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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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옛말에 남이 쓰던 물건은

함부로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쓰던 사람의 기운이 물건을 따라가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괴담은

누구나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건에 꼭 안 좋은 기운만 남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항상 애지중지하던 애착 인형에는

따스했던 추억이 담겨있고,

할머니가 생전에 늘 끼고 다니던

반지나 팔찌를 지니고 있으면

나를 지켜주는 듯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꼭 특별한 사연이 없더라도

내가 매일 사용하는 손에 익은 물건에는

자연스레 나의 일상이 스며든다.

사용하는 사람의 습관이나 손길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손때가 타기도 하면서,

대단한 일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의 흐름 아래

물건은 어느덧 나를 연상시키고

혹은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은

어떻게 보면 무섭다기 보다

한 사람의 인생, 일상이 담겨있는

'일기장'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물건을 통해서 이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을 짐작하고 헤아리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된 물건에 담긴 기이한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묵은 감정을 끄집어내며

'골동품점'이라는 공간과 엮어

기담 형식으로 만들어 낸

범유진 작가의 《호랑골동품점》이다.


'귀신이 들린 가게'라는 소문과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영업하는

골목 한편의 작은 가게 '호랑골동품점'


어쩐지 비상한 느낌의,

눈썹 한가운데 희 털이 돋아나 있는

이유요와 삽살개 동이 지키는 이 가게는

특별한 물건들 투성이다.


성냥이나 그림자 인형,

오래된 공중전화기나 래빗스 풋,

짚인형이나 콩주머니 같은

오래되고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물건으로,

사실 한恨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숨겨진 기억을 품고 있어

누군가를 향해 가지고 싶게끔 손길을 뻗는다.


물건 속에 있는 숨은 기억이

비슷한, 혹은 같은 '외로움'을 가진

손님들을 만나며 바깥으로 건져내지고,

이를 가게 밖으로 가져나가는 손님으로 인해

낡은 인연은 새로이 꿰매지기도 한다.


자의 혹은 타의로 물건을 곁에 두며

자신이 각자 짊어진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미스터리하고 쭈뼛 소름을 돋게 했지만,


가정폭력, 노동인권, 여성 혐오,

외모지상주의, 계급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신선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을 통해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사회의 문제를 꼬집기도 하며

다시 골동품점으로 돌아오는 물건들을 보며

통쾌하고 속 시원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한이 응축된 사람을 끌어들여

그들의 손을 통해 가게를 벗어나려 하는

골동품점의 물건들.


그 물건을 가게 밖으로 이끈 등장인물들은

물건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벌받거나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며

혹은 옥죄고 있던 현실이나 위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얼핏 각각의 물건이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물건이 애써 인물들을

움직이려 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물건들이

어떤 '신묘한 모습'을 보인 것인지

혹은 물건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속에 가라앉혀 두었던

묵은 앙금과 같은 감정을 끄집어내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물건으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의 과거,

그리고 외면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끄집어냄으로써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기도,

혹은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거나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내었다는 것이다.


각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가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듯싶지만

서로 끊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연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공간 속 사람들의

분노, 그리움, 애수와 같은 감정을 마주하고

상처와 회복, 치유의 과정을 함께 겪으며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상과 한이 담긴 호러 이야기이지만,

각 사연의 끝에서는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진다.

마냥 밝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

불온한 감정과 힘을 '정화'하는 과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외면하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물건에 담긴 사연을 전하며,

그 물건들의 한恨을 달래주는

호미 '이요유'의 존재처럼

조금만 시선을 넓혀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 마음 앓이를 하거나

각자의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서로에게 '호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비상한 물건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물건에

지금도 계속해서 사연이 쌓이고

각자의 감정이 녹아든다 생각하니

앞으로 마주할 물건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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