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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르포르타주(reportage)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
실제의 사건을 보고하는 문학을 말한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로서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쓰인 시기는
대공황기로 대량 실업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정치적으로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파시즘이 득세하던 때였다.
이 즈음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던 그가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책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집중적인 조사 끝에 완성한 책이다.
책은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
탄광의 실태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담겨
문학적으로도, 역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 실상에 대한 내용에 이어
자신의 성장 배경과 영국의 계급 문제,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담은
주장 강한 에세이가 이어지며
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작가'로서 얼마나
문학적으로도 감동을 주는
'르포르타주'를 써 내려갔는지,
그리고 역사학적으로 충실한 자료가 될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명의 기반이 되는 석탄을 캐기 위해
지옥 같은 땅굴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하지만
천대받는 광부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 없이 고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없다며
계급 문제, 정치적인 견해까지 이어져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탄광 노동자의 실상을 다룬 1부에서는
다큐멘터리나 미디어를 통해 접한
탄광 노동의 고됨을 면면히 알 수 있었다.
그저 '힘들겠지' 정도만 생각했던
노동의 고됨과 그럼에도 퍽퍽했던 생활,
'몸으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처우가 개선되거나
그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하지 않으며
사실상 '노예의 강제 노역'과 같은 노동환경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시대와 국가는 다르지만
여전히 탄광 노동자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공장에서 체력과 건강을 갈아 넣으며
자신을 다 태워 넣는 노동환경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기에
영국의 탄광 노동자의 현실이 아니라
'전태일'과 '미싱공'을 떠올리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식품공장에서 목숨을 잃고도
여전히 일을 이어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여전한 문장이라서
그들의 희생과 극한의 노동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층 동익이 아내 연교에게
운전기사 기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항상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는데,
그의 냄새만큼은 선을 넘는다."
아무리 숨기고 포장해도 숨길 수 없는
계급 차이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던 대사라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아래 것들은 냄새가 나'라는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들이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에서
영화를 보며 실감했던 같은 씁쓸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그저 관찰하고
글로 써 내려갈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확대해 바라보는
어쩌면 용기 있었던 조지 오웰의 선택에서
지금의 우리가 알아야 할,
목소리 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르포르타주라는 '보고'를 넘어선
2부의 내용은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정치나 이념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고,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주장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만의 신념을 엿볼 수 있기도,
계급 차별에 대한 냉철한 현실을 꼬집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 궤적을 되짚으며
한 인물의 서사를 알게 되는 문장들이기도 했다.
탄광 노동자들의 실상을 시작으로
'밑바닥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같은 맥락에서 힘없는 빈자와 약자와 소수자가
사회에 압살당하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고 고민해 보게 도와주었다.
우리가 어떤 곳에 힘을 실어야 하는지
어디에 연대의 함성을 보내야 하는지,
과거의 그가 전하는 문장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를 품을 수 있었고
다시 '조지 오웰'을 읽는 이유를,
각자가 사회와 노동자와 자신을 위해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