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오를꽃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8
정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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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계속 바닥에만 머물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보면 그땐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하루하루가 참 괴로운 나머지 옥상만 보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 만약 그런 괴로운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과 의논해보았겠지만 그땐 부모님이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영을 못하는 나라면 한강에 빠진다 한들 살아나지 못하겠지? 아니면 영화처럼 창문과 문틈을 테이프로 꽁꽁 막고 가스를 켜서 질식사로 죽어버리면 좋을까? 혹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서 영원한 잠 속에 빠져 버린다면? 같은 생각들로 그 파릇파릇한 시기를 보내버린 것 같다.

  인생도 컴퓨터 게임처럼 초기화가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사는 게 꽤 쉬워질지도 모른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겠지. 그럼 학교를 갈 필요도, 귀찮은 사람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겠지, 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음 오를 꽃’은 그런 생각하기가 무서운 책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회초리로 내려치는 듯 날카로운 의미를 전하는데…….

  이 책에는 중학생 규와 고등학생 나래가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규는 초기화를 목적으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나래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런 그들이 온 곳은 중천 혹은 중음,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가운데 하늘이었다. 육체를 잃고 령체가 된 두 사람은 49일 동안 그곳에서 머물며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벌로 사지를 물어 뜯긴다든지 영혼을 찢긴다든지 그 모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죽은 자신의 빈자리로 인해 피폐해지고 망가져가는 가족들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엔 우리 주변에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많고 또 그만큼 우리들은 그들의 사랑을 빚지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나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살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가족이란 것은 겉으로 보기엔 참 견고한 집같이 보이지만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라도 사라져버린다면 그 집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사이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없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집은 점차 폐허가 되어갔다.

 이렇듯, 우리들의 존재 하나하나는 참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하고 특별한 권리, 가치를 쉽게 놓아버린다. 거기엔 초기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주변적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친구들의 따돌림도 그렇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없는 가족을 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래의 일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현명한 조치를 취하기만 했었더라도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저기 있어. 사랑을 잃고서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지. 사는 게 아니고, 겨우 숨만 붙어 견디는, 너의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이 저기에 있어. 가서 봐.”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 아빠의 것이다. 나를 깊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힘든 일을 참을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홀로 견디기 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참된 답이다. 되든 안 되든 내 삶을 지키는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나 자신에게도,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삶은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 지독하고 위험해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매우 따뜻하고 너그럽기만 하는 게 세상이다.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면 적극적으로 저항하면 된다. 그것이 사랑을 받고 태어난 우리들의 임무이고, 의리이고, 빚진 사랑을 갚는 방법이다.

 만약 지금 당장 죽는 것을 꿈꾸며 옥상만 바라보고 있을 친구들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삶이 너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있니?

네가 겪어낸 삶을 다른 아디들도 견디지 못하였니?

네 부모와 가족은 남은 삶을 지옥에서 보낼 텐데, 그 지옥을 어떻게 할 것이니?]

 자기 살인의 죄를 지은 규와 나래에게 일원 법신께서 하신 말씀이다.

  “<중략>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을 것이다. 비록 윤회의 형벌로 인해 전생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라.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나 보고 감탄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짧은 생애 동안 너희는, 너희 삶의 보조출연자로 살았다. 이제부터는 주인공으로 살아라. 주인공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끝까지 견뎌 내는 것이 주인공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마음에 담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면 성급하게 결정할 수 없어질 것이고 삶의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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