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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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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 촘촘함은 조금 아쉬웠지만 독자들에게 앎을 실천하는 삶과, 차별을 인식하고 생명의 존엄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글자를 알고자 했던 푸실이의 지적 호기심이 탐구심으로 이어져 알게 된 글자의 힘이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글자의 힘이 삶의 희망이 되려면 실천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 것도 보여 준다. 군자가 아닌 대감마님의 이기심은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부조리한 줄 알면서도 구성원 대다수가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개탄하며 받아들일 때 현실의 담을 넘는 사람이 생기면 부조리한 현실이 아주 조금씩 바뀌어 나간다. 그래서 만들어진 현실이 현재다. 여전히 부조리하다고 느끼겠지만 어제는 더 부조리했다.

 

유모라는 말에서 출발했다는 작가의 의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차별의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작품으로 태어났다는 점에 호감이 생긴다. 담을 넘어야 하는 현실이 생기면 용기를 내어 담을 넘을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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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독깨비 (책콩 어린이) 23
마이클 모퍼고 지음, 피터 베일리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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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지인이 권해서 함께 읽게 된 책이다.

 

표지와 중반을 읽으면서도 나의 짧은 상상력으로 원자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삽화마저도.....

그리고 중반 이후로 가면서 끔찍한(?)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를 다루지만 여전히 서정정이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사람과 자연 사이의 갈등 등 여러 가지 갈등을 어쩌면 이렇게 조곤조곤 조용히 풀어낼 수 있는지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의 역량도 너무 놀라웠다. 번역본을 필사하고픈 마음이 든 것은 처음이니까 말이다.

 

작품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다 주변에 있을 법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서로를 위해 주는 모습,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서로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습지였던 곳에 건설한, 몇 백년 동안 콘크리트 덩어리로 남아 있어야 할 폐기된 발전소는 흉물 그 자체로 길게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의 상징물 같아 속상했다. 더 속상한 것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정지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경쟁적으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접하고서도, 원자력의 위험을 외면한 채 당장의 전기 생산을 위해서 계속 국가적 시책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을까? 하긴, 다른 나라도 어떤 면에서는 마찬가지겠지. 하루 빨리 건강한 정부, 철학을 가진 정부가 세워져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결정해서 시행하는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다.

 

끝으로 공청회에서 원자력발전소를 막으려는 페티그루 아주머니의 강변을 인용하며 끝 맺고자 한다.

 

"그래도 저는 이 발전소를 짓고자 하는 분들이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고, 최대한 발전소를 안전하게 만들리라 굳게 믿습니다. 발전소를 가동하는 분들도 조심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난 저의 남편, 아서도 조심을 했습니다. 제 남편은 우리 집에 간단한 발전기를 설치했습니다. 그이는 그것이 안전하다고 여겼지만 그것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신사 분들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수는 쉽게 저질러집니다.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납니다.

-------------------------------중              략----------------------------------

저들이 이 원전을 말끔히 철거해서 습지가 다시 지금과 똑같은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는 절대 기대하지 마세요. 제가 책에서 읽은 바로는 이처럼 방사선으로 오염된 건물은 절대, 결단코 철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독한 성분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못해도 앞으로 수백 년은 발전소를 콘크리트로 뒤덮어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갑자기 4대강 공사가 생각나 슬프다. 녹차 라떼라는 미명으로 4대강이 앓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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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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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포장을 뜯고 책을 처음 대했을 때 일단 상큼한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교육 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될 지 막막한 교육 문제를 다룬 책 치고는 표지가 너무 아름답고 밝았다. 그래서 좋았다.  

표지의 빛깔은 싱싱한, 싱싱해야 할 우리 아이들을 나타냈고, 나태주 시에서 빌려 온 제목은 하나하나 소중한, 소중해야 할 우리 아이들을 온몸으로 나타냈다.

우리 아이들의 색깔을 찾아 주고픈 작가의 강한 바램이 드러나는 표지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내내 시종일관 작가의 목소리가 곁에서 쟁쟁하게 들리는 듯 했다.

20여년 전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어투 자체가 작가 그 자체였던 인상깊었던 강연이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목소리로, 그 어투로 내 곁에서 계속 말씀을 들려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지상에서 보았던 심각했던,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팩트를 소설에 다큐처럼 넣어서 구구절절하게 느껴질만큼 상세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정말 답답하셨구나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공감이 되었다.

 

교육은 교육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의 교육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으니 교육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훈련인가? 한창 감수성이 피어날 시기에 대학이란 목표를 가지고 12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하는 공부, 강제하는 교육, 정말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노력에 비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외면 당하고, 패배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참 속상한 교육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을 배워도, 과학을 배워도, 수학을 배워도 시험 문제로 보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

 

대체 이 나라 위정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을 논할 때 정치를 논하지 않을 수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이중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선도 참 불편하다. 교육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면 교육의 문제를 논할 때 당연히 정치를 논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요즘 개콘에서 유행하는 말로 "정신 바짝 차려서" 교육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여야가 한마음으로 대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국민을 개돼지라고 말하는 위정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들이 그들의 할 일에 정신 바짝 차려 주길 바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선생님께서는 작품에서 대안교육과 혁신교육을 대안으로 분명하게 제시하신 듯 하다. 3년 취재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될까? 현장에 있는 나로서는 솔직히 대안교육은 대안이 아니고, 혁신교육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태동하게 되었고, 일부라도 내놓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결과물을 볼 때 작가가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을 지지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진짜 교육을 하기 위해 대동단결해서 한 마음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성적 따위에 목매어 진짜 목을 매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 보내면서 느끼신 참담함을, 손주의 사교육을 보면서도 느끼셨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사명감을 갖고 이 책을 쓰신 것 같다. 74세 어르신이 따끔한 일침을 놓고 계신 것이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딱! 현재 우리 사회에, 부모들에게, 선생들에게, 위정자들에게  필요한 정묘일침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제동씨가 진행하는 선생님의 "풀꽃도 꽃이다" 출판 관련 대담 방송을 보았는데 선생님께서 국회에 가셔서 국회의원들에게 교육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오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국회 교육위원장이 인사말만 하고 바쁘다고 나가 버려서, 우리나라는 무책임한 장이 문제라고 한방 먹이셨다고 대소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책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을 도모하는 선생님이 참 멋졌다. 이런 책을 쓰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 이미 커다란 실천이지만 말이다. 시대의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 나쁜 일이 참 많이 일어나는데, 나쁜 일만 보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는 것만도 용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빠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어 주는 것은 조정래 선생님 같은 분을 비롯한 자기 삶속에서 작게든 크게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

 

요즘에 청소년 소설, 어린이 동화를 자주 읽다 보니 선생님의 문체가 조금은 올드하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정래 작가님의 긴 호흡으로 쭈욱 밀어 붙이는 묵직한 책 두 권이 그 어떤 청소년 소설보다 빨리 읽혔다.

 

서문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퀴즈를 냈다. 74세 할아버지께서 강교민이란 주인공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에게 알아 내라고 하셨다. 사모님께서 작위적인 이름이라고 지적하셨지만 작가는 말 그대로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싶은 바람에 고집하신 이름이라고 한다.

 

강교민----강력한 교육 민주화..... 솔직히 나는 스스로 찾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손석희씨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알게 되었다.  "교육이 강력하게 민주화" 되면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많이 행복해질 것 같다.  교육이 민주화 된다는 것은 다양성이 인정되고 저마다의 자질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게 되는 것일 거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을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할 것이고, 아이들이 예쁜 줄, 사랑스러운 줄 알게 될 것이다.

 

강력한 교육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바램과 함께 변화를 위한, 민주화를 위한 꾸준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꾸준한 실천이 지칠 때쯤, 최규석 작가의 100℃라는 만화에서 사람도 반드시 100℃에서 끓으니 지금이 99℃라고 믿고 멈추지 말고 버티라는 구절을 생각하며.... 버텨야겠다.

 

교육....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중심 잡기 참 힘들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초등교육을 하고 있기에 입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력의 망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대체 학력이란 게 뭔가?

그러나 앞으로는 흔들릴 때마다, 중심이 안 잡힐 때마다  "풀꽃도 꽃이다"를  생각하며, 조정래 선생님을 생각하며 중심 잡기에 노력할 것이다. 함께 읽고, 깨달음을 실천하는 든든한 벗들과 함께 말이다.

 

책은 참 좋다. 그리고 그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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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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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은

작가가 나보다도 4년이나 어렸던 것 때문이었다.

4년이나 더 산 나도

작품의 배경이 된 87년 민주 항쟁에 대해 충분히 알고, 이해하지 못 하는데

4년이나 어린 작가가 잘 표현해 냈을까? 하는 의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읽고 나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생긴 것 같다.

 

무엇보다 그의 솔직한 작품 후기에서,

그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품을 거절하려고 했다는 것에 작가의 고민과 작가로서의 책임 의식이 느껴지며 역설적으로 신뢰가 생겼다.  아니 신뢰는 작품을 보는 내내 이미 생겼고, 후기를 읽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던 것 같다.

두려웠지만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었기에 하기로 했다는 것에 어느 교육자보다 더한 어른으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졌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가 작품을 한 이유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이라면

정말 참, 좋은 작품을 참, 잘 쓴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무지한 어른들까지 깨어날 수 있게 해 주어 참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짧은 만화 1권으로

87년 민주 항쟁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알게 해 주었고

숭고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희생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거창한 말들과 그림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어서 더 따뜻했고

부분 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는 참 가혹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다수의 사람들이 참 힘겹게 이루어낸 민주주의 국가인데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이 참 쉽게 민주주의를 허물고 있는 것 같다.

 

대책없이 꼬여 있고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 문제를 접하면서

화나고 절망하고 속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질 것 같은 싸움이 이기는 싸움이 되려면

작품 속 어느 어르신이 말했듯이

 

물이 100℃에 반드시 끓는 것처럼(실제로 과학에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만서도 언젠가는 끓는 순간이 있을 것이기에)

지금이 99℃라고 생각하며 계속 싸워야 가능한 것 같다.

 

거창한 싸움을 하면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항상 지금이 99℃라고 주문을 외우며 살 것이다.

 

그럼 화가 덜 날 것 같다.

 

참 기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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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상상놀이터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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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 받을 부모들"이라는 글귀는 핵폭발 뒤 남겨진 상처받고 찢긴, 갈 곳 없는 고아들이

부모들을 원망하면서 벽에다 숯으로 커다랗게 쓴 글귀다.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이 그려질 지 짐작은 되는 책이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짐작 그 이상의 충격을 받는 책이었다.

 

핵무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이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왔고,

만약 내가 작품 속에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에 대한 감정 이입이 저절로  되었다.

 

수많은 처참함을 대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예의를 지키는 어린 주인공을 보면서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부모를 잃고 남겨진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이 벽에 쓴

"천벌 받을 부모들"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난 지금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가?

"천벌 받을 부모들"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되었다.

 

핵폭발이란 극단적인 상황... 무엇이 온전하고 무엇이 파괴되었는지도 모르는,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전부인 상황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오기 전에, 후세에게 "천벌 받을 부모들"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어른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  기사를 보면 타인에 대한 범죄는 물론이요, 부부간에, 부자간에,모자간에, 이웃 간에 패륜이라고 하는 범죄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이 평범하지 않게 극단적으로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평범함을 파괴하는 것은 개인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경쟁 중심, 가진 자 중심의 사회 변화가 무수한 약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그 가진 자들도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수많은 사회 문제를 남의 것인양 보고 있는 내가  "천벌 받을 부모들"의 한 사람인 것만 같다. 뭔가 정의를 위해서 작은 무언가라도 실천해야 하는데 말이다. 잠재되어 있는 핵폭발이 언제 내게, 우리에게 올 지 모르는데 말이다.

 

어제, 오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다. 이를 대하는 언론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이들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부분만 대서특필한다. 우리 모두 사회 구성원인데 기사의 내용을 보면 그들은 사회 구성원이기 보다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로 호도된다. 그들이 왜 파업할 수 밖에 없는지, 사회 구성원인 그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시스템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겐 정규직과 비교했을 떄, 열악하기만 한 보수 체계가 핵 폭발과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 아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핵 폭발이 여기 저기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난 핵폭발을 멈추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나중에 "천벌받을 부모들"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시종일관 책을 읽으며 마음을 졸이고

현재 우리 사회와 견주고,

핵폭발 뒤 자기 살던 곳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엄마를 쫒으면서

엄마의 잘못 된 선택에 대해 나무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질문하고

살아있는 자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보면서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의 비참한 시작과 최후를 보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아도 보이는 현실에 대해 피할 길은 없는 것 같았다.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최후의 그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아버지와 세운 학교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한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 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쉐벤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이니까...

 

우린 최후가 아니기에 위의 것들을 실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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