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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언제쯤 따뜻해지려나,
조급해지던 마음이 무색하게
어느덧 아파트 단지 내 쭉 이어진 벚나무에서
만발한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계절의 흐름과 변화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통해 알게 될 때가 많다.
추운 겨울이 끝나가나 싶으면
아기 피부처럼 부드럽고 연한
연둣빛의 잎이 올라와 봄을 실감하게 하고
겨울 동안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바짝 메말랐던 장미 가지도
잎과 꽃을 피우며 생명력을 과시한다.
가을이면 일부러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을
빨강, 주황, 노랑빛으로 온 잎이 물들고,
다시 쌀쌀해지는 바람에 잎들은 모두 떨어지고
나무는 묵묵히 겨울잠에 들어간다.
살아있는 생명이지만 동물과 달리
살아있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 식물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질긴 생명력과 성장력은
어떤 생물보다 바쁜 움직임이다.
도시에서 한 발짝 벗어나 울창한 숲,
나무와 식물들이 살아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치열한 우리의 삶도 차분하게 정리되고
말 없는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이 주는 그 치유의 순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약속된 듯 반복되는
조화와 연결, 순환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신혜우가 써 내려간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겨울로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기까지
네 계절을 거치며 식물들과 부대낀
그녀의 숲속 시간,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식물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기에 좋은,
맑은 자연을 가지고 있는 메릴랜드 숲속에서
식물과 어우러진 생활을 통해 느낀
삶에 대한 사색,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생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식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과학의 범주이기에
우리가 숲에서 나무와 녹음, 꽃이나 열매 등을 마주하며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접근과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학자로서 바라보는 자연과 식물의 생에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자연을 마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는 식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메릴랜드 숲에서의 삶은
자연에 가까이 닿고 싶지만 빌딩 숲에서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리만족과 신비함을 일깨워 주었다.
계절에 따라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다시 아스라이 사라지는
식물의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저자는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하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은 물론
다른 개체와 환경에도 영향을 주기에
'식물의 모든 과정은 버리는 것,
사라지는 것까지도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또한 계절에 따른 식물의 변화에도
학자다운 분석으로 접근해,
'당연한 것'으로만 느껴지던 식물의 변화를
새로운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벚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남는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
곰팡이의 도움을 받아 싹을 틔울 영양분을 전달받는 난초,
물에 동동 뜨는 크랜베리가 열매 속 공기주머니를 이용해
물을 따라가며 씨앗을 퍼뜨리는 것,
겨울이면 활엽수의 잎이 떨어져
햇빛이 낮은 곳까지 닿도록 해 광합성을 하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을 단단하고
도톰하며 뾰족하게 만드는 것.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식물들의 '계산한 움직임, 성장'을
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며
대단히 신비하고 필연적인 자연의 위대함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힘,
가지고 있던 편견을 무너뜨리는 식물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통해서
그녀는 그간 재능이 있는지 의심했던 과거의 시간,
그리고 여러 관계 속에서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으로서도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누군가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과
세상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우치는 삶으로
우리 모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잔잔한 메시지는 그저 '식물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꽃이 피면 마냥 예쁘네,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구나,
이제 잎이 다 떨어졌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식물의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깊숙이 들여다보며 곱씹어 보니
새삼스럽고 마냥 신비하기만 하다.
시들어 버린 화분을 죄의식 없이 내다 버리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수확량이 줄고
재배가 위태로워진 작물들을 보며
그저 '값이 많이 올랐네' 정도만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미안해질 정도이다.
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고,
하나하나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마주하고 나니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내는 매일,
모든 계절이 이제는 쉬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마음먹고 나가야 숲을 마주할 수 있지만
길거리에 자라나는 가로수 하나,
단지 앞 뜰에 피어난 식물들까지
저마다의 애씀과 몫으로
자연에 최선을 다하는 그 '삶'을 생각하며
풀 한 포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의 한 구성원인 인간으로서
나 역시 다른 개체와 주변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열심히 성숙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