문을 던져 그와 소통하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을 발전시키는

스킬을 배울 수 있었고,

이는 앞으로도 책 속 지문을 넘어

우리가 만나는 일상 속 수많은 작품과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직접 질문을 만들어 던져보고

인공지능과 대화를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1-5교시 주제별 문제가 제공되어

시험에는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꼭 시도해 볼 만한

좋은 연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다양한 갈래로 발전, 성장시켜보는

'소통'의 과정 아래,

우리의 국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 뼘쯤 더 자라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동양과 서양의 예술, 문학은 결이 다르고

교과서 속 이야기들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오류가 있는 부분들이 많기에

이 책에 담긴 교훈이나 메시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갈래와 여러 꼭지로 시야를 넓혀

작품 속 인물들을 재해석하고

다시 읽어보는 과정을 통해

학교 다닐 때, 작품을 배울 때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다.


그저 이야기,라는데 멈추지 않고

서로 다른 범위의 것들을 잇고 연결하고

번역하는 연습을 통해서

요즘의 시대, 어떻게 국어를 공부할 것인가

그 답을 찾아낸 것 같다.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와 미래의 교차,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어제를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키웠다.


물어보면 뭐든 알려주는 인공지능,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문학을 읽고

국어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검색 능력 보다 질문 능력이 더 중요해진 요즘

나만의 질문을 찾고 답을 만들어가며

똑똑한 인공지능을 두렵기 보다

자유로운 호기심으로 즐겁게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독서였다.


검색하면 다 정리해서 알려주던데,

이런 것 꼭 알아야 하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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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희망 수업 -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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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샘터 물방울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은

시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고는 하지만,

퍽퍽한 현실 속에서 마냥 해맑게

일명 '긍정 회로'만을 돌릴 수는 없기에

지금의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좀 더 현실적으로 와닿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에 최재천 선생님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빗대어 우리의 절망 어린 시선에

물음표를 다시금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똑같이 매력적인 두 길을 바라보며

어느 쪽이든 가볼 수 없기에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 앞에 놓인 여러 갈래의 길 중

이 '가지 않은 미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이를 아쉬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메시지로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희망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해

마냥 유쾌하고 긍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한 발짝씩이라도 앞으로 내디딜 때,

또 다른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실용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달리는 사람은 없으니,

단번에 명확한 결과를 예측해

큰 목표를 세워 이루려고 하지 말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앞에 어떤 길이 나타나거나,

혹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을 때

그때부터 앞만 보며 달려도 늦지 않다는

다독임의 메시지는 '이게 맞나'싶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게

위안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최재천 교수가 직접 인생을 살아오며

마주한 삶의 깨달음이기도 하기에

인생 선배의 이 따뜻한 조언은

그 어떤 미래에 대한 희망찬 예견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책을 통해 그는

내 삶에 주어진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는 '행동'의 방법으로 통섭과 독서,

글쓰기와 숙론, 경쟁적 협력,

생태적 삶의 전환 등을 제시한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익숙지 않고 어렵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섭렵하고, 책을 붙들고 씨름하며,

글을 많이 써보고 고치는 습관,


그리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우리가 아는 토론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는 숙론을 통해

경쟁과 협력을 조율하며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과 손잡고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는 경쟁 사회 속

타인과 싸워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누군가와 협력하는 법을 잊은 우리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여러 갈래로 나뉜 인생의 길목에서

어느 길이 성공하는 길일까

재고 따진 뒤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어쩌면

되려 지레짐작으로 어떤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희망을 버리는'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따지거나

미리 계산해 포기하기보다는,

때로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절실하게 꿈을 찾아 방황하고 부딪치며

그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직접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예상했던 그 이상의 결과와 희망으로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의 손 내밂은


판에 박힌 교육과 입시,

희망을 꿈꾸지 않고 쳇바퀴 돌듯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일과 미래를 바라보

새로운 '인생수업'이자 '희망 수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희망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간다면

그런 우리의 매일이 쌓여,

함께 나눈 숙론들이 이 땅에 피어난다면

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샘솟는다.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공부,

내가 배워왔던 지식을 떠나

이 책을 마주하고 나서야

진짜 삶을 '공부'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탕이 아닌 방황으로,

서로가 숙론하며 공생할 수 있는 미래.

그런 인류가 만들어낼 지구는

더 이상 절망이나 두려움보다는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믿음을 배울 수 있었던 독서였다.


인간 중심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경쟁으로 서로를 지켜봤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시대와 환경,

미래를 마주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조금은 비관적으로, 혹은 절망으로

'태어난 김에 삽니다'식의 생각을 가진

요즘 세대에게

꼭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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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희망 수업 -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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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희망찬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두려웠던 오늘에 용기를 가지게 해 줍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야과 깊이있는 통찰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뚜렷한 윤곽선을 만들어준
감사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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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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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구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


내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쉬이 답할 수 없을 만큼

이 단어에서 오는 무게감은 참 크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 가며 구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생각을 펼쳐볼 수 있었다.


작가와 출판사, 독자 셋이 만나

set 한다는 의미의 '셋셋' 시리즈,

문학상을 통한 등단이 정석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지닌

신인들을 발굴해 내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올해 출간된 《셋셋 2025》는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김혜수, 이서희, 김현민, 이지연, 양현모, 전은서

여섯 작가의 스토리를 담았다.


보통 종교를 통해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곤 했다.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 인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의 고통이나

혹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렇기에 구원을 얻고자 더 맹목적인

믿음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를 따라가게 된 교회나

성경공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곁을 지켜주던 또래 친구를 통해

그와 은밀하게 주고받던 '도깨비 말'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여름방학〉,


어쩌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지영에게 종교가 그랬듯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룬

〈지영〉을 통해서는 우리가 멀리에서 찾는 구원이

사실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한때 꾸었던 꿈을

실현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꿈이 나를 산 채로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음에

좌절하고 매일을 보내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지영을 만나게 된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지영에게서

호감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런 그녀가 의지하는 종교에 대해서도

새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아이리시 커피〉에서는

희수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사고로 인해 아르바이트생 소미가 희생당하고,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패닉에 빠진 희수에게

엄마는 주님이 널 지켜주셨다며,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기도의 응답이자

기적이라고 할 뿐이다.


하지만 희수는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일상을 이어가지 못하다,

유품을 들고 찾아간 소미의 집에서

그녀의 엄마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함께 애도를 나눔으로써

비극 앞에 굳건히 설 수 있는 마음,

구원을 얻는다.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에서는

별것 아닌 작은 위안으로

힘겹게만 느껴지는 생을 부드럽게 도닥여주는

냉혹한 현실 속 구원을 이야기한다.


치매를 앓는 엄마를

집 안에 가둬두고 뷔페식당 일을 하는 '나',

엄마를 돌보는 일에 피로함을 느끼지만

이따금 엄마의 손에 들린 과자를 보며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견디고 오늘을 살아내는 모습을,


호의로 건넨 음료를 추파로 오인해

'개저씨'로 취급되고,

연이은 실패와 노화 속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현주를 떠올리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

씁쓸한 오늘을 살아내는 40대 남자의

현실을 담아낸 〈호날두의 눈물〉,


한때 결혼까지 꿈꾸었던 연인 상민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한 '나'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들은

상민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도 생경하고,

어떤 것이 상민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이지만

상민이 남긴 사진 속 '나' 역시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낯설기만 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알았던 상민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깨달음 아래

그 시간 함께 시간을 공유했기에,

서로를 경유하고 다른 곳으로 나아갔지만

서로가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작은 땅, 구원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서

그와 제대로 작별을 하게 된 〈경유지〉까지


각각의 글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짐작해 보며

책 속 그들을,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라고

이렇게 삭막한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쫓아야 할,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구원은 가까이에, 내 곁에 있다는

메시지는 울림 있게 다가왔다.


각자가 안고 있는 고통,

그리고 짊어진 삶의 무게는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고단하기만 하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원'을 찾는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때로는 치열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잘것없기만 하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뻗으며

이끌어주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마주하는 구원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 되지 않았나 싶다.


친구, 연인, 가족, 동료와 같이

다양한 관계와 형태로 존재하는 우리들.

서로의 곁에 '영원'이 아닌

잠시 머무르는 인생의 시간이지만,

함께하는 그 잠깐이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작은 땅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단절된 요즘의 현실에

약간의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공감, 소통,

거기에서 비롯된 연결의 순간들이

힘들고 지친 어떤 순간에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남았다.


어디에서도 없는 구원을 찾아

눈과 손으로 매만진 기분이 드는 독서였다.

믿고자 하는 마음,

그 안에 구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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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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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남극, 북극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펭귄이나 하얀색 털을 가진 북극곰

그리고 그들 사이를 오가는 과학자들의 모습,


오래전 보았던 일본 영화 〈남극의 셰프〉와

남극 세종 기지에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극에 대한 시선 끝에는

미지의 장소,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숨겨있는 듯해서

이곳을 떠올릴 때면 알 수 없게

'가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기곤 했다.


어쩐지 느리고 둔한 느낌이지만 귀엽고

그래서 안전하게만 느껴지는 펭귄 곁에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영화 속에서처럼 눈밭에 시럽을 뿌리곤

금세 얼어붙은 시럽을 그러모아

남극 빙수를 만들어 먹는 상상은

지극히 '재미' 위주이지만 얼마나 즐거운지.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환경도

무너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 순수하고 순결한 장소에 가고 싶은 마음,

복잡하고 빠르기만 한 세상에서

동떨어져 나와 조용히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남극에 대한 예찬은

비단 내 마음속에만 있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책 《나의 폴라 일지》는

《경애의 마음》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김금희 작가의 남극 생활기로

생명의 가장 깨끗하고 단순한 출발 앞에 선

소설가의 투명한 기록을 담아낸 글이다.


바쁜 도시, 그 안에서 각자의 몫을 하며

살아가는 건 작가라 해도 매한가지,

국가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행성처럼 존재하는

남극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나의 로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시작부터 많은 공감이 갔다.


남극에 가기 위한 준비과정부터

그곳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팀'이 되어 남극의 일원이 되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남극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지 않을까 싶다.


마냥 즐거워 보이는 남극 생활에

이만큼 가까이 다가가보면

안전과 사고 방지를 위해 무조건 어디에 가든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거나,

나의 위치와 상태를 누군가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안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구원들의 일상 속

민낯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쉴 새 없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점점 개인주의로만 흘러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삭막한 오늘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러한 연결고리가 우리의 미래에

포기할 수 없는 낙관적인 기대가

될 것이라는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다.


중간중간 영화 속 장면처럼

셰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음식을

모두가 나누며 즐거워한 에피소드,

함께 지내는 연구원들과 새해를 맞이하고

윷놀이를 하며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제법 남극인'이 된 듯 어우러져

편안해지는 작가의 성장은

내 일인 양 뿌듯한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우연히 드리게 된 미사에서

마주한 누군가의 죽음,

기지 곳곳에 놓인 펭귄의 뼈를 보며

작가는 무정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평정심을 배웠다고 했다.

이름을 붙여 존재를 인식하는 행위의

고귀함을 담아낸 이 장에서는

어쩐지 숙연해지고, 또 울컥하기도 했다.


이런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지며

쌓이는 우정으로 어느 정도

남극 생활이 익숙해질 때 즈음

작별의 순간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야 만다.


늘 모든 작별이 그렇듯

'이제 좀 익숙해질만하면' 다가와

아쉬움은 커지기만 한다.


남극 생활이 끝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작가의 도전과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연구원을 도와 조류를 관찰하고,

용기 있게 높은 봉우리에 오르고,

고래의 숨을 목격하고,

다른 기지를 방문해 타국의 연구원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또 한 번 성장한다.


인간 그 자체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서는 남극에서의 생활,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는 가르침,

남극 안에서 피어난 우정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힌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끝으로 남극과 안녕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마을을 내려오며

왜 그토록 남극에 오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였다."


너른 극지, 자연의 이치대로

각자의 生을 살아내는 다양한 종,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자연성'

펭귄이든 해표든 고래든 사람이든

무엇 하나 다를 바 없이

그 하늘 아래에서는 그저 하나의 '종'일 뿐.


바위에 올라 어느 타이밍에

바다로 뛰어들지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펭귄처럼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일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깨달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기에

먼저 용기 낸 한 마리의 펭귄처럼

나의 '폴라' 속에서 그렇게 살아낸다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재생과 순환처럼

우리의 생활이, 지구가, 서로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앞으로의 삶을 조금은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저 '남극체험기'로 생각했던 일지는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해서

그 안에서 느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투명한 자연 앞에

모두 다를 것 없다는 것이

아등바등 조금이라도 더 잘나고자

타인을 견제하는 지금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로 함께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는 것,

그 단단하고 안전한 믿음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 우리에게

두려움을 지워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듯하다.


마냥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남극에 대한 로망을

현실처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고

따스한 시선으로 길어올린 문장들 덕분에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준

다정한 독서였다.


누군가 남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이제 이 책 《나의 폴라 일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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