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지난 주말에 읽은 책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섯 가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시간 순 전개인지라, 따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만, 앞 이야기와 캐릭터 외에는 그리 연결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놈>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에서부터 시작한 소설은 결국 가족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성장 소설이라고들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장소설보다는 괴기소설, 환상소설 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이야기인데요.

첫 번째 이야기, "다다미의 형"이 가장 좋습니다. 이대로 <놈>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면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이야기가 되었을 거 같은데, 좀 아쉽네요.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들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들은 상상의 여지만 남겨두고 분명히 밝혀주지 않습니다. <놈>이 어떻게 됐는지, 왜 주인공이 갱생원에 갔는지, 재의 도시에서 그들은 죽은 것인지, 유키코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야기가 이야기로 넘어가는 공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그런 공백이 잘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정체불명의 <놈>, 육지어, 피를 빨아먹으며 먹이를 거미처럼 동여매어 보관하는 정체불명의 생물들, 인간의 식물화 등 일상에서 벗어난 소재들이 나오는데, 그보다는 이끌어 가는 방식이 더 환상소설 같습니다. 잘 기억 나지 않는 이야기를 더듬더듬 전해주다가 "글쎄…." 하면서 끝을 맺은 다음,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이죠.

그 암울함이 라이트 노벨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 읽어볼 만한 소설이었습니다.


책 제본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젠 페이지 얼마 안 되는데 두꺼운 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불평을 늘어놓을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표지 깔끔하고 책 줄이 있는 것 등은 마음에 들었는데, 겉에 감싸고 있는 표지가 표지만 감싸는 게 아니라 책 자체를 둘러 싸버려서,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결국, 읽는 동안은 벗겨두었다가 다 읽고 다시 감싸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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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부메의 여름'에 뒤를 잇는 교고쿠도 시리즈, 망량의 상자입니다.
우부메 때와 마찬가지로 앞 부분에서는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며, 형편에 어려운 사립학교를 다니는 소녀는 유일한 친구 가나코와 밤에 여행을 떠납니다.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나왔던 형사 기바는 퇴근하는 길에 한 소녀-가나코가 전철에 치여 전철이 멈추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을 만나고 그 때문에 첫사랑이기도 한 영화배우이자 가나코의 언니인이기도 한 미나미 기누코를 만납니다.
'나' 세키구치는 단행본을 내자는 출판사의 의뢰를 받는 자리에서 신진 환상소설가 구보를 만납니다.
구보는 상자에 집착하는 내용의 상자 속의 소녀라는 소설을 씁니다.
삼류잡지기자 도리구치는 근래 벌어지는 연쇄 토막살인사건 취재를 위해 세키구치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들은 사건 현장으로 갑니다. 그리고 돌아오다 길을 잘못 들어 상자 같은 건물을 만나고 그 앞에서 기바의 도움으로 벗어나게 되죠. 발설하지 말라는 약속과 함께.
토막살인사건의 단서가 잡히지 않자 도리구치는 그 전에 조사하려 했던 상자-온바고 님을 숭배하는 종교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첫 번째 토막살인 사건, 연쇄 토막살인 사건, 가나코 살인 미수 사건, 가나코 유괴 미수 사건, 가나코 유괴 사건 등의 여러 사건들이 시간 순, 인과 관계에 상관없이 펼쳐지고,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해, 자신이 보는 시점만큼의 사건들만을 겪습니다. 그 날실, 씨실을 묶어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여전히 교고쿠도입니다.

읽어나가는 순간에는 범인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교고쿠도가 범인이 누구다라고 말해주기 전부터 그 범인은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그 사건이 왜, 무슨 순서로,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가 더 궁금하죠. 그리고 결국 나타난 그림은 예상보다 더 음침합니다.


여전히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읽기 괴롭고, 동의할 수 없는 면도 많지만, 그럼에도 대단하게 느껴지죠. 이 작가의 책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하기 위해서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면에서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작가가 하는 말은 수다보다는 설교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요괴를 빌어, 인간의 이야기를 합니다.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우부메는 나오지 않았다시피 이 책에서도 망량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망량이란, 요괴가 아니라, 어느 순간 유혹받는 선 너머의 무언가입니다. 평범하게 살 수도 있던 남자가 토막살인을 저지르고, 평범하게 살아온 남자가 사랑하는 소녀의 육체의 일부를 들고 도망가게 하는, 가장 친한 친구의 등을 떠밀어 버리게 하는 선 너머지만 일상에 가깝게 붙어있는 그 무언가.

책 안에서 나오다시피 범죄에서 동기는 필요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상상 속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 실행하기 위해선 그에 맡는 상황이 필요한 거죠. 동기는 이미 벌어진 범죄를 일상에서 분리해내, 자신과 상관없는 세계로 밀어넣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핑계라는 것,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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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케 - 에도시대 약재상연속살인사건 샤바케 1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샤바케의 뜻은 '속세의 명예, 이득 등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히는 마음(娑婆氣)'이랍니다.

대형 운수상의 외아들이자 병약해 어렸을 때부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살고 있는 주인공 이치타로의 생활은 요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치타로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약재를 구하다 보니 양이 많아져 차리게 된 약재상을 아들에게 맡깁니다. 하지만, 건강을 걱정하는 주변사람들이 이치타로가 일을 하게 놔두지를 않지요. 특히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데려온 두 요괴, 니키치와 사스케는 도련님을 너무나 걱정해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게 두질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몰래 밤 외출을 했던 도련님은 서둘러 돌아오던 길에, 온 옴에 피칠을 한 살인자를 만나고,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무사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인 시체를 발견하게 되죠. 이 첫 시체는 목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범인은 포졸들에게 잡힙니다.

그 뒤에 약재상에 불사약을 찾는 손님이 오고, 그 손님 때문에 도련님과 요괴 니키치는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이 범인도 바로 잡힙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약재상만을 덮치는 범인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도련님의 심부름을 해주던 친구마저, 위험에 빠집니다. 비록 그 친구는 약재상은 아니었지만요.

전반적인 인물 및 환경 소개와 이 사건의 해결로 책은 끝납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죠. 줄거리를 들으면 언뜻 추리소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바탕 소동극에 더 가깝습니다. 에도 시대의 풍경과, 요괴들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 이런 부분에 관심 갖는 분들이 즐겁게 읽으실만한 귀여운 소설입니다.

병약하고, 잘생긴 도련님과 곁에서 지켜주는 과보호 요괴들이라는 소재도 좋아하실 분 많을 거 같기도 하고요. (물론 저도 여기에 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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