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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ㅣ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평점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줄여서 <난쏘공>이라고 하듯 이 책에도 별칭이 있는데 이른바 <전론>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짝수 부를 생략하고 읽었다. 생략한 짝수 부는 각각 중국에 대한 내용(2부), 베트남 전쟁을 주로 다룬 내용(4부), 한미 안보체제의 역사와 전망을 담은 내용(6부)이다. 읽다가 포기했으면 포기했지 완독을 나름 독서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제 그 기준이 깨져버린 것이다.
예전 신문에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나는 독서하는 방법까지 누가 가르쳐줘야 하나, 시키는대로 해야 하나하는 삐딱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전부 다 읽을 필요가 없는' 책도 있다는 부분에서는 코웃음까지 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두꺼운 책의 절반을 읽은 나는(분량으로 따지면 절반도 되지 못한다. 짝수 부가 훨씬 두껍기 때문이다.) 은근 슬쩍 내 모습을 정당화하는 나를 발견한다. 책의 절반도 읽지 않고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쓰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앉아있다. 읽은 책 목록에도 올릴 것이다.(물론 양심상 생략한 부분은 적어야 한다.) 사실 앞서서 나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청하 출판사)또한 도덕의 계보만 봐놓고도 같은 짓을 해버렸다.
독서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게다가 이 책은 70년대에 나온 책이다. 이런 사실들로 나를 속이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전부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그런 책이 아님을 알기에 아직도 스스로 부끄럽다.
리영희씨의 글은 사실 처음 읽어보는데 기자생활을 오래 하시다보니 글에 참으로 힘이 있다는 느낌이다. 참 명료하다. 이런 글은 단지 글을 많이 써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1부를 읽으면서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서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리영희 씨의 책을 접해보지도 않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스운 감이 있지만 내 느낌에는 리영희 씨는 한국의 조지 오웰이 아닐까 싶다. 조지 오웰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듯 70년대에 나온 리영희 씨의 글들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기정사실=현실=타당=필연성'의 역사를 거부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는데 사회적으로 만연해있는 오늘날의 '무력함'의 근원이 그 모두를 동일시함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 수 없지 뭐", "사는게 다 그렇지", "살려면 별 수 있냐", "억울하면 출세해", "현실이 그런걸 어떡해" 이런 류의 말들이 저런 공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또 공자의 정명론을 언급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정명론이란 공자가 제왕이 되면 제일 먼저 '바른 말을 쓰도록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데서 나온 말로 리영희 씨는 이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아무래도 기자출신이다보니 그의 언어 감각에 대한 민감성도 분명 한몫했겠다.) 이런 생각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바른 말'이 무엇이냐에서부터 국가가 그런걸 가르치겠다니 권위적이고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또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가하는 철학적 물음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언어가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면 '완벽한 커뮤니케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언어습관에서 비롯하는 온갖 개인적인 오해들과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그릇된 영향들을 바꾸어가는 쪽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바른 말'이란 너무 삐딱하게 볼 것이 아니라 '적절한 어휘' 정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리영희 씨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의 딜레마를 발견했다. 그의 글이 발표될 당시는 물론 기자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매우 취약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자가 자신의 소속 계층을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조금 비약해서 '기자가 배부르면 안된다'는 말과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기자라는 자리가 이것저것 배부를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면 지배층의 논리와 사고방식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조,중,동의 기자들이 받는 연봉과 그 신문들의 보수성은 상당히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게 되면서도 온 사회의 목소리가 그런 소리로 가득 차 있으니(예를 들면 "뭐든 하나만 잘해라")책을 덮으면 곧 잊어버리게 되는 내 머리를 탓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