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의 시대 -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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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이야기는 문학이 된다. 사랑 때문에 가족이 무너지는 이야기도 그렇다. 그런데 태풍으로 사람이 죽는 이야기는 왜 재난 영화로 분류될까?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근대 소설은 '안정적인 일상'을 전제로 한다.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 그래서 100년 만의 토네이도가 등장하면 우리는 억지 같다고 느낀다.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 전체가 그렇다. 바다 조망 아파트, 유리 빌딩, 화려한 자동차. 이 모든 욕망은 석유를 태워야 유지된다. 그러면서도 "설마 내 생애 바다가 집 앞까지 오겠어?"라고 생각한다.


그 착각의 기원을 그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증기선이 바람의 질서를 밀어낸 순간,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 착각은 지금까지도 세계를 움직인다.  


텀블러를 쓰고 채식을 늘리는 일은 의미 있다. 그러나 개인의 양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법과 정책, 산업 구조를 움직일 집단적 상상력과 행동이 필요하다.




"지구는 계속 듣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끼리만 말한다고 믿었다. 숲도, 바다도, 대기도 내내 듣고 있었는데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구는 산불과 홍수, 폭염으로 답장을 보낸다. 우리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다.


결국 고시는 상상력의 복원을 요구한다. 지금과 다른 질서, 인간만의 세계가 아닌 함께 사는 세계를 그려 보는 일. 소설은 세상을 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장치임을 일깨운다. 


지구는 이미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제대로 들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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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 융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인생 수업
최광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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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흔들림을 균형으로 다루는 심리 인문서✨️






중년의 혼란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인생이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지금 힘든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




봄 다음에 여름이 오듯 변화는 그냥 온다.

문제는 우리가 봄옷으로 여름을 버티려 한다는 것이다.


마흔을 넘겨 이상하게 일이 자꾸 어긋난다면,

예전처럼 열심히 사는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면,

이유 없이 짜증이 늘고 관계가 버겁고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 책은 바로 그 감각에서 출발한다.






《나로 살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중년의 혼란을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변화의 신호'로 바라본다.


저자는 융 심리학의 '대극의 원리'로 중년의 삶을 해석한다.

사랑과 미움,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


우리 안에 공존하는 상반된 것들이

이 시기에 왜 더 격렬히 충돌하는지 설명한다.






"빛이 밝아지면 그림자도 커진다."

성실하게 한 방향으로 오래 달려온 사람일수록

내면의 그림자도 짙어진다.


중년의 위기는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한쪽으로만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온다.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변화 그 자체이다."


변화는 끝이 아니라 갱신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혼돈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일 수 있다.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융이 남긴 이 역설은 책의 핵심을 관통한다.


모순을 끌어안는 태도- 그것이 중년의 지혜다.

그 순간,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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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언어 - 죽음의 진실을 연구하는 법의인류학자의 시체농장 이야기
윌리엄 배스.존 제퍼슨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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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는 거짓말을 한다. 알리바이를 만들고, 증거를 인멸하고, 목격자를 매수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부패한 피부, 떨어져 나간 뼈, 구더기가 남긴 껍데기- 이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한다. 문제는 그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77년 크리스마스 연휴, 테네시주 한 저택 묘지에서 머리 없는 시신이 발견됐다. 법의인류학자 윌리엄 배스는 사망 후 경과시간을 '길어야 몇 달'로 판단했다. 그러나 시신은 1864년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윌리엄 샤이 대령의 것이었다. 방부 처리와 주철관 덕분에 113년 동안 부패가 지연된 것이다. 배스는 자신이 망자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부패의 언어》는 세계 최초의 인체 부패 연구소 '시체농장'을 설립한 법의인류학자가 50여 년간 죽은 자의 말을 듣고 번역한 기록이다.


1999년 5월, 미시시피주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일가족의 시신이 발견됐다. 손녀를 발견하고 24시간 만에 25만 달러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한 의붓할아버지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6년의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시신은 이미 매장되어 남은 것은 사진뿐이었다. 배스는 사진 속 피부 박리, 뼈 노출, 곤충 활동을 분석했다. 시체농장에서 20년간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로 사망 시점을 추정했지만, 그 날짜에는 용의자의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판세를 바꾼 건 놓치고 있던 사진 한 장이었다. 손녀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구더기가 파리로 변태하면서 남긴 껍데기가 발견된 것이다. 살해 시점은 예측보다 더 이른 때로 좁혀졌고, 배심원단은 의붓할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배스가 사망 후 경과 시간 연구에 인생을 건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을 읽을 수 있으면, '언제' 그리고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시체농장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다. 배스는 망자의 몸이 남긴 언어를 과학으로 번역해 법정에 세웠다. 죽은 자가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됐다.


죽은 자가 가장 정직한 증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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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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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프. 1835년 아이슬란드 엘데이 섬 학살에서 살아남아 생물학자 오귀스트에게 구조된 큰바다쇠오리다. 그는 타일 바닥에서 헤엄치듯 버둥거렸고, 물을 부어주면 깃털을 다듬었으며, 뒤뚱거리며 오귀스트에게 다가왔다.


몇 년 뒤, 오귀스트는 짝을 찾아주겠다며 프로스프를 세인트킬다 섬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프로스프는 짝짓기 싸움에서 진다. 인간과 함께 살며 달라져 버린 그는 더는 온전한 큰바다쇠오리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었다.


이 소설은 멸종의 서사이자 선의의 역설이다. 

한 존재를 구한다는 행위가 때로는 그 존재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오귀스트는 깨닫는다.


"그는 자기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자기가 창조하지 않았으며 예전에는 자기를 필요로 한 적이 없는 존재에게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오귀스트의 책임은 프로스프를 구한 순간 시작되었지만, 그 책임을 어떻게 다해야 하는지, 그는 끝내 알지 못한다.




엘데이 섬의 마지막 한 쌍의 큰바다쇠오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던 날, 오귀스트는 프로스프를 바라본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유일한 표본, 곧 바닷가 바위에 달라붙을 하나의 화석이었다." 살아 있으나 이미 화석인 존재. 


한 종의 삶의 방식이 영원히 끊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박제로 남기고 DNA를 보존해도, 그들이 어떻게 헤엄쳤는지, 어떤 소리로 짝을 불렀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프로스프가 보여준 우아한 몸짓, 환희의 외침- 그 모든 것은 그와 함께 사라진다. 그것은 단순히 한 마리 새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통계 속 숫자가 아니다. 함께 살 수 있었던 친구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선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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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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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세계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할까?


빨강 머리 앤이 달렸던 초록 지붕 집도,

스칼렛이 지켜낸 타라도,

요코가 걸었던 눈 덮인 숲도?




곽아람 작가는 안식년 1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 쿠바를 누비며

자신이 사랑한 문학 작품의 배경을 직접 찾아간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의 붉은 흙을 밟고,

애틀랜타에서 마거릿 미첼의 흔적을 따라가고,

아사히카와의 눈보라를 뚫고 나아간다.




"2D로 그려왔던 그 세계가 3D로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내게 소중했다."




인상 깊은 건,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다.

몽고메리의 비극적 삶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

매슈의 빈 방에서 느낀 슬픔.


작가에게 이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이웃보다 더 친구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다.




결국 이 여행은, 책에서 받은 위안이 진짜였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상상 속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이야기가 전한 감동 역시 진짜일 테니까.






우리도 마음속 지도를 들고,

사랑한 작품의 배경지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이 그 여정의 완벽한 동행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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