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화무십일홍. 본질을 채우지 못한 아름다움은 덧없다."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에서 루이 14세의 스타킹을 다룬 챕터 끝에 나오는 문장이다. 발레로 다져진 종아리를 자랑하던 왕의 호즈는 절대왕정의 상징이었지만, 끝내 프랑스 혁명 앞에서는 힘을 못 썼다. 결국 스타킹은 화려했지만, 국정 운영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저자가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이다. 천을 몸에 직접 걸쳐 가며 만드는 드레이핑 기법을 설명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천 주름이 왜 지금도 명품 브랜드들이 참고하는 디자인인지 보여주고, 에르메스가 말 안장을 꿰매던 바느질 방식을 가방 제작에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걸 장인의 눈으로 풀어낸다.


저자에게 옷은 생존 도구이자 욕망의 표현이며, 개인의 정체성이자 시대의 기록이다. 그래서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관점으로, 성경 속 선악과에서 시작해 21세기 조선의 갓까지, 26가지 옷 이야기를 통해 옷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과거의 옷들이 각자의 시대를 말해왔듯이, 오늘 내가 입은 이 옷은 백 년 후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읽힐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려진 도시, 아티카
이선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코에 플라스틱 포크가 박힌 바다거북, 폐어구에 몸이 칭칭 감긴 채 비명을 지르는 돌고래, 하얗게 죽어버린 산호 군락. 열세 살 이선은 바닷속 도시 '아티카'에서 그 모든 장면과 마주한다.


아티카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지어진 도시다. 플라스틱 빨대가 건물이 되고, 비닐이 거리가 된 곳. 이곳 주민들은 쓰레기 때문에 죽은 해양 생물의 영혼이다. 바다거북의 얼굴을 하고, 범고래의 몸을 한 그들은 이선에게 바다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선은 아티카인들과 함께 폐어구에 걸린 상괭이를 풀어주고, 플라스틱 컵에 갇힌 문어를 구한다. 거대한 어망을 치우기 위해 여럿이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작은 존재들이 함께 책임을 나눌 때 비로소 바다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존재지만, 결코 혼자 감당하지 않아요. 그 안의 생명들이 저마다 책임을 나눴기에 바다는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거예요."


책임은 나누는 것이다. 《버려진 도시, 아티카》를 읽는다는 건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누구를 죽이는지. 동시에 이 책은 희망도 말한다. 비닐봉지 하나를 바람에 날려 보내지 않는 선택,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이면, 바다는 다시 숨 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쓰시타 고노스케 어떻게 살 것인가 - 경영의 신이 일평생 지켜온 삶의 자세 마스터스 6
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읽다 보면 묘한 지점이 있다. 분명 경영자가 쓴 책인데, 정작 경영 기법보다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장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짧은 글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건 결국 '보는 법'이다. 마쓰시타는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본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난을 '절실함을 배운 기회'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시간을 '배움의 깊이를 알게 된 계기'로 바라본다. 이런 시선은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인간에게는 본래 고민이 없다"는 문장이 특히 인상 깊었다. 누구나 고민하며 사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가 말하는 고민은 한 가지 관점에 갇혔을 때 생기는 막막함에 가깝다. 다르게 보면 풀린다. 실제로 그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냈고, 불황 속에서도 길을 열어냈다는 기록으로 그 말을 증명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말은 "직장은 도장"이라는 표현이다. 급여를 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닦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그 사람을 만든다고 본다. "진정성 없이 하는 일은 실패보다 나쁘다", "자신을 밖에서 관찰하듯 바라보라"는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를 조급하게 쫓기보다,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상황에 즉각적인 해법을 주진 않는다. 어떤 문장들은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하기에 오히려 더 자주 잊는 원칙들을 다시 붙잡게 해준다.


마쓰시타가 평생 이 책을 통해 붙잡고자 했던 건, 회사를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통째로 부르는 이름이, 그에게는 경영이었고 동시에 삶이었다.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내적 기준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그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강용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마흔 전후가 되면 삶에 대한 질문이 달라진다. 성취와 성공보다 의미와 행복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되고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쁘게 달려왔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문득 막막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쇼펜하우어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로만 기억하는 건 그를 절반만 아는 일이다. 그는 "인생은 고통"이라고 단언했지만, 동시에 고통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성취를 좇다 겪는 '가짜 행복'의 고통, 그리고 삶의 무게중심을 자기 안으로 옮기려는 '진짜 행복'을 위한 고통이다.


그는 진짜 행복을 얻으려면 자기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둘을 최대한 일치시키려는 노력. 행복은 그 노력에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쇼펜하우어 본인도 이 원칙대로 살았다는 점이다. 30대에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열었다가 수강생이 단 한 명도 없어 학계에서 사실상 은둔했지만, 자기 확신을 놓지 않았다. 그가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45세 이후였다. 쇼펜하우어에게 40대는 위기를 넘긴 나이이자, 삶의 방향이 바뀐 시기였다.


이 책이 출간 3년 만에 300쇄를 찍은 건 우연이 아니다. 60만 독자가 이 책을 선택한 건 쇼펜하우어가 애써 위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되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 삶의 무게중심을 밖에서 안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진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마흔 이후의 삶은 더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큰 컨트리
클레어 레슬리 홀 지음, 박지선 옮김 / 북로망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재판정에서 사람들이 묻는 건 단 하나였다. "왜 그랬습니까?" 하지만 베스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이 함께 만들고 연습한, 완벽한 이야기뿐이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은 아들 바비를 잃은 뒤부터 시작되었다. 베스는 목장 일에 몰두했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바비의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다. 죄책감이 너무 깊어, 마치 그 아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어야 겨우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같은 집에 살지만, 두 사람은 커다란 슬픔 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게이브리얼이 돌아왔다. 십여 년 전, 여름 호숫가에서 처음 만났던 그 사람.

"날 떠나지 않을 거지?" 서로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그림자와 함께 말이다.


게이브리얼의 아들 레오는 열 살. 바비가 살아 있었다면 그와 같은 나이였다. 베스는 레오를 돌보기 시작한다. 강아지를 함께 훈련시키고, 바비 이야기를 들려주며, 프랭크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그 이름을, 게이브리얼은 함께 불러주었다. 베스는 처음으로 온전한 자신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이 이야기는 영국 도싯의 목장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1955년 여름의 약속과, 1968년 어느 토요일 밤 총성 사이를. 퍼즐처럼 맞춰지는 장면들 속에서 드러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이야기였다. 프랭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될 때,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달라진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