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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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논쟁을 담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부부만의 선택이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장애가 있으면서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한 것 같다'는 댓글이 주를 이렀다.


혹시 유전될지 모르는 장애에 대한 염려,

그리고 아이가 비장애인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과연 장애가 있는 부모가 이 아이를

오롯이 키워낼 수 있을 것인가 때문일 터.


사람은 누구에게나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내 종이 이어질 수 있도록 새끼를 낳는 건

당연한 욕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에 대해

그 기본적인 욕구조차 발휘할 수 없게,

그들의 선택을 가로막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실제 장애를 가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 《헌치백》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은 물론,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회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어

장애인에게도 욕구가 있고,

그들을 연민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과감하게 위악으로 맞서는 발칙한 내용이다.


직접 걷지도 못하고 때로 호흡기에 의지하며

5평 남짓의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샤카.

세상에 혼자 남을 그녀를 위해

장애인 시설 그룹홈을 만들고

막대한 유산을 남긴 부모님 덕분에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고,

성인 소설과 양산형 기사를 써서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건실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다.

비밀 SNS 계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 등

욕구를 감추지 않고 패륜적 망언을 내뱉는

'불온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시설 그룹홈에서 그녀를 보살펴 주는

한 남성 간병인이 그녀에게 말을 건다.

본능적인 욕구와 마음을 내뱉는

비밀 SNS 계정이 그녀의 것임을 알고 물어온 것.

진실을 들킨 듯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도 잠시,

샤카는 많은 돈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고자 한다.


얼핏 비뚤어진 감정이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비장애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그녀에게

출산과 육아는 아니더라도 임신과 중절만큼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위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자유'이자 '권리' 아닐까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게 한다.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식사와 목욕은 물론

평범한 연애도 성관계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강요되어 온 '금욕의 삶'을 꼬집으며

그녀를 악인으로, 비뚤어진 패륜처럼 보이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을 내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통해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남성 간병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샤카의 모습은

소설 속 허구의 설정이지만,

그 행위를 욕망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뿌리인

휘어지고 뒤틀린, 장애를 가진 몸은

작가가 실제로 매일을 살아가는 실존이자 '현실'이다.


그렇기에 '살아가기 위해' 매일 파괴되는 몸과 정신,

거기에서 오는 치열한 삶에 대한 욕구와

타락에 대한 열망은 우리가 기존까지 오해하고 있던

혹은 잘 몰랐던 장애인의 '인간답기 위한 노력'은

소설을 넘어 장애인 인권까지 생각하게 하는

진실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자칫 적나라한 성적 표현과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사고를 뒤집는 전개가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게도 했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와 비장애인의 고정관념과 시선을 꼬집고

중증 장애인의 복잡한 내면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에 장애인을 다룬 문학작품과는 다른

적극적인 '生의 주인'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장애인을 묘사하는 일이 드물고

언제나 전형적이고 고정적인 역할만 맡기는

기존의 문학작품,

지성인을 자처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없는 문학계,

다섯 가지 건강성을 전제로 하여

중증 장애인은 읽기 어려운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출판계까지

비장애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꼬집은 이 '종이책'은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진 장애인을 넘어

비장애인들에게도

울림 있는 메시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이야기 속

지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멈춰있지 않고

치열하게 생을 살아내는 샤카를 통해

우리가 믿는 '정상성'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많은 '샤카'들을 위해

모두가 한 번쯤 들여다보고

귀 기울였으면 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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