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 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31
하일식 지음, 박철민 그림, 구선희 감수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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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위인전으로 정약용의 일생을 출생부터 성장, 사망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게 기록한 것이다. 영, 정조를 거쳐 순조에 이르는 시대를 살면서 성리학이 학문적 바탕이었던 당시, 실학과 서학을 연구하면서 정치가로서나 관리로서 또 학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펼치던 정약용은 당쟁과 맞물려 당시 노론 집단에게 엄청난 시기와 질투를 받고 나중엔 귀양살이까지 하게 되는 슬픈 운명을 맞는다.

그러나 정작 정약용은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저어하지 않고 학문을 열심히 연구해서 목민심서나 흠흠신서 같은 대작을 저술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약용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정약용이 당시의 자기 배부르기에 급했던 관리들과 달리 생활에 이용되는 실학을 바탕으로 백성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것이다.

곡산 부사로 재직 시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고 관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달았고 요즘 우리 나라 도둑 정치인들이 동시에 떠올라 씁쓸했다. 한 번 읽어보시길... 특히 6학년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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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냥을 떠나자
이지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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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는 조금씩조금씩 야금야금 읽기에 참 적합한 책이다. 41편의 다양한 그림책에 대해 저자의 소개와 감상을 읽으면서, 읽고 싶어지는 그림책이 많아지는 책,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림책을 골라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먼저 딴지를 걸고 시작해야겠다. 책 제목에 대해서다. '그림책 사냥?', 사냥의 사전적 의미는 '(총이나 그물 따위로) 야생의 짐승을 잡는 일이라고 동아 새국어사전 제4판에 나와 있다. 단어 의미의 영역이 바뀔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냥이란 단어에서는 '폭력'의 냄새가 너무 난다.

너무 주관적인 나의 생각인가? 아이들에게 꿈, 희망, 때로는 슬픔, 감동을 주는 그림책을 꼭 사냥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사냥은 무섭다. 왜 사냥이란 표현을 썼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그림책인데...... 좀더 멋진 표현은 없었을까? 내 것이 아닌 것을 폭력을 동반하여 강제로 내 것으로 만드는 느낌은 싫다.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이 책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는 그 내용에 있어 꽤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 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그림책에 대해서 폭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저자가 번역하여 출판한 책도 여러 권이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 나라 그림책 시장에 주는 저자의 공헌 또한 크다.

인적으로 외국 생활 경험이 많은 저자가 부러웠다. 외국 생활이 많다고 해서 그림책을 보는 혜안을 누구나 갖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음에 외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도 서점을 찾아 그림책 코너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번쩍 빛이 나는 책이 보일런지도 모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그림책에 대해 전문적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주관적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일상 생활과 관련지어 저술해서 그런가? 서평은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서평을 쓰는 게 참 겁난다. 어쨌든 나는 주관적인 글이라 느껴도 책으로 출판 되었고 또 저자의 생각으로 소개한 외국의 그림책이 많은 걸 보면 저자의 주관은 객관에 가까운가 보다. 아이구 부러워라.

또한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의미기 그림책의 전문 지식을 주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이루는 데 한 몫 하고 싶어서라니 더 할 말도 없다. 왜냐면 그런 저자의 의도엔 너무 적합한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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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월의 친구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0
미샤 담얀 지음, 이명희 옮김, 두산 칼라이 그림 / 마루벌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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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월의 친구들>(미샤 담안 저, 마루벌)이란 제목만 보고 짐작한 것은 책에 십이 월, 그러니까 열두 달이 다 등장하는 책인 줄 알았다. 읽어 보니 그렇지 않았고 십이 월이 철수, 순이 같은 이름이었고 친구들은 삼 월, 유 월, 시 월 이렇게 세 명(?)만 등장했다.

발상이 참 재밌는 책이다. 각각의 달을 의인화시켜 줄거리를 만들고, 또 그것을 그림으로 상징화했으니 말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각 달을 사람으로 상상해서 그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두산칼라이처럼 모자로 그 달을 나타냈을까?

<십이 월의 친구들>(미샤 담안 저, 마루벌)은 글 자체는 어렵고 긴 내용이 아닌데도 번역의 문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읽기가 참 지루하다. 또한 일정한 크기의 활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글의 내용을 받쳐 주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림이 그 동안 우리가 익히 봐왔던 그림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에 그나마 이 책이 빛을 보는 것 같다. 내용에 의해 그림이 탄생했겠지만 이 책은 그림이 해내는 역할이 참 큰 책이다.

십이 월, 삼 월, 유 월, 시 월을 곰곰이 뜯어보게 된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그렸을까? 가장 대비되는 차이는 모자다. 각 달의 특성을 살려 모자가 다르다. 그 중 십이 월의 모자가 참 특이하다. 새 집을 얹고 다니다니...... 재밌다. 글에서 모자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은 딱 두 번 있다. 꽃으로 엮은 모자를 쓴 유 월과 사과 모양의 모자를 쓴 시 월을 만나는 장면에서다. 왜 삼 월과 십이 월의 모자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을까?

안데르센 상을 받은 <십이 월의 친구들>(미샤 담안 저, 마루벌)의 글과 그림은 아이들에게 계절적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동시에 꿈과 희망, 우정을 느끼게 해 주고, 달을 의인화시키는 것을 통해 많은 상상력을 키워 주는 데 그 의미가 큰 책인 듯 하다. 글을 읽으면서 그림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등장 인물과 소재를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쏠쏠한 재미다. 그런 의미에서 글과 그림의 어울림이 순조롭게 된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내용에서는 계절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왜 등장한 각 달을 다 소년으로 표현했을까? 소녀들이 소외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자인 내가 갖는 지나친 편견일까? 그림책을 보면서 별생각을 다 하는 건 아닌가 싶다. 한 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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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원 여우오줌 어린이 2
클라우스 코르돈 지음, 김현주 그림, 정인수 옮김 / 여우오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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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원'은 가난한 안드레아스라는 남자 아이가 소원을 빌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안드레아스가 소원을 빌기까지의 과정, 두 번째는 마술처럼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 세 번째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까지의 과정이다.

행복이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이 궁리 저 궁리하는 장면부터 소원을 빌기까지, 그리고 소원을 이루어서 끝인가 싶다가 세 번째 소원의 열쇠를 찾기까지가 너무나 따뜻하고 정감있게 펼쳐지는 이야기다. 안드레아스와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고, 걱정하고......그리고 함께 행복을 찾아 행복해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선물인 책이다.

나는 안드레아스가 '행복'이라고 소원을 쓸 줄 몰랐다. 어린 아이니까 먹을 것, 돈 내지 금 그런 구체적인 무언가를 쓸 것이라 생각했다. 철학자들이,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 '행복'이라고 했다. 안드레아스를 보면 내 생각과 달리 어린 아이는 폼내지 않아도 철학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보다.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한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 나눌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세 번째 소원'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나는 행복한가?' 또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 준다. 또한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안드레아스가 해마다 생기는 돈 주머니로 점점 부자가 되어갈 때, 즉 원래 부자였던 옌스처럼 되어갈 때도 안드레아스는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두 가정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아마도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루이제란 여자 아이의 통찰력을 높이 사고 싶다. 다 작가의 당부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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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양장) 이미륵 문학 선집 2
이미륵 지음, 와이 그림, 정규화 옮김 / 계수나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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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민씨 부인과 수심이는 과도기적인 시대에서 어쩌면 흔히 있음직한 인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과도기적인 시대뿐만 아니라 몇 천년 전의 벽화에서 '요즘 애들 버릇 없다'는 낙서가 발견되어 시대 불문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처럼 어머니와 자식의 갈등도 시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자식에게는 퍼주는 사랑만 하려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사랑에 버거워하고 힘들어하고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신의 사랑이 외면 당해서 힘들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 하니 힘들고.... 작가 이미륵은 시대를 꿰뚫는 부모 자식간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텐데 너무 엉뚱한 생각을 한 건가? 수심이가 시베리아로 떠났을 때 민씨 부인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사랑은 내리사랑인지라 절대 쌍방 사이에서는 갚을 수도, 돌려 받을 수도 없는 사랑임을 한 번 더 확인하면서 내 부모에게 갚지 못할 사랑을 내 자식에게 팍팍 퍼주어야겠다.

어쨌든 수심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듯하고 소외 당한 사람들과 심정적으로 같이 하고 일제에 핍박받는 민초들에 대해 아파하는 모습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아픔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그저 혼자 애끓다가 결국엔 시베리아로 도피하는 결말로 끝나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별로 안 들었다. 그 도피가 하나의 결단이었을까? 더구나 수심이는 든든한 어머니 덕에 나중에 돌아와도 지주로서 살만한 기반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수심이가 시베리아로 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 지가 실망감을 만족감으로 전환시켜 줄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 삼각자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벌을 받고, 범인이 발견되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벌을 서고...

훔친 아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그렇다면 수심이는 독립 운동가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만기라는 친구가 친형이 죽을 고비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것을 슬퍼하면서 수심이는 아마도 같은 상황에서라면 함께 죽었을 친구라며 형보다도 더 좋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면 작가는 수심이의 강인함을 줄간에 숨겨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작가 이미륵이 일제 시대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일로 유학해서 우리 문학과 한국을 알리는 큰 일을 이룬 것처럼 즉시 보이지 않는 강인함을 수심이라는 인물에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압록강은 흐른다'에 이어 '어머니'까지 이미륵씨의 작품은 우리 작가의 글이지만 독일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라서 그런지 모국어로 쓰여지는 작품과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언어로 표현하긴 참 어렵지만 우리 말로 쓰여진 작품은 얼음을 피부에 대어 보고 차다고 느끼는 것 같다면 번역 문학은 누가 '얼음을 피부에 대면 차갑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내게는 이미륵씨의 명성에 비해 그 작품에 대한 느낌은 감동적이라기보다 감동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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