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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언어 - 죽음의 진실을 연구하는 법의인류학자의 시체농장 이야기
윌리엄 배스.존 제퍼슨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산 자는 거짓말을 한다. 알리바이를 만들고, 증거를 인멸하고, 목격자를 매수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부패한 피부, 떨어져 나간 뼈, 구더기가 남긴 껍데기- 이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한다. 문제는 그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77년 크리스마스 연휴, 테네시주 한 저택 묘지에서 머리 없는 시신이 발견됐다. 법의인류학자 윌리엄 배스는 사망 후 경과시간을 '길어야 몇 달'로 판단했다. 그러나 시신은 1864년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윌리엄 샤이 대령의 것이었다. 방부 처리와 주철관 덕분에 113년 동안 부패가 지연된 것이다. 배스는 자신이 망자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부패의 언어》는 세계 최초의 인체 부패 연구소 '시체농장'을 설립한 법의인류학자가 50여 년간 죽은 자의 말을 듣고 번역한 기록이다.
1999년 5월, 미시시피주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일가족의 시신이 발견됐다. 손녀를 발견하고 24시간 만에 25만 달러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한 의붓할아버지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6년의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시신은 이미 매장되어 남은 것은 사진뿐이었다. 배스는 사진 속 피부 박리, 뼈 노출, 곤충 활동을 분석했다. 시체농장에서 20년간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로 사망 시점을 추정했지만, 그 날짜에는 용의자의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판세를 바꾼 건 놓치고 있던 사진 한 장이었다. 손녀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구더기가 파리로 변태하면서 남긴 껍데기가 발견된 것이다. 살해 시점은 예측보다 더 이른 때로 좁혀졌고, 배심원단은 의붓할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배스가 사망 후 경과 시간 연구에 인생을 건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을 읽을 수 있으면, '언제' 그리고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시체농장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다. 배스는 망자의 몸이 남긴 언어를 과학으로 번역해 법정에 세웠다. 죽은 자가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됐다.
죽은 자가 가장 정직한 증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