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이순간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실린 단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드프리 저스틴 홈즈 일명 저스는 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쉼터, 베티의 헬캅(Hell cop)이다.

그는 597년전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횟수를 거듭한 우주 여행과 그 동안의 냉동 수면덕에 신체 나이는 35이다.

지금 현재는 티에라 델 시구누스, 백조의 나라라는 행성에 있는 도시 베티에서 수 많은 눈을 보내 행성과 도시를 감시하는 전문직 헬캅으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티에 사상최대의 폭풍우가 닥친다.

차를 타고 집까지 반쯤 갔을때 하늘의 수도꼭지가 다시 터졌다. 하늘은 번개에 의해 갈가리 찢어졌고, 지글지글 끓는 듯한 비구름은 다리가 긴 절지동물처럼 시가지를 활보했고, 끝이 갈라진, 눈부시게 번쩍이는 다리로 지상을 짓밟으며 불타는 발자국을 남기고 다녔다.

이 소설은 두 가지 갈래의 이야기가 있다.
지구에서 태어나 몇백년의 여행을 한 저스의 외로움. 세상과 동떨어진 그러나 어딘가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그와 사상 최대의 폭풍우를 맞은 베티. 그 폭풍우의 묘사.

저스는 수백년전 아픔을 가지고 지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의 고독과 절망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백년간의 여행은 한 세기의 망각을 가져다 주지 않는 법이다. 냉동 수면의 프티 모르(작은 죽음)로 시간을 속이려할 경우엔. 시간의 복수는 기억이고, 당신이 아무리 오랫동안 눈과 귀를 가리고 있어도, 다시 깨어날 때 과거는 역시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런 다음 취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완전히 변해 버린 세계에 있는 당신 아내의 이름 없는 무덤을 방문하고, 예전에 고향이었던 장소에 이방인으로서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러면 당신은 또 다시 그곳에서 도망치고, 이윽고 조금은 잊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실제 인생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렵 당신은 외톨이가 되어 완전한 고독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절망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일했고, 마셨고, 여자를 샀지만, 다음날 아침이 오면 나는 언제나 나였고, 혼자였다.

다른 곳에 가면 심기일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나는 별에서 별로 도약을 거듭했지만, 변화를 겪을 때마다 나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이윽고 또 하나의 느낌이 서서히 나의 마음을 잠식해 왔고, 그것은 정말 끔찍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꼭 들어맞는 시간과 장소가 존재하는 인식. 최악의 슬픔이 스러지고 사라진 과거와도 타협할 수 있게 된이래 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인간 위치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남은 여생을 기꺼이 보낼 결심을 하고, 내게 잠재된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하게 되는 곳은 이 우주의 어디, 그리고 <언제> 일까?

내 과거는 죽었지만, 혹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에서, 더 좋은 시절이, 앞으로 그 세계의 역사에 기록될 순간이,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의 황금 시대는 이곳이 아니라 하나 앞의 세계에 가로누워 있고, 또 이곳에서 내가 암흑 시대와 고투하고 있을때, 단 한 장의 티켓, 단 한장의 비자, 단 한 장의 일기장 너머에 나 자신의 르네상스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단언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내가 경험한 두번째의 절망이었다.

고독에 관한 절망,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떠도는 사람으로서의 느끼는 절망.
사실은 이 앞에, 여기가 아닌 저 앞에 완전한 나를 위한 기회가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 절망에 대한 대답을 이어 이야기한다.

나는 <백조의 나라>에 오기 전까지는 그 대답을 모르고 있었다.
엘리너, 왜 당신을 사랑하게 뙜는 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그것은 곧  나의 대답이 되었다. 비가 내린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그는 백조의 나라에서 엘리너란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됨으로서 그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것이다.

그리고 베티에 폭풍우가 온다.

폭풍우에 휩싸인 도시의 착란.
길 건너편의 건물은 맥박 치는 전광 아래에서 뚜렷하게 보였다. 창밖의 정경을 좀더 잘 감상해 보기 위해 나는 아파트의 부을 모두 꺼놓았다.
빛을 발하고 있는 층계, 박공벽, 창턱, 발코니 등을 가르고 있는 그림자는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검었다.

그리고 빛에 노출된 모든 물체들은 마치 내부로부터 나오는 빛에 의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 위에서는 살아 있는,  살아 있지 않은 불의 곤충이 배회하고 있었고, 나는 푸른 후광에 휩쌓인 눈 하나가 가까운 건물들의 옥상 위를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했다. 불이 맥박 쳤고, 구름은 게헤나의 언덕처럼 불타올랐다. 뇌명이 부글거리며 쾅쾅 울렸다. 하얀 빗줄기가 송곳처럼 지상을 강타하자, 도로는 거품과 증기를 폭발하듯이 뿜어냈다.

그러자 스태퍼가, 세 개의 뿔이 다리로, 젖은 깃털에 감싸이고, 악마 같은 얼굴에 검처럼 뾰족한 꼬리를 가진 녹색 괴물이, 길모퉁이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내가 천둥소리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굉음을 들은 직후의 일이었다.
괴물은 전광석화의 속도로 물보라에 휩싸인 보도위를 질주했다. 그러자 아까 보았던 눈이 그 뒤를 쫓아 내려왔고,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에 납으로 된 우박의 난타를 덧붙였다. 둘 모두 다른 거리 쪽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이 광경을 어떤 화가에게 그리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엘 그레코도 아니고 불레이크도 아니다. 아니다, 보쉬다. 의심의 여지없이, 보쉬다. - 그 악몽 같은 지옥의 거리의 환상. 폭풍의 이 순간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이윽고 지글지글 끊는 비구름이 다리들을 위로 끌어올렸고, 불타는 고치처럼 궁중에 머물고 있다가, 타다 남은 불이 재로 변하는 것처럼 스러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다덮었고, 곧 비가 쏟아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일요일은 혼돈의 날.
양초가 타고, 교회가 타고, 사람들이 익사하고, 짐승들이 길거리를 폭주하고(혹은 헤엄치고), 집들은 뿌리채 뽑혀 나가 종이배처럼 퉁퉁 튀며 수로 위를 흘러가고, 대폭풍이 우리를 엄습하고, 그 뒤로 광기가 찾아왔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폭풍우 속.

그 폭풍우는 강을 넘치고 도시를 넘치고 수많은 피해자를 내고 더 이상 막는게 무의미해지고 단지 사람들에 구출에 노력만 할 뿐.
숲과 강에 사는 수많은 짐승들이 넘쳐나고
짐승은 죽어있는 아이의 시체를 먹고
재왕절개가 아니면 출산 할 수 없는 임산부가 고립되어 분만의 고통을 겪고,
산산조각 난 집들과 자동차들.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습격해서 재물을 훔쳐가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아내있는 사람은 비행기를 훔쳐 다른 여자와 습격해 가져온 재물을 가지고 도망가고.

그러나  그 지옥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나는 겨드랑이까지 차 오른 물속에서, 어린 딸을 어깨 위에 태우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고, 그 어린 딸이 자신의 인형을 어머니와 똑같은 방법으로 어깨위에 태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 사랑 - 또한 전체의 일부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 혹은 하고 싶었던 일들의?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바로 그것이 나를 벌떡 일어나게 했고, 엘리너의 비행정을 조종해서, 폭풍우를 뚫고 그 현장으로 향하게 한 원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부분과 관련해서 로저 젤라즈니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용기의 에센스란 결국 그런 것이다.
당신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했거나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거나 안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의 총합에 의해 이미 결정된 무의식적인 순간이자, 순간적으로 척추 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다.


그리고 드디어 폭풍우는 사라지고 사라졌던 태양이 다시 등장하고
모든 이는 희망을 맞는다.

그러나 저스와 엘리너와 함께 쉬기위해 아파트를 향하던 중 잠시 엘리너가 먼저 떠난 사이에 그녀는 폭풍우속에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재물을 빼았던 사내에게 죽임을 당한다.

저스의 절망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사라진다.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빛으로. 그리고, 그러나 그 결말로.

저스는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난다. 아마도 처음 여행을 떠나던 것과 마찬가지로 슬픔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리고 그는 아마도 다시 시간의 복수를, 기억을 돌려받을 것이다. 수백년의 여행이 끝난 뒤에.

나는 배를 탔고, 떠났다. 차가운 잠을 다시 한 번 자기위해.
별들 사이를 가는 배의 환각--
아마 몇 십년이 지났으리라고 짐작된다. 나는 더 이상 햇수를 세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은 자주 하곤 한다. 혹시 언제, 어딘가에 나를 위한 황금 시대가, 르네상스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시대가, 단 한 장의 티켓, 단 하나의 비자, 단 한장의 일기장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언제, 어디가 될지는 모른다.

누가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어제 내렸던 비는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 속에?
나의 내부에?
우주 공간은 차갑고 조용하며, 지평선은 무한에 가깝다.
이동감각은 전혀 없다.
달은 보이지 않고, 별들은  눈부시게 불타오른다. 부스러진 다이아몬드이다, 모두가.


로저 젤라즈니의 언어는 그저 감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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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레니체의 생각
    from veraniel's me2DAY 2008-12-05 18:41 
    용기의 에센스 : 누군가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했거나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일 그리고 했으면 혹은 안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의 총합에 의해 이미 결정된 무의식적 순간에, 척추 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 뒤따르는 고통은 차후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