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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양장) ㅣ 이미륵 문학 선집 2
이미륵 지음, 와이 그림, 정규화 옮김 / 계수나무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민씨 부인과 수심이는 과도기적인 시대에서 어쩌면 흔히 있음직한 인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과도기적인 시대뿐만 아니라 몇 천년 전의 벽화에서 '요즘 애들 버릇 없다'는 낙서가 발견되어 시대 불문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처럼 어머니와 자식의 갈등도 시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자식에게는 퍼주는 사랑만 하려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사랑에 버거워하고 힘들어하고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신의 사랑이 외면 당해서 힘들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 하니 힘들고.... 작가 이미륵은 시대를 꿰뚫는 부모 자식간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텐데 너무 엉뚱한 생각을 한 건가? 수심이가 시베리아로 떠났을 때 민씨 부인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사랑은 내리사랑인지라 절대 쌍방 사이에서는 갚을 수도, 돌려 받을 수도 없는 사랑임을 한 번 더 확인하면서 내 부모에게 갚지 못할 사랑을 내 자식에게 팍팍 퍼주어야겠다.
어쨌든 수심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듯하고 소외 당한 사람들과 심정적으로 같이 하고 일제에 핍박받는 민초들에 대해 아파하는 모습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아픔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그저 혼자 애끓다가 결국엔 시베리아로 도피하는 결말로 끝나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별로 안 들었다. 그 도피가 하나의 결단이었을까? 더구나 수심이는 든든한 어머니 덕에 나중에 돌아와도 지주로서 살만한 기반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수심이가 시베리아로 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 지가 실망감을 만족감으로 전환시켜 줄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 삼각자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벌을 받고, 범인이 발견되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벌을 서고...
훔친 아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그렇다면 수심이는 독립 운동가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만기라는 친구가 친형이 죽을 고비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것을 슬퍼하면서 수심이는 아마도 같은 상황에서라면 함께 죽었을 친구라며 형보다도 더 좋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면 작가는 수심이의 강인함을 줄간에 숨겨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작가 이미륵이 일제 시대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일로 유학해서 우리 문학과 한국을 알리는 큰 일을 이룬 것처럼 즉시 보이지 않는 강인함을 수심이라는 인물에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압록강은 흐른다'에 이어 '어머니'까지 이미륵씨의 작품은 우리 작가의 글이지만 독일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라서 그런지 모국어로 쓰여지는 작품과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언어로 표현하긴 참 어렵지만 우리 말로 쓰여진 작품은 얼음을 피부에 대어 보고 차다고 느끼는 것 같다면 번역 문학은 누가 '얼음을 피부에 대면 차갑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내게는 이미륵씨의 명성에 비해 그 작품에 대한 느낌은 감동적이라기보다 감동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