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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
그중 본부를 이탈하게 된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 기쁨과 슬픔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라일리가 쌓아온 수많은 기억 구슬을 만난 장면이 기억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 구슬들 중 일부는 폐기하게 되는데,
이 모습을 목격한 기쁨이는 '얼마나 소중한 기억인데…' 하며 안타까워한다.
정작 소중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을 이유로 버려지지만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CM송 구슬은
'이런 건 한 번씩 위로 올려보내야 한다'라며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맞아, 어떤 기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CM송같이 일부러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
어떤 기억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니까' 하며 피식 공감의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왜 인간은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되고, 어떤 기억은 금방 잊을까?
기억의 저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면
시험이나 공부, 업무에 필요한 기억은 오래 붙들어두고,
의미 없는 것들은 지워버리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며 말이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이러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인간의 기억력에 대한 차란 란가나스의 탐구를 총망라해 담아내었다.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인생의 모든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 없기에
본질적으로 기억은 선택적인 것이고,
이 선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맥락'과 '도식'이 근거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장소, 상황, 감정 등의 맥락을
'사건의 경계선'이라는 덩어리로 묶어 저장하고,
다른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 뇌는 이를 새로운 맥락으로 인식해
이전 기억을 흐리게 하고 새로운 덩어리로 묶어 정보를 저장한다는 것.
그리고 익숙한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반복되는 패턴이나 구조를 '도식'으로 묶어
중요한 공통 요소로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에 재활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과 구조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의 기억을 잊는 게 아니라
특별할 게 없는 기억이기에 잊는 것이며,
라일리 기억 속에 남은 CM송처럼 '음악'과 같은 효과적인 도식이 있는 기억은
멜로디를 듣는 순간 손쉽게 사건의 경계선으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기억력은 지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망각은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방식이라는
기억의 기본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의 기본 작동원리에 이어 기억한다는 착각이 밝혀내는
기억의 진실에 대해 심화한다.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앞서 배웠던 맥락과 도식을 활용해 정보를 재구성하는데,
과거의 경험에 대한 소량의 맥락에 되살려낸 정보를 출발점으로 삼아
여기에 살을 덧붙여 상상한다고 한다.
이런 기억의 특징은 저장된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기억을 꺼내는 현재 시점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기억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다시 쓰기' 과정을 통해 거짓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믿는 정보가 사실은 일부의 기억 맥락을 바탕으로
내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던 기억을 얘기할 때
'무용담'으로 변하듯, 우리의 기억은 100% 사실만을 담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갱신하는 유동적인 것이라는 진실은
조금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게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단점이 아니라 기억 갱신으로 앞으로의 행동을 조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 역시 존재하기에,
기억 갱신과 유동 기억 시스템은 오히려 개인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회피하고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가 진화시킨 가장 적극적인 생존방식임을 배울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이 이어진다.
처음 기억과 관련된 궁금증에서 '기억을 선택적으로,
혹은 내게 필요한 기억만 더 오래 가져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조금 어렵기는 했지만 이 파트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뇌과학적인 측면으로 살펴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동물이 보이는 정향 반응처럼,
우리 역시 예상 가능한 정보보다는 예상치 못한 정보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에
정보격차가 발생할 때 호기심이 자극되며,
호기심이 자극되면 자연스럽게 이 격차를 해소하고자 어떤 노력을 행하게 되고,
호기심이 충족될 때 뇌는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해
다시 학습의욕과 동기부여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즉, 어떤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습득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 역시 자연스럽게 강화되니
결과적으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가 지루한 정보보다 머릿속에 더 남는다.
이러한 작용을 이용하면 우리가 원하는 학습과 기억능력의 향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매 수업 시간마다 보는 쪽지시험과 같이
도전과 실수에서 배운다는 간단한 원칙이지만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한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보관하게 된다는 '실수 기반 학습'과
수면을 통해 낮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기억을 응고화하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시험을 치르는 효과'를 주는
'수면'을 이용한다면 학습과 기억에 더 큰 도움을 준다는 것.
어디선가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
해보지 않았던 것이 인지에 도움이 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기억이 어떻게 작동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이 100% 사실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인해 '다시 쓰기'된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고 나니
그럼 어떤 기억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은 기억의 작동 방식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기억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상상력이 가미된 재구축'이기에
각자의 경험이나 해석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해서
다르게 재구성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본질 자체를 이해하면
이를 활용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제안한다.
기억과 망각이 뇌의 한계나 개개인에 따른 능력이 차이라고 생각해왔던 기존의 고정관념,
'왜 잊어버리는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기억을 활용해
창의적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미래에 대처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기억하는 자아'를 잘 알게 되면 기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과거의 족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뒤
오히려 과거를 안내인 삼아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라는 이유로 학습이나 공부를 놓아버리거나
혹은 상대에 대한 좋지 않았던 기억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관계를 단절시킨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과거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억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억력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그의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해
우리가 기억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시야와 방법을 배웠다.
불완전하게 기억하는 과거에 묶여있거나 갇혀있을 필요 없이,
'나만의 해석과 재구성'으로 더 멋진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자신감, 기대를 부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