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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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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게되고, 그것이 확장되어 국가가 형성된다. 국가라는 틀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시대 초월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에서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통해 국가 형성의 기반인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른 지도자상과 국가 체제를 그려낸다. 자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에 쓰여진 책 이지만 인간사회에 내제된 보편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고전이 가지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를 읽는 동안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의 상황이 묘하게 겹쳐졌다. 

 20세기 대한민국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 이후 한반도는 감격적인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타인의 힘을 빌어 얻은 독립은 절름발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해방 후에도 친일 행위에 적극 협력했던 이들이 국가의 경영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들은 6.25전쟁과 반공을 국시로 삼아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친일이라는 맨 얼굴을 반공의 가면으로 가린 그 누군가는 군부의 힘으로 권력을 얻기에 이른다. 독재자는 경제적 성장과 같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대상을 교묘히 제거해갔다. 언론을 통제하거나 혹은 입맛에 맞는 언론을 살아남게끔하는 정책은 불의를 정의로 탈바꿈시키는 그들의 전략이었다. 그를 이어받은 정권 역시 5.18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이 참여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붙이는 일련의 행위들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6월 항쟁을 통해 대한민국은 이러한 사슬을 끊을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역사의 흐름은 한순간에 고쳐지지 않았다. 독재정권의 평화적 민간이양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5월이 광주에서 민간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게엄군 사령관이었다. 반공과 안보의 승리였으나 이는 곧 불의의 승리이기도 했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

 2,500여년전 그리스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면서 스파르타에 의해 30인의 참주가 지배하는 정부가 세워지게 된다. 민주정을 택하고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참정권을 박탈당했으며, 더 나아가 참주들은 권력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들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다행이도 아테네의 세력이 회복되면서 참주들은 축출당하고 아테네는 민주제로 복귀하게되지만, 오늘날과 같은 삼권이 분립된 민주공화제라기보다는 중우정치에 가까웠던 아테네의 민주제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만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이성과 정의가 비이성과 불의에 패배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의가 정의를 대체하는 세상에서 지식인들이 행동할 수 있는 양식은 두가지였다. 지극히 현실주의자가 되어 상황을 옹호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은 이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은 전자에 해당했으며, 상대주의적이며 회의주의적인 논변을 펼쳤다. 3.1운동이 좌절되자 항일운동에서 노선을 바꾸어 국민개조론을 주장했던 친일 지식인들처럼 말이다. 소피스트들은 불의를 정의로 포장해 이득을 취하는 삶이 오히려 정의를 지키려다가 손해는 삶보다 나은 것이라는 논지를 펼친다. 심지어 불의야말로 궁극적인 정의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이러한 소피스트의 논지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권력자들이 불의를 통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국가>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가치관의 혼란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며, 이런 것들을 지켜나갈때 이상적인 국가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체가 욕망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긴 소크라테스는 이와 유사하게 이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지배자가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을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정치체제로 묘사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그리던, 혹은 플라톤 자신이 추구하던 국가의 이상향을 이와 같은 철인정치로 정의한다. 폭정을 가져온 참주제와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간 민주제에 대해 플라톤은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밖에 없었다. 참주제는 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것으로, 민주제는 자유를 넘어선 방종에 가까운 체제로 기술된다.

 친일이 반공으로 탈바꿈하는 상황이나, 군사 독재가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현상, 스파르타에 의해 세워진 참주제가 체제를 유지하기위해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 중우정치에 빠진 민주제가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과 같은 사건들은 현실에 정의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정의야말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철인정치를 통해 국가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가지는 의미는 공동체 형성에 기반이되는 신뢰를 회복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관점이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를 통한 안정적인 국가 체계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의 상대성을 주장하기되면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위한 '기준'이 사라지는데, 이는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보다는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에서 포퍼의 지적처럼, 철학자들도 인간인 이상 실수할 수가 있을 뿐만아니라, 만약 실수하게 된다면 그에대한 비판과 개선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철인정치의 체제가 소크라테스의 이상과 같이 운영될지는 미지수이다. 자신들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믿었기에 체제에 대한 비판을 금지했던 공산주의가 소멸한 것과 같은 종류의 문제를 내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방향성은 시민들 스스로가 결정해야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선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다면, 시민들은 판단력을 상실하고 그것은 아테네의 중우정치와 다를바가 없어지고 만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비록 시작은 온전하지 못했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선거를 통해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는 수준높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그러나 독재권력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명확한 지향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보인다. 이를테면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거대 자본의 논리는 효용성을 중시한 나머지 인간성을 말살하는 문제점을 만들어 냈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규모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한가지만을 고려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의 철인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민주국가 시민 개개인이 지성과 책임감을 가진 철학자와 같이 되는 것이다. 같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는 곳이 있다. 같은 전술을 사용한다고 가정할때, 일류의 축구팀과 동네축구팀을 구분하는 것은 결국 선수 개개인의 기량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체제 역시 그 체제 자체가 잘 설계되어야하는 것은 자명하며 더 나아가 개개인들이  그 체제를 운영하기에 적합할만큼 높은 수준을 가져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한 부분만 덧붙이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기존의 <국가>와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맥락이나 의미 등이 가다듬어져 정말 읽기 쉽게 번역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번역자가 원전을 언어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원전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500년전 그리스, 그리고 라틴어라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번역을 독자에게 선물한 천병희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며 여러모로 부족한 <국가>의 읽고 쓰기를 마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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