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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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올린 단어는 '축적'이었다. 주인공 홍석주가 스물넷 교열자로 출판계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쉰여덟이 될 때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한 권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 소설은 성공한 편집자의 화려한 커리어가 아닌, 원고와 씨름하고, 작가와 부딪히고, 때로는 좌절하면서도 매일 아침 책상 앞에 다시 앉는 한 사람의 지속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흔네 살에 작은 문학상을 받고 참석한 시상식이다. 멀리 보이는 부모님과 동생 부부를 보며 석주는 "긴 세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무심하고 소홀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느낀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것을 "닮은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라고 여기면서도, 그 진부함 속에서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감동을 느낀다. 그 순간 석주는 비로소 자기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건 거창한 성공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며 살아가는 삶의 단단함일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날들의 반복이 한 사람을 만들고, 그 시간이 남들 눈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유일무이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 석주의 삶이 그랬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쌓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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