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빔보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4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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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보는 버스 외부 광고의 대부분은 성형외과 광고인 것 같다. 물론 결혼 중매 광고도 있고, 영화 광고, 등 다른 광고들도 있긴 하지만 성형외과 광고만큼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드물지 않나. 성형외과 광고의 문구는 대개 ‘예뻐지고 싶다면’ 혹은 ‘눈, 코, 입을 살리는 얼굴형’과 같은 문구들이 대부분이며, 광고의 그림은 거의 못생긴 사람과 반반하게 생긴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꼰대 아빠와 등골 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이라는 책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 미국의 한 연구 기관의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천 개에서 팔천 개에 이르는 브랜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 <중략> 브랜드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어.”

 위 대사처럼 우리는 성형외과 광고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는 성형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게 하며, 수술을 쉽게 결정하게 만들도록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플라스틱 빔보(plastic bimbo)란 성형 미인을 뜻한다. 이때 빔보는 뷰티(beauty)와 같은 ‘미인’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나 ‘보통 머리가 빈 미인’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플라스틱 빔보는 주인공, 강혜규를 중심으로 성형 수술을 원하는 여학생들이 만든 일종의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성형 수술을 혐오했었던 혜규는 부상을 당하면서 성형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 9번의 칭찬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한 번의 비난이란 말이 있다.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어 안심했던 혜규에게 ‘다 나은 거니?’같이 외모에 대한 의문은 별거 아닌 질문이었음에도 혜규를 불안하게 만든다. 부상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얼굴인데, 새삼스레 못나 보이는 게…… 그토록 혐오스러웠던 성형이 왠지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수술을 받으면 수술비를 할인해주는 곳이 많다. 내 위의 선배들도 같은 성형외과에서 다같이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비용이 50만원 채 되지 않았었다. 혜규 또한 이런 기회를 알았기에 함께 성형할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또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혜규의 생각대로 좀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수상한 사람으로부터 온 이상한, 경고의 메시지 그리고 같은 학교의, 여학생과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죽음들. 그 모든 사건, 사고가 성형 수술과 무관하지 않다. 혜규는 진실의 실마리에 가까워지면서 성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안티 플라스틱’이라는 성형 반대 모임을 결성한다.

 내 친구들 중 절반은 쌍꺼풀 수술을 했다. 걔네가 수술을 하기 전날 그들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쌍수는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야!”라고 주장했었다. 쌍꺼풀을 만드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쌍수가 간단하고 가벼운 시술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나도 쌍꺼풀 수술을 중3때쯤인가, 결심한 적이 있다. 결국엔 비싼 수술비 때문에, 그리고 수술과정을 구두로 세세하게 설명하며 중3꼬마애를 겁줬던 간호사 언니 때문에 겁이 나 그만 뒀다. 지금은 얼굴의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화장품들이 많아, 화장을 하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강남 미인도’를 보면 성형을 안 한 게 어쩌면 다행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미인도는 마치 성형이 똑 같은 미인을 생산하는 기계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수술용 기구와 보형물들 아래로 똑같은 얼굴들을 뚝딱뚝딱 생산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성형 수술이 단순히 미용을 목적으로 생겨난 치료가 아님을 계속해서 전달한다. 성형외과 시스템의 불안정성, 섀도 닥터의 비전문성, 등을 드러내면서 성형 수술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성형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이 책만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성형을 반대하기 보다는, 그저 성형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어 자신을 위한 판단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자신을 위한 판단, 후회가 없는 결단을 위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 풍토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린 선택이 아닌, 진짜 선택을 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식상한 얘기지만, 내 생각엔 내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달 넘게 입어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속옷 위로 아무리 깨끗한 바지, 근사한 바지를 입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아무 이상 없을까? 멋진 바지를 입었으니 괜찮은 걸까? 아니다, 그 속옷의 지독한 냄새는 바지에 베어 바지까지 냄새가 전염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옷이 깨끗하면, 바지가 화려하지 않아도 냄새 날 걱정이 없다. 왜냐면 속옷이 깨끗하니까! 이처럼 지금 우리에겐 외적인 미(美)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미를 갈고 닦는 게 일단은, 우선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귀한 깨달음을 준 ‘플라스틱 빔보’를 이 글을 본 여러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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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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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크게 싸워 절교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슬픔은 너무도 내 삶이 끝나기까지 영원할 것만 같았고, 평생 친구 하나 없이 외로이 살다 홀로 늙어 죽진 않을까 걱정스러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새 친구가 생겼다. 현재는 그 친구와 오랫동안 연을 맺고 잘 살고 있다. 그때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저번 주 목요일에 절교했던 친구에게 페이스북 친구 요청이 왔다.

 

  인생사는 새옹지마란 말이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오늘은 새 신발을 신어 기분이 좋았지만 다음 날엔 내 것보다 더 좋은 신발을 산 친구를 보며 하루 온종일 기분이 꿀꿀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은 Never Ending Story 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결말이 없고, 정해진 답도 없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지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인생을 낱낱이 보여주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태산이. 오래 전에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신 이후로 줄곧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던 태산이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가시자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지 태산이의 주변엔 좋은 이웃들이 많았다. 진짜 자식인 것처럼 태산이를 신경써주시는 떡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조금 제멋대로고 철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상한 친구 기형이. 그 외에도 선생님, 학교 친구들, 등 여럿 분들이 태산이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기시고 간 ‘장사 쌀집’을 호시탐탐 노리는 오촌 아저씨와 태산, 자신을 양자로 삼길 원하는 떡집 아저씨, 아주머니 사이에서 진절머리를 느낀 태산은 아버지의 메시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가보라던 곳인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 보았고, 그곳에서 주인집 남자를 만난다. 아버지와 어떤 인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 성함조차 모르는 주인남자가 태산은 신경 쓰인다. 어디선가 본 듯 낯익은 여성의 사진도 그렇고, 원 안에 갈매기가 있는 그림의 십자수도 집에 있는 것과 똑같아서 더더욱 그렇다. 주인집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나날이 커져갈 때쯤 ‘손으로 말해요’동호회 캠프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가게 된 태산. 거기서 어느 한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멋진 미용 재주를 펼치던 변호사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옛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용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항공 학교에 다녔던 친구의 이야기였다. 승무원인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었으나 비행기 사고로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까지 보고 들어왔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즐이 딱딱 맞춰지듯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조심스레 펼친 사진첩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사람은 말이다. 양파 같은 거다. 여러 개의 껍질로 쌓여있단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그저 밖으로 내보이는 게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중략> 어려움을 벗겨내면 그와 반대가 기다리고 있고, 슬픔을 벗겨내면 기쁨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슬프다고 내일까지 슬픈 법은 없고 지금이 힘들다고 네 앞날이 계속 그렇지도 않을 거야.”

 

 지금의 슬픈 일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지나간 일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슬픈 일을 잊으려고, 지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속에 담아도 좋고, 늘 기억 속에서 꺼내 회상을 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차고 넘쳐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보이는 것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전부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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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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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귀여운 아이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친구들의 눈에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때가 있는가 하면 괜스레 피어나는 수줍음에 내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해서 친구들이 오해를 해버리게 내버려 둘 때가 있다. 또는 즐거울 거라 생각해서 행한 일을 사람들이 괴상하게 생각하게 되면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하며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우물쭈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건 없었으니까. 상처받기 싫어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에만 반응했다. 나 스스로가 나의 마음이 연약한 구슬 같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접 부딪혀본다든지, 싸워본다든지 그런 노력은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왜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싶다.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윌 그레이슨이란 이름의 두 소년이 나온다. 홀수 페이지, 짝수 페이지로 나뉘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홀수 윌은 참 독특한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투덜거리는 어투들이 가히 기저귀를 갈지 못한 아기 같았다. 그러나 투덜거리며 온갖 시니컬한 척을 다 하는 그의 행동들 하나하나를 보면 참 자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독특한 매력 때문에 제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친구 타이니 쿠퍼도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겉으론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제멋대로고, 너무 거세면서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의 진정한 모습은 참 따스하고 다정했으며 속이 깊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부시도록 예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로맨틱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로맨틱해지는 걸까? 짝수 윌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나조차 그 달콤함에 취해버리는 것 같았다.

 

 짝수 윌 또한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인터넷 채팅 속의 아이작에게만 제 속마음을 꺼낼 줄 알았던 아이. 어찌 보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아이작만큼의 신뢰를 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있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어떤 예고도 없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짝수 윌의 상처 가득한 마음을 타이니는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비록 그들이 동성 커플이었지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

 

 책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참 예뻤다. 하지만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 사랑들이 예쁜 걸로만 그치는 점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랑이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 당당하지 못한 사랑의 빛깔이 언제나 환한 빛을 머금을 수 있을까. 오해와 불신, 실망만이 남게 된다. 즉,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이라는 건 보여줄수록 표현할수록 줄어들거나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나고 커져버리는 것이다.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더욱 견고해지는 것이 사랑인데 터질 리가 있을까. 귀여운 아이들은 이미 그런 걱정 속에 쌓여있다. 표현하고, 솔직하기에 앞서 걱정 때문에 뒤로 숨고 말았다. 하지만 숨었다고 한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부풀어가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힘겹고 아프기만 할 것이다. 견딜 수 없이 아파서 망가져만 갈 뿐 일리라.

 

 때때로 걱정 속으로 나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 될 수가 있다. 이 책은 그것을 보여준다. 걱정하고 있는 대상을 직면하고 포용할 줄 아는 용기가 이곳에 담겨져 있다. 타이니가 자신의 아픔과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뮤지컬을 만들었던 것처럼, 짝수 윌과 홀수 윌이 그런 그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서로를 눈에 담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마음에 담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예쁘기만 했던 사랑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역경을 이겨낸 꽃은 상처가 있을 지라도 그 어떤 꽃보다 강인하고 아름답다. 아직은 어린 윌, 타이니, 제인 그리고 나는 이렇게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으며 귀여움을 탈피하고 성숙해져 가는 연습을 하며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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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오를꽃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8
정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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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계속 바닥에만 머물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보면 그땐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하루하루가 참 괴로운 나머지 옥상만 보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 만약 그런 괴로운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과 의논해보았겠지만 그땐 부모님이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영을 못하는 나라면 한강에 빠진다 한들 살아나지 못하겠지? 아니면 영화처럼 창문과 문틈을 테이프로 꽁꽁 막고 가스를 켜서 질식사로 죽어버리면 좋을까? 혹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서 영원한 잠 속에 빠져 버린다면? 같은 생각들로 그 파릇파릇한 시기를 보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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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도 컴퓨터 게임처럼 초기화가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사는 게 꽤 쉬워질지도 모른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겠지. 그럼 학교를 갈 필요도, 귀찮은 사람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겠지, 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음 오를 꽃’은 그런 생각하기가 무서운 책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회초리로 내려치는 듯 날카로운 의미를 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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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중학생 규와 고등학생 나래가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규는 초기화를 목적으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나래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런 그들이 온 곳은 중천 혹은 중음,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가운데 하늘이었다. 육체를 잃고 령체가 된 두 사람은 49일 동안 그곳에서 머물며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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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로 사지를 물어 뜯긴다든지 영혼을 찢긴다든지 그 모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죽은 자신의 빈자리로 인해 피폐해지고 망가져가는 가족들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엔 우리 주변에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많고 또 그만큼 우리들은 그들의 사랑을 빚지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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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은 나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살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가족이란 것은 겉으로 보기엔 참 견고한 집같이 보이지만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라도 사라져버린다면 그 집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사이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없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집은 점차 폐허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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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우리들의 존재 하나하나는 참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하고 특별한 권리, 가치를 쉽게 놓아버린다. 거기엔 초기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주변적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친구들의 따돌림도 그렇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없는 가족을 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래의 일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현명한 조치를 취하기만 했었더라도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저기 있어. 사랑을 잃고서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지. 사는 게 아니고, 겨우 숨만 붙어 견디는, 너의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이 저기에 있어. 가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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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 아빠의 것이다. 나를 깊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힘든 일을 참을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홀로 견디기 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참된 답이다. 되든 안 되든 내 삶을 지키는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나 자신에게도,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삶은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 지독하고 위험해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매우 따뜻하고 너그럽기만 하는 게 세상이다.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면 적극적으로 저항하면 된다. 그것이 사랑을 받고 태어난 우리들의 임무이고, 의리이고, 빚진 사랑을 갚는 방법이다.

​

 만약 지금 당장 죽는 것을 꿈꾸며 옥상만 바라보고 있을 친구들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삶이 너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있니?

네가 겪어낸 삶을 다른 아디들도 견디지 못하였니?

네 부모와 가족은 남은 삶을 지옥에서 보낼 텐데, 그 지옥을 어떻게 할 것이니?]

​

 자기 살인의 죄를 지은 규와 나래에게 일원 법신께서 하신 말씀이다.

  “<중략>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을 것이다. 비록 윤회의 형벌로 인해 전생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라.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나 보고 감탄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짧은 생애 동안 너희는, 너희 삶의 보조출연자로 살았다. 이제부터는 주인공으로 살아라. 주인공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끝까지 견뎌 내는 것이 주인공이다.”

​

 나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마음에 담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면 성급하게 결정할 수 없어질 것이고 삶의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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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뚤어지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7
진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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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 아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꼭 한 명씩은 있는, 전교생들의 무시와 조롱을 오롯이 당해야 했던 아이였다.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몸에서 나는 냄새와 자신감 없는 우울한 분위기가 늘 원인이었다. 복도에서 그 아이와 마주친 학생들은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걸곤 했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 때 마다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분명 아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묵묵히 수업을 진행하셨다. 복도에서 다른 학생들이 왕따를 향해 내뱉는 욕설이 교무실에는 닿지 않는 걸까. 단 한 번도 교무실문이 제때 열린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괴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괴물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수업을 통해 감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왕따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도 왕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 학기가 되었고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도 그저 그런 취급을 받았던 그 아이는 곧 기존의 왕따 아이의 배턴을 넘겨받게 되었다. 동시에 전교생의 표적은 전학생에게 옮겨졌다. 그 이후 당연하다 듯이 전학생을 괴롭히는 무리 속에 처음에 왕따를 당했던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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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비뚤어지다.’라는 이 책에서는 아주 용감무쌍한 가출 청소년들이 나온다.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라든지 외로움을 견디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모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앞에 큰 재앙이 닥친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명 여배우를 시작으로 급속도로 세상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현관문 밖은 시체가 난무하고 비명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로 들썩인다. 또한 곳곳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노리는 좀비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껏 받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살아야만 했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기관도, 어른도 없었다. 스스로가 식량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미강, 대장, 참모, 현웅, 레몬, 분도 그리고 룩.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좀비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그간 동고동락했던 동료를 잃기도 한다. 슬프고 괴롭기도 하고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섭고 위험이 도사리는 건 처음과 똑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차 변하고 있었다. 저세상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매순간 겪으며 단련된 아이들은 마음가짐부터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해 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스스로가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강인했고 동시에 지난날의 상처들을 되돌아보고 포용할 줄 알았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진득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눌 줄 알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부모와 자식, 그러니까 가족 관계로 한정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말은 가족관계를 넘어 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었다. 아이가 비뚤어지는 원인은 비뚤어진 사회를 만든 비뚤어진 어른에게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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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점에서 글의 내용 중, 미강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부모들을 넘어설 만큼 잘 커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부모들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부모는 아이들의 심장 모서리를 갉아 먹는 종벌레였다. 대장에게도, 레몬에게도, 미강에게도. 그리고 틀림없이 룩에게도 징그러운 종벌레들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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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어른에 대해 비판하는 것 같다. 부모를 닮는 것에 대해 분하고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득하게 보고 있으면, 이 말이 어찌 보면 어리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기게 심장에 달라붙었다는 종벌레.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게 부모인 것 같았다.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영향력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크다. 유행처럼 퍼져나간 좀비 바이러스처럼 그러한 영향력을 어른들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다. 이는 어른과 다를 게 없이 아주 세밀하다. 어른이 없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용케도 자기들끼리 잘 살아간다. 하지만 위태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린 아이에게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건너게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리기 때문일까. 거침이 없었고 목표에 대해 뚜렷한 의지가 있었다. 위태로움 뒤에 예상치 못한 강인함이 아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눈부시게 빛내는 것 같았다.

 

 탁 트윈 결말 앞에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행복한 결말을 바랐다. 내가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른들은 현실에서 가당키나 할까, 라고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아이들에겐 새로운 의지를 북돋게 하고 속앓이를 했던 고민에 대해 해결책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말은 활짝 열린 창문과도 같았고, 앞으로 독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미소가 돌 만큼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지 아니면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느낄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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