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마음 식물원 (아틀리에 컬렉션) 메리골드 시리즈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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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에게 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날

부모님과 작별을 하게 된 한 소녀.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기 위해

끝없이 환생해 생을 반복하며 자책하지만,

그 생 속에서도 본인에게 있는 능력을 이용해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운영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아픈 기억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기억을 세탁해 주고 위로하며 힘을 주었다.


이어지는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에서는

그녀에게 찾아온 따스한 사랑으로

마침내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에 이은 완결판으로

지은의 그동안 숨겨졌던 비밀과

반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메리골드 시리즈'의 피날레인

《메리골드 마음 식물원》은

다시 메리골드 한적한 해변가로

생을 다시 시작한 지은이 '마음 식물원'을 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꽃과 나무로 피워내며

담담한 듯 가슴 깊이 스며드는 위로를 건네는

힐링 판타지 작품이다.


배 속 아이를 유산한 마음의 상처,

반복되는 시험관 실패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자신을 잃고 작아지는 윤지,


실패가 두려워 익숙해진 일상

단단한 루틴만을 고수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삶이 실패한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버스기사 상수,


겉보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사실은 일에서도 방향을 잃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헤매는 우연,


그리고 세탁소, 사진관 시리즈를 통해

유쾌한 입담과 따뜻한 애정으로

지은의 마음속 허기까지 달래주던

우리 분식 사장까지


각각의 인물의 서사를 따라 움직이며

그들 삶에 얹어진 삶의 행복과 불행,

그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을

성찰하고 보듬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식물원을 찾는 손님들은

세탁소, 사진관을 찾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시름과 인생의 무게로

자신감을 잃고 행복을 모른 채

그저 매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자책으로

생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타인을 위로해 주는 '숙명'을 멈추지 않았던

지은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과거의 실수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며

후회로 사는 오늘을 접고,

지은을 통해 피워낸 꽃과 나무, 씨앗을

스스로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회복하고 한걸음 용기 있게

내딛는 성장을 통해

늘 지워버리고 싶던 상처가

사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기도 한

시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한 송이의 꽃, 한 그루의 나무가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을 겪어내고

이를 넘어서야만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 역시 아픈 시간이 있지만

이런 과정의 끝에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다는 인생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냥 외면하고 싶은 고통,

힘겨운 삶의 고비, 후회되는 시간들을

싹 거둬내고 지워버린다고 해서

행복으로만 가득 찬 삶이 되진 않을 것이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안아주면서

마음을 돌보고 양육하고

스스로를 '보듬고 키우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시작된다는

지은의 울림 있는 메시지가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자신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내면을 살뜰히 어루만져 주는

그 정성 어린 손길 덕분에

각각의 다른 사연이지만 나의 이야기인 듯

지은의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숙명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그 과정을 통해

그녀 역시 조금씩 치유하고 성장함으로써

비로소 사랑과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었기에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함께 부대끼며

서로를 헤아려주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 세탁소에서 상처받은 기억을 지워주고

사진관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담아주었다면

식물원을 통해 내 안에 담겨있는 감정의 뿌리,

행복과 불행 모두를 깊이 헤아리며

돌봄과 회복, 성장으로 이어지는

'완결'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때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혹은 후회와 자책감으로 가득 찬 삶으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면

지은이 건네는 꽃과 나무, 씨앗을 통해

'내가 돌보지 못한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날레라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메리골드 마을에 생겨난 수많은 '마음' 가게들처럼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 모두가

각자 다양한 '지은'이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면서

상처와 기쁨과 불행을 함께하는

따스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

바라고자 하는 세상이 그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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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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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나 자신에게 가장 정직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나와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놓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따르느라

혹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대개 본래의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적당히 참고 양보하며

오히려 그게 맞다고 나를 설득하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가'에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건 아닐까.


이 책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대표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깨달은

'자기에게 딱 맞는 흐름을 타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는 에세이이다.


시간, 돈, 신, 지금이라는 네 가지 주제 아래

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갖가지 불안 앞에

자신의 당위성을 의심하는 현대인들에게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맞춰 변화하는 것보다는

'변화하지 않는 것'에 힌트가 있다고 제안한다.


주위 환경이나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떠밀려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요즘,

그렇기에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는 '나와 맞지 않는 것'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일종의 버릇이라 말하며

이런 버릇을 떨쳐내고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역설한다.


가만 보면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만의 주관이 크다.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아기들도 울며 의사 표현을 하고,

좋아하는 것 앞에 환하게 웃거나

하기 싫은 행위 앞에서는 고집을 피우는 등

아직 미숙해 보이지만

그 어떤 어른보다 적극적이다.


반면 어른들은 내키지 않는 제안에

아니라고 거절하지 못하거나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맞지 않는 것을

계속 이어가기도 하니

오히려 '모든 것을 잘 해내려는 노력'이

되려 삶을 실패로, 혹은 행복과 멀어지게 만든다.


바나나는 특유의 영적인 시선을 더해

그가 교류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를 찾는 과정이

나를 '회복'하는 행복의 지름길이라 말한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그런 전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며

그런 설정이 앞으로의 길을

다르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든든한 위로로 '나로 사는 삶'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우주 마사지사, 영감이 발달한 특별한 사람,

독자들이 보낸 질문에 답을 해가며

자신만의 논리로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때로 '이게 무슨 소리야' 싶기도 하지만


울퉁불퉁하고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 삶에도

제각기의 맥락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자는 그의 메시지는


매일을 바쁘게 움직이고 열심히 살지만

무언가 놓친 듯 허전하고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요즘의 현대인들에게

유쾌하고도 엉뚱한 위로로

각자의 어깨에 얹어진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가뿐한 기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방향을 짚어주는 해결을 제시한다.


늘 '이게 맞나' 의심하며 살아가는 매일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거나

성장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나사가 한 개쯤 빠진 인간으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느긋한 자기 고백,


진정한 나를 기억해 내고

초기 설정을 바꿔 유쾌하게 살기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은 너무 진지하게 임하느라

몸에 힘을 빼지 못하고,

그렇기에 매일이 행복하기보다 버거운

지금의 오늘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르게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어떻게 되지 않아.

사실 누구나 그런 말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이든 나를 사는 것이 중요하고,

나에게 정직하며

타인과도 정직하게 소통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길만이 아닌

나를 회복하는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채워진다.


특유의 가벼움으로,

농담 같지만 무게감이 있는 조언과

특별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통해

괴로움이 덜어지거나 슬픔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자기를 산다는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생긴다.


앞으로는 애쓰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에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며

그렇게 인생의 발걸음을 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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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건강 상담소 - 채소·과일식의 모든 것
조승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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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 끼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나고 자랄 때부터 풍족한 먹거리로

오히려 고지혈증, 혈당 등의 건강 문제가

소아 · 청년기부터 나타나는 요즘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큰 화두이다.


SNS의 피드를 보다 보면

애사비라 불리는 사과 발효 식초나

효소 등을 챙겨 먹으면

다이어트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피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당뇨를 앓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24시간 내내 혈당을 측정해 주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한 채

음식을 먹을 때마다 혈당 추이를 보여주며

'이 음식은 좋지 않아요' 알려주는

게시물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식사 순서는 채소 먼저 그다음은 단백질,

탄수화물을 마지막으로 하라는 조언에는

'지켜야 할 게 너무 많구나' 싶어

피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결국에는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하나의 바람에서 시작한 행동이다.

한창 유행하던 애사비를 보며

혹하는 마음에 나 역시 먹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애사비를 찬양하던 사람들은

공구가 끝났는지 이제는 보이지 않고,

바통터치하듯 또 다른 유행이 다가와

다양한 식습관이나 건강 조언들 사이에서

과연 무엇이 맞는 것일까

분별하는 것도 참 어렵기만 하다.


이 책 《완전 건강 상담소》는

관상동맥질환을 앓기 시작한 이후

식이조절을 통해 병을 극복한

한약사 조승우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추천하는 채소·과일식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문답 형태로 기술한

Q&A 가이드북이다.


전작 《나를 살리는 습관, 죽이는 습관》을 통해

채소·과일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가

이 식단에 대해 가진 궁금증이나

오해를 담은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채소·과일식의 실천법은 물론

완전 건강을 꿈꾸는 모두에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는 법

또한 섬세하게 안내한다.


보통 채소·과일식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완전 채식이나 육류를 배제한

나물이나 생야채로만 구성된 단조로운 식단,

건강하지만 맛은 없고 자극적이지 않아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등

굉장히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만 생각한다.


나 역시 채소·과일식을 제안하는 그의 말에

'사람이 어떻게 풀만 먹고 사나?

스님들도 동자승한테는 고기를 먹이는데'하며

물음표를 던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적인 식단 강요가 아닌

자연에 가까운 식단을 통해

우리의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저속 노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채소·과일식의 핵심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총 60가지 질문에 이어지는 그의 답은

식습관과 혈당, 체중과 수면, 마음가짐 등

일상에서 자주 물을 수 있는

건강 고민에 대해 본인이 만난 환자,

혹은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덧붙여

구체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기에

'건강 이론'같은 딱딱한 느낌보다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게

채소·과일식의 장점과 필요성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때로는 자신도 가공식품을 먹고,

완전한 채식을 하지 않으며

고기나 술도 종종 즐긴다고 했다.

완전한 '금욕'의 식단이 아닌

'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실천'만으로도

채소·과일식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며

도전에 대한 두려움의 허들을 낮춰주었고,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식단 구성법,

아침을 여는 음양탕 마시는 법,

껍질째 먹는 채소와 과일의 효능 등

실용적인 조언이 많아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동기부여를 제공하기도 했다.


건강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에 강박을 갖고

혹은 건강수치(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등)에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데


건강은 숫자가 아니라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통해,

하나하나의 숫자에 연연하거나

건강에 대한 염려로 유행에 휩쓸리는

'일회성 건강처방'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세울 것을 강조해

건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약이나 수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몸의 면역력, 치유력의 기본이 되는

식사를 가장 먼저 바로잡음으로써

내 몸이 하는 이야기와 신호에 귀를 기울여

그에 맞는 실천을 이어간다면

건강이 성큼 다가온다는 메시지가

멀게만 느껴지던 '완전 건강'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내 몸의 컨디션이나 건강이 어떤지,

몸이 보내는 신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이 좋다니까, 요즘 유행이니까 하고

휩쓸리듯 다양한 건강법을 따라 하기만 했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이제는 정해진 틀이나 유행이 아닌

스스로 회복해나가는 삶의 주인공으로서,

거창한 변화가 아닌 작은 식사법의 실천으로

차근차근 한 걸음을 내디뎌야겠다는 생각이다.


'완전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펼쳤던 책인데,

건강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개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찍부터 대사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건강하지 않은 식단으로

건강이 무너진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은 젊어 아무 문제 없지만

앞으로도 쭉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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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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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논쟁을 담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부부만의 선택이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장애가 있으면서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한 것 같다'는 댓글이 주를 이렀다.


혹시 유전될지 모르는 장애에 대한 염려,

그리고 아이가 비장애인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과연 장애가 있는 부모가 이 아이를

오롯이 키워낼 수 있을 것인가 때문일 터.


사람은 누구에게나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내 종이 이어질 수 있도록 새끼를 낳는 건

당연한 욕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에 대해

그 기본적인 욕구조차 발휘할 수 없게,

그들의 선택을 가로막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실제 장애를 가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 《헌치백》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은 물론,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회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어

장애인에게도 욕구가 있고,

그들을 연민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과감하게 위악으로 맞서는 발칙한 내용이다.


직접 걷지도 못하고 때로 호흡기에 의지하며

5평 남짓의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샤카.

세상에 혼자 남을 그녀를 위해

장애인 시설 그룹홈을 만들고

막대한 유산을 남긴 부모님 덕분에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고,

성인 소설과 양산형 기사를 써서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건실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다.

비밀 SNS 계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 등

욕구를 감추지 않고 패륜적 망언을 내뱉는

'불온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시설 그룹홈에서 그녀를 보살펴 주는

한 남성 간병인이 그녀에게 말을 건다.

본능적인 욕구와 마음을 내뱉는

비밀 SNS 계정이 그녀의 것임을 알고 물어온 것.

진실을 들킨 듯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도 잠시,

샤카는 많은 돈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고자 한다.


얼핏 비뚤어진 감정이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비장애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그녀에게

출산과 육아는 아니더라도 임신과 중절만큼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위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자유'이자 '권리' 아닐까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게 한다.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식사와 목욕은 물론

평범한 연애도 성관계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강요되어 온 '금욕의 삶'을 꼬집으며

그녀를 악인으로, 비뚤어진 패륜처럼 보이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을 내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통해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남성 간병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샤카의 모습은

소설 속 허구의 설정이지만,

그 행위를 욕망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뿌리인

휘어지고 뒤틀린, 장애를 가진 몸은

작가가 실제로 매일을 살아가는 실존이자 '현실'이다.


그렇기에 '살아가기 위해' 매일 파괴되는 몸과 정신,

거기에서 오는 치열한 삶에 대한 욕구와

타락에 대한 열망은 우리가 기존까지 오해하고 있던

혹은 잘 몰랐던 장애인의 '인간답기 위한 노력'은

소설을 넘어 장애인 인권까지 생각하게 하는

진실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자칫 적나라한 성적 표현과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사고를 뒤집는 전개가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게도 했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와 비장애인의 고정관념과 시선을 꼬집고

중증 장애인의 복잡한 내면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에 장애인을 다룬 문학작품과는 다른

적극적인 '生의 주인'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장애인을 묘사하는 일이 드물고

언제나 전형적이고 고정적인 역할만 맡기는

기존의 문학작품,

지성인을 자처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없는 문학계,

다섯 가지 건강성을 전제로 하여

중증 장애인은 읽기 어려운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출판계까지

비장애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꼬집은 이 '종이책'은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진 장애인을 넘어

비장애인들에게도

울림 있는 메시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이야기 속

지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멈춰있지 않고

치열하게 생을 살아내는 샤카를 통해

우리가 믿는 '정상성'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많은 '샤카'들을 위해

모두가 한 번쯤 들여다보고

귀 기울였으면 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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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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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내와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는

평범한 40대 중반의 남자 조지 볼링.

작은 마을의 곡물·종자 상의 아들로 태어나,

1차 대전에 참전해 하급 장교로 전역,

운 좋게 들어간 보험회사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겨우 먹고살 만한 하류 중산층의 삶은

큰 사건 없지만 매일이 무미건조하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

아내는 매일 돈, 돈 노래를 하며 그를 옥죄고

쟁쟁거리는 아이들은 그를 지치게 한다.

부모로서 따스한 사랑, 희생을 감수하는 다짐은

아이들이 잠든 찰나의 순간뿐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공돈이 생긴다.

동료의 권유로 우연히 경마에 돈을 넣었고

아내가 모르는 돈 17 파운드가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걸 어디에 쓸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그는,

문득 20여 년 전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평화로운 풍경, 낚시를 즐기던 유년 시절,

첫사랑과의 추억이 가득한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빠듯하게 먹고사는 매일 속 반복되는 걱정거리,

그리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렇지만 반드시 찾아올 거라 확신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고요함'을 만끽하고 싶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무겁게 얹어진 가장의 중압감을

잠시나마 떨쳐버리고 오로지 나만의 공간,

어린 시절 나만이 알고 있던

비밀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 보면

이 흔들리는 마음과 불안감은 녹아내리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현타'의 순간에서 꿈꾸는 '현실도피',

일명 '힐링'이라 할 수 있겠다.


《숨 쉬러 나간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평온한 고향으로의 발걸음은

숨 막히는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나 꿈꾸는

일주일간의 작은 일탈을 다룬 이야기이다.


아내에게 출장을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비상금을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간 고향은 예전과 같이

그를 설레고 따스하게 맞아줄까?


그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대리만족'을 기대하던 마음을 무너뜨리듯

대규모 주택단지, 공업 타운으로 변해

삭막해진 풍경은 물론

푹 퍼져 '할머니' 같은 모습이 된 첫사랑

(심지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곳만큼은 남아있을 거란 기대로 찾은

그만의 비밀 연못도 물 한 방울 없이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그를 실망시킨다.


1차 대전을 겪고,

시대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가치가

와르르 무너지던 당시의 시대상,

그리고 다가올 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느끼는

'소외와 불안'을 다룬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일탈이 성공했는가,

혹은 그가 일탈을 통해

무엇을 만끽했는가를 떠나


시대는 다르지만 장기 불황과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는 요즘에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큰 공감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젊고 야망이 가득했으며,

당장은 어떨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로

반짝반짝 빛났던 과거의 영광과 달리

한가득 배가 나오고 틀니를 낀

중년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그의 외모처럼

씁쓸하고 잿빛으로만 변했기에

마치 나의 '일탈'이 실패한 양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호시절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낚시로 상징되는 그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웠으며

그의 곁을 지켜주는 부모의 노동 역시

힘겹고 지치기보다는 그가 흘리는 땀방울로

건강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물론

그들의 '계급'과 '성격'을 표현한 문장은

'시간의 흐름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변해버린 추억의 장소에 대한

실망감이랄까 안타까움은 물론

저물어 가는 한 시대와 세계,

그리고 이를 잠식하고 쉽게 무너뜨리는

현대의 삭막함은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운명과 숙명을,


그렇기에 가속화되는 경쟁과 불안감,

각자의 욕심을 위해 유발되는 전쟁이라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은

책이 쓰일 당시 다가오지 않았던

2차 대전과 파시즘 지배를

정확하게 예견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제대로 통찰하고 바라본

조지 오웰의 뛰어난 안목과 시선을

느낄 수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임은 알고 있지만,

전쟁이 일어난 이후가 문제라며

먹고살기 바쁜 내가 왜

이런 것을 걱정하고 고민하는가가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지는 조지의 고민은


다가올 두려움의 정체와

불안함의 원인이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단지 1차 대전을 겪고 2차 대전을 맞이할

그때의 그들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본다는 생각과는

작별을 고한 그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

어떤 기대로, 어떻게 숨을 쉬며 살 것인가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가장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시대와 문명의 위기를 짚었을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문장에서

어쩌면 더 꽉 막혀버린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것을 꿈꿔야 할까 모르겠다.


하나의 저무는 세계,

그 격동의 지점을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세상에 숨 쉴 곳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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