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과학의 경계 학자들은 토론할 때 ‘SF‘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SF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두 단어의 영문 약자였다. 이것은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하고 모두 우주규칙의 본질과 관련된다.

‘저격수 가설‘은 저격수가 과녁에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과녁의 평면에 2차원 지능의 생물이 살고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과학자가 자신의 우주를 관찰한 결과 우주에는 10센티미터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격수가 잠깐 흥에 겨워 아무렇게나 한 행위를 자신들 우주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본 것이다.

농장주 가설‘은 공포스러운 색채를 띤다. 한 농장에 칠면조 무리가 있다. 농장주는 매일 오전 11시에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 중의 과 학자가 이 현상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1년여 동안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매일 오전 11시에는 먹이가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 했다고 생각하고는 추수감사절 새벽에 칠면조들에게 이 법칙을 공표한 다. 그러나 그날은 오전 11시가 되어도 먹이가 나타나지 않고 농장주가들어와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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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강의들 성말 잘 들으셨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종교를 논할 수 없고, 근대정신을 논할 수 없어요. 종교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테마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없어도 인간은 종교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요. 인간의 종교적과제는 산적해 있어요.˝

무아의 종교불교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시다. 4법인에 의하면 그 하나님은반드시 ˝무아˝ 이어야 합니다. 자기동일성 즉 자성自性이 없는 하나님이어야만 하죠. 이렇게 되면 이론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사실 무신론이란 황제신론을 진실한 신론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하죠. 4법인만큼 우주의 진리를 요약한 법인이 없어요. 간결하게 말씀드리죠.

4법인의 요체는 ˝무아無我˝이 한마디입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무아의 종교˝ 입니다. 나도 무아고, 부처도 무아고, 중도 무아고, 절도 무아고, 다르마도 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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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렇게 생각해보죠. 선종의 마지막 대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임제의현臨濟義玄(?~867)은 이렇게 말했어요: ˝야 이놈들아! 불법이란본시 힘쓸 일이 없나니라(불법무용공처佛法無用功處). 단지 평상심으로 무사히 지내면 되나니라(지시평상무사只是平常無事). 너희들이 옷 입고 밥처먹고(착의끽반著衣契飯), 똥 싸고 오줌 누고(아시송뇨局限送尿), 졸리면 자고(곤래즉와困來), 하는 짓이 다 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임제는 또 말하지요: ˝이놈들아! 뭘 추구하겠다구, 발바닥이 닳도록사방을 쏴다니고 있는 게냐? 원래 너희들이 구할 수 있는 부처라는 게 없는 것이요(무불가구無佛可求), 성취할 수 있는 도라는 게 없는 것이요(무도가성無道可成), 얻을 수 있는 법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무법가드… 法可得). 진짜 부처는 형이 없고(진불무형眞佛無形), 진짜 도는 체가 없고,
(진도무체眞道無體), 진짜 법은 상이 없나니라(진법무상眞法無相). 이 삼법法은 혼융混融하여 하나로 수렴되어 있거늘 이 사실을 분변하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미망의 바다를 헤매는 업식중생業識衆生에 불과하도다!˝
밥 먹고 똥 싸는 것, 졸리면 자곤 하는 것이 선禪이다? 이 깊은 뜻을 조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결코 쉽게 넘어가는 일상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임제는 여기서
˝일상의 삶˝ 그 모든 것이 선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는 모든 종교적환상의 실체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佛도 없고, 도道도 없고,
법法도 없다. 그냥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럼 무엇이냐? 그걸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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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 아시거
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거시기가 난 줄 알았는데,
팔십 년을 지나고 보니 내가 거시기로구나!˝

˝거시기˝를 부처님으로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죠! 어렸을 때 불문에들어와 구도자로서 행각을 시작할 때에는 부처님은 항상 저기 연화좌 위에 앉아있는 거시기(그 무엇)였습니다. 나 밖에 있는 초상화 같은것이었죠. 이제 열반에 들려고 하는 마지막 순간에 생각해보니, 이죽어가는 내가 곧 부처요, 80년을 살아온 이 나가 곧 싯달타였다(八十年後我是渠)라는 것이죠.

거시기를 ˝예수˝로 바꾸어 놓고 보아도 똑같습니다. 보통사람들에 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거시기화 되 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궁극에 도달한 자는 깨달을 것입니 다. 예수가 나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곧 예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내가 곧 십자가를 멘 예수가 될 때에만이 그리스도(=구세救世)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서산이 말한 거시기를 ˝철학˝으로 바꾸어놓고 생각해봐도 동일하죠. 제가 철학과를 들어갔을 때는 물론 ˝철학philosophy˝을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했고, 철학자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저 거시기 초상화가 걸려있듯이, 도상화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 상체계, 그림화 될 수 있는 언어의 건물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인생을 이제 팔십 고개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철학은나의 언어의 걸개그림(=거시기)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쉬는 나의 삶,
이 삶이 곧 나의 철학이다. 한마디로 거시기 철학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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