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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구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
내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쉬이 답할 수 없을 만큼
이 단어에서 오는 무게감은 참 크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 가며 구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생각을 펼쳐볼 수 있었다.
작가와 출판사, 독자 셋이 만나
set 한다는 의미의 '셋셋' 시리즈,
문학상을 통한 등단이 정석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지닌
신인들을 발굴해 내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올해 출간된 《셋셋 2025》는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김혜수, 이서희, 김현민, 이지연, 양현모, 전은서
여섯 작가의 스토리를 담았다.
보통 종교를 통해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곤 했다.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 인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의 고통이나
혹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렇기에 구원을 얻고자 더 맹목적인
믿음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를 따라가게 된 교회나
성경공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곁을 지켜주던 또래 친구를 통해
그와 은밀하게 주고받던 '도깨비 말'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여름방학〉,
어쩌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지영에게 종교가 그랬듯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룬
〈지영〉을 통해서는 우리가 멀리에서 찾는 구원이
사실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한때 꾸었던 꿈을
실현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꿈이 나를 산 채로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음에
좌절하고 매일을 보내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지영을 만나게 된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지영에게서
호감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런 그녀가 의지하는 종교에 대해서도
새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아이리시 커피〉에서는
희수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사고로 인해 아르바이트생 소미가 희생당하고,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패닉에 빠진 희수에게
엄마는 주님이 널 지켜주셨다며,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기도의 응답이자
기적이라고 할 뿐이다.
하지만 희수는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일상을 이어가지 못하다,
유품을 들고 찾아간 소미의 집에서
그녀의 엄마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함께 애도를 나눔으로써
비극 앞에 굳건히 설 수 있는 마음,
구원을 얻는다.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에서는
별것 아닌 작은 위안으로
힘겹게만 느껴지는 생을 부드럽게 도닥여주는
냉혹한 현실 속 구원을 이야기한다.
치매를 앓는 엄마를
집 안에 가둬두고 뷔페식당 일을 하는 '나',
엄마를 돌보는 일에 피로함을 느끼지만
이따금 엄마의 손에 들린 과자를 보며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견디고 오늘을 살아내는 모습을,
호의로 건넨 음료를 추파로 오인해
'개저씨'로 취급되고,
연이은 실패와 노화 속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현주를 떠올리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
씁쓸한 오늘을 살아내는 40대 남자의
현실을 담아낸 〈호날두의 눈물〉,
한때 결혼까지 꿈꾸었던 연인 상민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한 '나'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들은
상민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도 생경하고,
어떤 것이 상민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이지만
상민이 남긴 사진 속 '나' 역시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낯설기만 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알았던 상민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깨달음 아래
그 시간 함께 시간을 공유했기에,
서로를 경유하고 다른 곳으로 나아갔지만
서로가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작은 땅, 구원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서
그와 제대로 작별을 하게 된 〈경유지〉까지
각각의 글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짐작해 보며
책 속 그들을,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라고
이렇게 삭막한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쫓아야 할,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구원은 가까이에, 내 곁에 있다는
메시지는 울림 있게 다가왔다.
각자가 안고 있는 고통,
그리고 짊어진 삶의 무게는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고단하기만 하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원'을 찾는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때로는 치열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잘것없기만 하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뻗으며
이끌어주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마주하는 구원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 되지 않았나 싶다.
친구, 연인, 가족, 동료와 같이
다양한 관계와 형태로 존재하는 우리들.
서로의 곁에 '영원'이 아닌
잠시 머무르는 인생의 시간이지만,
함께하는 그 잠깐이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작은 땅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단절된 요즘의 현실에
약간의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공감, 소통,
거기에서 비롯된 연결의 순간들이
힘들고 지친 어떤 순간에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남았다.
어디에서도 없는 구원을 찾아
눈과 손으로 매만진 기분이 드는 독서였다.
믿고자 하는 마음,
그 안에 구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