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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술집이나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엄마에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아이 둘,
술이나 약에 취해있는 것이 일상이고
아이들의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그런 가정에 있는 고작 열세 살의 소녀는
딱 그럴 줄 알았다 싶을 만큼
또래 친구들처럼 순진하거나 얌전하지 않고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자신들을 얕잡아보는 이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가게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훔치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여섯 살 어린 남동생 로빈은 물론,
때로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엄마를 챙기느라 바쁘다.
더치스 데이 래들리.
세상에 찌들었다. 약아빠지고 참 못됐다.
싹수가 노랗다. 저런 애들은 미래가 뻔하다.
이 소녀를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뻔한 환경에서 뻔하게 자라
누구도 곱게 볼 수 없는 그런 아이.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엄마 스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동생을 돌보라는 부모님의 부탁에
대수롭지 않게 TV 앞에 동생을 앉혀두고는
남자친구와 나가 맥주 몇 캔을 들이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돌아갈까' 싶어 차에 탄 게 화근이었다.
언니를 기다리던 동생 시시 래들리는
집 앞 길목에 나와 서있었고,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스타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던 빈센트 킹은
시시를 보지 못한 채 차로 그 아이를 치고 만다.
그대로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구급차를 불렀으면 좋았겠지만
10대였던 그들은 미숙했고 어렸기에
도망쳐버렸고 시시는 그렇게 죽음에 이른다.
동네 사람들에 의해 실종된 시시가 발견되고,
스타와 빈센트의 오랜 친구인 워크는
빈센트의 차량에 있는 흠집을 보고는
그의 짓임을 알게 되는데
그에게 자수를 권하거나 진실을 묻지 않고
경찰서에 이를 신고하게 된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고,
빈센트 킹은 감옥으로 끌려가며
충격을 받은 스타와 시시의 엄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모두의 평온한 삶은 박살 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빈센트는 출소한다.
원래 살던 동네 케이프 헤이븐으로 돌아오고,
그 시간 동안 스타는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더치스와 로빈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이 되었다.
오랜 꿈이었던 경찰의 꿈을 이룬 워크는
스타의 가족을 아낌없이 돌보면서도
친구였던 빈센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다시 한 동네에 모이게 된 이들 앞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로빈의 생일을 앞두고 엄마를 대신해
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러 더치스가 나간 새에
엄마인 스타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
사건 현장을 찾은 워크는
집 안에서 빈센트를 마주하게 되고,
빈센트는 다시 살해 혐의로 잡힌다.
하지만 범죄 도구인 총도 발견되지 않고,
석연치 않게 순순히 자신을 잡아가라는
빈센트를 보며 워크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중요한 목격자인
스타의 아들 로빈은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고
충격에 빠져있을 뿐이다.
하나뿐인 보호자인 엄마 스타를 잃고,
지켜야 할 대상인 동생과 남은 더치스.
사실은 엄마의 죽음 이전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실수'를 저질렀기에 불안한 마음과 동시에,
이모에 이어 엄마까지 해한 빈센트에 대한 복수심,
자신들에게만 가혹한 세상에 대한 증오로
'무법자'로 악의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과연 이 열세 살 소녀는
끝까지 동생을 지킬 수 있을 것이며,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열세 살에 불과한 소녀이기 때문에
아직은 마냥 어리광을 부리거나
순수한 모습이어야 마땅하거늘
반짝반짝 빛나고 맑아야 할
한 소녀의 삶은 너무도 퍽퍽했다.
누군인지 모르는 아빠,
자신과 동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엄마,
그 안에서 나는 아니더라도 동생만큼은
오롯이 행복하게 온전한 삶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쓰는 매일.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만한
욕설이나 도둑질 같은 비행에도 불구하고,
혹은 여러 차례 그들을 휩쓸고 가서
하나씩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는 세상에
복수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소녀의 '생존'은 참 치열하기만 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도 못한 채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농장으로
떠밀리듯 이동하게 된 더치스가
비틀린 마음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날선 모습을 보인 것조차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들킬까,
혹은 이 따스함을 믿고 싶을까 봐
애써 차갑게 대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동생을 통해 알게 된 사건이 일어난 날
마주한 한 사람의 이야기,
별 뜻 없이 한 행동이
되돌릴 수 없는 실수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게 된 소용돌이까지
진실이 무엇인가를 쫓다 보니
600페이지가 넘는 이 이야기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고,
이 사건의 진실이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새로운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뒤통수를 맞는 듯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빈센트가 처음 시시를
차로 치게 된 후 외면한 실수,
더치스가 엄마가 일하던 클럽에 찾아가
CCTV 테이프를 훔쳐 없애버린 실수 등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실수 앞에
우리가 한 걸음씩 어떻게 어디로
발을 내디딜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실수들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인생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저 미워하는 마음에 멈춰있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각 등장인물의 하루하루가
먹먹하게만 느껴졌다.
휘몰아치듯 이어지는 사건 그리고 진실 아래
안락함에 빠져드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고통 속에서도 용기 있는 '무법자'이길 선택한
더치스의 치열한 삶,
그리고 그가 여전히 아이답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길 바랐던 핼과
그 조차도 후회했던 한순간의 실수 등
각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악惡으로 닿아있는 걸 보며
우리가 규정하는 선과 악, 복수와 용서조차
상대적인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절대 선善도 절대 악惡도 없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수에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삶,
남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태도는
모두에게 다르지 않아 애틋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간의 감정,
내게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몸부림을 보며
단순히 진짜 범인이 누군지 쫓는
그 진실 너머의 마음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과연 마지막에 더치스가 행복했을까,
남은 삶이 평온했을까 궁금해졌다.
로빈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던 더치스처럼
이 이야기를 읽어가는 내 마음에도
울컥하는 맺힘이 남았다.
다 읽은 후에도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훑으며
되새기고 곱씹는 작품이었다.
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