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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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옛말에 남이 쓰던 물건은

함부로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쓰던 사람의 기운이 물건을 따라가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괴담은

누구나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건에 꼭 안 좋은 기운만 남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항상 애지중지하던 애착 인형에는

따스했던 추억이 담겨있고,

할머니가 생전에 늘 끼고 다니던

반지나 팔찌를 지니고 있으면

나를 지켜주는 듯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꼭 특별한 사연이 없더라도

내가 매일 사용하는 손에 익은 물건에는

자연스레 나의 일상이 스며든다.

사용하는 사람의 습관이나 손길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손때가 타기도 하면서,

대단한 일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의 흐름 아래

물건은 어느덧 나를 연상시키고

혹은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은

어떻게 보면 무섭다기 보다

한 사람의 인생, 일상이 담겨있는

'일기장'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물건을 통해서 이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을 짐작하고 헤아리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된 물건에 담긴 기이한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묵은 감정을 끄집어내며

'골동품점'이라는 공간과 엮어

기담 형식으로 만들어 낸

범유진 작가의 《호랑골동품점》이다.


'귀신이 들린 가게'라는 소문과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영업하는

골목 한편의 작은 가게 '호랑골동품점'


어쩐지 비상한 느낌의,

눈썹 한가운데 희 털이 돋아나 있는

이유요와 삽살개 동이 지키는 이 가게는

특별한 물건들 투성이다.


성냥이나 그림자 인형,

오래된 공중전화기나 래빗스 풋,

짚인형이나 콩주머니 같은

오래되고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물건으로,

사실 한恨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숨겨진 기억을 품고 있어

누군가를 향해 가지고 싶게끔 손길을 뻗는다.


물건 속에 있는 숨은 기억이

비슷한, 혹은 같은 '외로움'을 가진

손님들을 만나며 바깥으로 건져내지고,

이를 가게 밖으로 가져나가는 손님으로 인해

낡은 인연은 새로이 꿰매지기도 한다.


자의 혹은 타의로 물건을 곁에 두며

자신이 각자 짊어진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미스터리하고 쭈뼛 소름을 돋게 했지만,


가정폭력, 노동인권, 여성 혐오,

외모지상주의, 계급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신선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을 통해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사회의 문제를 꼬집기도 하며

다시 골동품점으로 돌아오는 물건들을 보며

통쾌하고 속 시원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한이 응축된 사람을 끌어들여

그들의 손을 통해 가게를 벗어나려 하는

골동품점의 물건들.


그 물건을 가게 밖으로 이끈 등장인물들은

물건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벌받거나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며

혹은 옥죄고 있던 현실이나 위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얼핏 각각의 물건이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물건이 애써 인물들을

움직이려 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물건들이

어떤 '신묘한 모습'을 보인 것인지

혹은 물건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속에 가라앉혀 두었던

묵은 앙금과 같은 감정을 끄집어내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물건으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의 과거,

그리고 외면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끄집어냄으로써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기도,

혹은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거나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내었다는 것이다.


각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가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듯싶지만

서로 끊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연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공간 속 사람들의

분노, 그리움, 애수와 같은 감정을 마주하고

상처와 회복, 치유의 과정을 함께 겪으며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상과 한이 담긴 호러 이야기이지만,

각 사연의 끝에서는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진다.

마냥 밝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

불온한 감정과 힘을 '정화'하는 과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외면하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물건에 담긴 사연을 전하며,

그 물건들의 한恨을 달래주는

호미 '이요유'의 존재처럼

조금만 시선을 넓혀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 마음 앓이를 하거나

각자의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서로에게 '호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비상한 물건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물건에

지금도 계속해서 사연이 쌓이고

각자의 감정이 녹아든다 생각하니

앞으로 마주할 물건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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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장민주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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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더퀘스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유독 걱정이나 고민으로 작아지는 날이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고 싶지만

당장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일을

던져버릴 용기가 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던 대로 하루를 보내기에는

뭔가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 날.


그런 때면 일단 '커피라도 한 잔' 혹은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전환할까' 하는

소소한 힐링의 시간을 꿈꾼다.


시끌벅적하거나 요란한 응대 하나 없이

더벅머리에 안경을 쓴 주인이 운영하는

카페 도도,

그 안에 들어서면 이상하리만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아

오롯이 주인이 내어주는 음식이나 음료,

그리고 나에게만 집중하기에 좋다.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것 같은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음식과 조용한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위로를 안겨준다.


오직 다섯 명의 손님만 앉을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이 카페는 1인 전용으로

누구든 '고독' 속에서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한 분위기만 해도 시름을 잊을 수 있지만

이곳은 '오늘의 메뉴'로

조금 특별한 이름의 음식이 제공된다.


안개 속의 페이스트리 파이,

견디기 힘든 마음에 뚜껑을 덮는 커스터드 푸딩,

흑백을 가르지 않는 케이크 살레,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오차즈케,

잠시 멈춤을 위한 미트소스 그라탱 등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

각자의 고민에 꼭 맞는 위로를 담은 이 음식들은

먹는 손님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걱정이나 고민을 사르르 녹여준다.


고민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어떤 특별한 조언을 건네지도 않지만

음식을 먹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고민에 대해 답을 찾도록 도와주며

다 먹고 난 뒤 카페를 나갈 때에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따스한 공간이다.


실제로 이런 카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알아챈 듯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단골손님이 되어 자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묵묵하게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그렇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따스하게 다가오는 카페 도도는

다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

단단하게 삶을 마주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주기에

마치 나의 고민이 해결된 듯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실직, 이혼, 현실에 타협하느라 놓아버린 꿈 등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네 명의 여성들이 가진 고민도 제각각 다르지만


문득 멈춰 서고 싶어지는 순간,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순간,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불안한 순간마다

'언제든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하고

다독이는 위로로 '잠시 멈춤'을 지지해 주며

세상도 잠시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도도에서의 시간은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카페에서 보내는 '혼자'의 시간은

그저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 아니라,

음식을 맛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과정 속

깊은 마음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자기 나름의 '바보' 페이스를 찾아내

다시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는

도도의 주인장 소로리의 마음처럼,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페이스'로

내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일을 살아보자는 긍정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빛나고 열심히 나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나의 삶이지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도

잠시 멈추어 가도 괜찮다는 토닥임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줬다.


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를 통해

나 역시 작은 기적을 꿈꾸며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고민이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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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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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이나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엄마에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아이 둘,

술이나 약에 취해있는 것이 일상이고

아이들의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그런 가정에 있는 고작 열세 살의 소녀는

딱 그럴 줄 알았다 싶을 만큼

또래 친구들처럼 순진하거나 얌전하지 않고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자신들을 얕잡아보는 이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가게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훔치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여섯 살 어린 남동생 로빈은 물론,

때로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엄마를 챙기느라 바쁘다.


더치스 데이 래들리.


세상에 찌들었다. 약아빠지고 참 못됐다.

싹수가 노랗다. 저런 애들은 미래가 뻔하다.

이 소녀를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뻔한 환경에서 뻔하게 자라

누구도 곱게 볼 수 없는 그런 아이.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엄마 스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동생을 돌보라는 부모님의 부탁에

대수롭지 않게 TV 앞에 동생을 앉혀두고는

남자친구와 나가 맥주 몇 캔을 들이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돌아갈까' 싶어 차에 탄 게 화근이었다.


언니를 기다리던 동생 시시 래들리는

집 앞 길목에 나와 서있었고,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스타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던 빈센트 킹은

시시를 보지 못한 채 차로 그 아이를 치고 만다.


그대로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구급차를 불렀으면 좋았겠지만

10대였던 그들은 미숙했고 어렸기에

도망쳐버렸고 시시는 그렇게 죽음에 이른다.


동네 사람들에 의해 실종된 시시가 발견되고,

스타와 빈센트의 오랜 친구인 워크는

빈센트의 차량에 있는 흠집을 보고는

그의 짓임을 알게 되는데

그에게 자수를 권하거나 진실을 묻지 않고

경찰서에 이를 신고하게 된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고,

빈센트 킹은 감옥으로 끌려가며

충격을 받은 스타와 시시의 엄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모두의 평온한 삶은 박살 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빈센트는 출소한다.

원래 살던 동네 케이프 헤이븐으로 돌아오고,

그 시간 동안 스타는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더치스와 로빈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이 되었다.

오랜 꿈이었던 경찰의 꿈을 이룬 워크는

스타의 가족을 아낌없이 돌보면서도

친구였던 빈센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다시 한 동네에 모이게 된 이들 앞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로빈의 생일을 앞두고 엄마를 대신해

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러 더치스가 나간 새에

엄마인 스타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


사건 현장을 찾은 워크는

집 안에서 빈센트를 마주하게 되고,

빈센트는 다시 살해 혐의로 잡힌다.

하지만 범죄 도구인 총도 발견되지 않고,

석연치 않게 순순히 자신을 잡아가라는

빈센트를 보며 워크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중요한 목격자인

스타의 아들 로빈은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고

충격에 빠져있을 뿐이다.


하나뿐인 보호자인 엄마 스타를 잃고,

지켜야 할 대상인 동생과 남은 더치스.

사실은 엄마의 죽음 이전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실수'를 저질렀기에 불안한 마음과 동시에,

이모에 이어 엄마까지 해한 빈센트에 대한 복수심,

자신들에게만 가혹한 세상에 대한 증오로

'무법자'로 악의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과연 이 열세 살 소녀는

끝까지 동생을 지킬 수 있을 것이며,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열세 살에 불과한 소녀이기 때문에

아직은 마냥 어리광을 부리거나

순수한 모습이어야 마땅하거늘

반짝반짝 빛나고 맑아야 할

한 소녀의 삶은 너무도 퍽퍽했다.


누군인지 모르는 아빠,

자신과 동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엄마,

그 안에서 나는 아니더라도 동생만큼은

오롯이 행복하게 온전한 삶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쓰는 매일.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만한

욕설이나 도둑질 같은 비행에도 불구하고,

혹은 여러 차례 그들을 휩쓸고 가서

하나씩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는 세상에

복수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소녀의 '생존'은 참 치열하기만 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도 못한 채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농장으로

떠밀리듯 이동하게 된 더치스가

비틀린 마음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날선 모습을 보인 것조차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들킬까,

혹은 이 따스함을 믿고 싶을까 봐

애써 차갑게 대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동생을 통해 알게 된 사건이 일어난 날

마주한 한 사람의 이야기,

별 뜻 없이 한 행동이

되돌릴 수 없는 실수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게 된 소용돌이까지


진실이 무엇인가를 쫓다 보니

600페이지가 넘는 이 이야기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고,

이 사건의 진실이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새로운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뒤통수를 맞는 듯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빈센트가 처음 시시를

차로 치게 된 후 외면한 실수,

더치스가 엄마가 일하던 클럽에 찾아가

CCTV 테이프를 훔쳐 없애버린 실수 등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실수 앞에

우리가 한 걸음씩 어떻게 어디로

발을 내디딜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실수들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인생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저 미워하는 마음에 멈춰있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각 등장인물의 하루하루가

먹먹하게만 느껴졌다.


휘몰아치듯 이어지는 사건 그리고 진실 아래

안락함에 빠져드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고통 속에서도 용기 있는 '무법자'이길 선택한

더치스의 치열한 삶,


그리고 그가 여전히 아이답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길 바랐던 핼과

그 조차도 후회했던 한순간의 실수 등


각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악惡으로 닿아있는 걸 보며

우리가 규정하는 선과 악, 복수와 용서조차

상대적인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절대 선善도 절대 악惡도 없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수에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삶,

남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태도는

모두에게 다르지 않아 애틋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간의 감정,

내게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몸부림을 보며

단순히 진짜 범인이 누군지 쫓는

그 진실 너머의 마음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과연 마지막에 더치스가 행복했을까,

남은 삶이 평온했을까 궁금해졌다.

로빈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던 더치스처럼

이 이야기를 읽어가는 내 마음에도

울컥하는 맺힘이 남았다.


다 읽은 후에도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훑으며

되새기고 곱씹는 작품이었다.

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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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장민주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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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힐링소설 카페 도도 시리즈,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상처로 힘든 날이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카페 도도의 음식과 위로가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대리만족, 힘이 될 것 같아요- 너무나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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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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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언제쯤 따뜻해지려나,

조급해지던 마음이 무색하게

어느덧 아파트 단지 내 쭉 이어진 벚나무에서

만발한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계절의 흐름과 변화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통해 알게 될 때가 많다.


추운 겨울이 끝나가나 싶으면

아기 피부처럼 부드럽고 연한

연둣빛의 잎이 올라와 봄을 실감하게 하고

겨울 동안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바짝 메말랐던 장미 가지도

잎과 꽃을 피우며 생명력을 과시한다.


가을이면 일부러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을

빨강, 주황, 노랑빛으로 온 잎이 물들고,

다시 쌀쌀해지는 바람에 잎들은 모두 떨어지고

나무는 묵묵히 겨울잠에 들어간다.


살아있는 생명이지만 동물과 달리

살아있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 식물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질긴 생명력과 성장력은

어떤 생물보다 바쁜 움직임이다.


도시에서 한 발짝 벗어나 울창한 숲,

나무와 식물들이 살아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치열한 우리의 삶도 차분하게 정리되고

말 없는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이 주는 그 치유의 순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약속된 듯 반복되는

조화와 연결, 순환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신혜우가 써 내려간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겨울로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기까지

네 계절을 거치며 식물들과 부대낀

그녀의 숲속 시간,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식물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기에 좋은,

맑은 자연을 가지고 있는 메릴랜드 숲속에서

식물과 어우러진 생활을 통해 느낀

삶에 대한 사색,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생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식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과학의 범주이기에

우리가 숲에서 나무와 녹음, 꽃이나 열매 등을 마주하며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접근과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학자로서 바라보는 자연과 식물의 생에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자연을 마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는 식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메릴랜드 숲에서의 삶은

자연에 가까이 닿고 싶지만 빌딩 숲에서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리만족과 신비함을 일깨워 주었다.


계절에 따라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다시 아스라이 사라지는

식물의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저자는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하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은 물론

다른 개체와 환경에도 영향을 주기에

'식물의 모든 과정은 버리는 것,

사라지는 것까지도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또한 계절에 따른 식물의 변화에도

학자다운 분석으로 접근해,

'당연한 것'으로만 느껴지던 식물의 변화를

새로운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벚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남는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

곰팡이의 도움을 받아 싹을 틔울 영양분을 전달받는 난초,

물에 동동 뜨는 크랜베리가 열매 속 공기주머니를 이용해

물을 따라가며 씨앗을 퍼뜨리는 것,

겨울이면 활엽수의 잎이 떨어져

햇빛이 낮은 곳까지 닿도록 해 광합성을 하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을 단단하고

도톰하며 뾰족하게 만드는 것.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식물들의 '계산한 움직임, 성장'을

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며

대단히 신비하고 필연적인 자연의 위대함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힘,

가지고 있던 편견을 무너뜨리는 식물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통해서

그녀는 그간 재능이 있는지 의심했던 과거의 시간,

그리고 여러 관계 속에서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으로서도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누군가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과

세상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우치는 삶으로

우리 모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잔잔한 메시지는 그저 '식물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꽃이 피면 마냥 예쁘네,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구나,

이제 잎이 다 떨어졌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식물의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깊숙이 들여다보며 곱씹어 보니

새삼스럽고 마냥 신비하기만 하다.


시들어 버린 화분을 죄의식 없이 내다 버리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수확량이 줄고

재배가 위태로워진 작물들을 보며

그저 '값이 많이 올랐네' 정도만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미안해질 정도이다.


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고,

하나하나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마주하고 나니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내는 매일,

모든 계절이 이제는 쉬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마음먹고 나가야 숲을 마주할 수 있지만

길거리에 자라나는 가로수 하나,

단지 앞 뜰에 피어난 식물들까지

저마다의 애씀과 몫으로

자연에 최선을 다하는 그 '삶'을 생각하며


풀 한 포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의 한 구성원인 인간으로서

나 역시 다른 개체와 주변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열심히 성숙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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