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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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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88년, 뉴욕의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는 해체주의자 건축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라는 제목으로 프랑크 게리, 다니엘 리베스킨트, 렘콜하스, 피터아이젠만, 자하하디드, 쿱 힘멜브라우 그리고 버나드 츄미가 참여한 전시회가 열렸다. (해체주의에 대한 이미지 및 정보)


 1980년대는 합리와 이성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때였다. 그도 그런 것이, 효율성과 합리성을 내세웠던 도시계획이 당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슬럼화되는 현상을 보였던 것이다. 또한, 콘크리트와 철골 그리고 유리로 대표되던 현대 건축물이 지역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대량으로 증식되어 각국의 도시들은 그 특유의 매력을 잃어갔다.


 합리성을 넘어선 복잡성, 사각의 그리드 내에서의 형태적 구속을 넘어서는 방법론을 찾기 위해 건축가들은 건축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합리성이나 형태적 구속을 뛰어넘기 위한 근거가 필요했고 그래서 철학과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 자신이 그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젊은 건축가들이 선택한 '정치적'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1900년대 중반까지 살았던 르 꼬르뷔제같은 현대 건축 거장들은 철학적 용어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오히려 건축 그 자체였는데, 이를테면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혹은 건축적 산책로 같은 것이었다.  조금 더 후대 사람이었던 루이스 칸 역시 servant-served(보조하는-보조받는) space라는 용어를 사용해 그의 관심이 건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이런 현대 건축 거장들의 접근과는 달리, 후대 건축가들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철학적 용어에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이른바 해체라 불리는 철학적 방법론은 언어의 의미는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한다는 논지를 끝까지 발전시켜, 중심의 해체, 주체성의 해체와 같은 이슈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이항분리적이고 수직구조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 - 이를테면 합리성을 숭배하면서 만들어내는 독선적인 태도,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 나아가서는 국가간의 억압 등- 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고, 합리성이라는 틀에 갖혀버린 건축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면서 이러한 개념들을 차용했다.     


 결과론적으로 해체주의적 건축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성공하기도, 다른 측면에서는 실패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현상은 2000년대에 미국 부동산 경기가 거품 효과로 인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처럼 보였을때, 이런 해체주의적인 건물들이 제법 많이 지어지고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거품이 꺼지고 불경기가 찾아왔을때, 사각의 틀에서 벗어난 해체주의적 건물을 짓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외관이나 형태 그 자체를 해체하는 방법론은 결국 경제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건축 공간에서 위계의 해체라는 방법을 통해 새롭게 떠오른 주제도 있었다. 이른바 탈중심성이라고 부르는 이 주제는, 좀 더 열려있기를 원하고 또 상호간의 소통이 필요한 공간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SANAA에게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을 안겨준 롤렉스 러닝센터는 공간적으로 열려있으며 또 이용자들의 소통을 유발하는 탈중심적 건물의 예가 될 수 있겠다. (롤렉스 러닝 센터 / 롤렉스 러닝 센터 관련 설명 및 이미지 / 탈중심성의 또 다른 예)


 이러한 1990년대에 해체주의와 함께 건축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퇴색한 듯한) 철학에 대한 관심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밝힌다. 자신들의 형태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철학적 용어의 남용을 막고, 건축가나 학생들에게 논리를 기반으로한 철학적 접근은 무엇이며, 또 철학의 담론이 건축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 책은 명확한 독자를 염두해두고 쓰여졌다. '독자들 - 건축가, 건축 실무자, 학생 - 에게 설계 작업에서 맞닥뜨리는 더 광범위한 철학적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서문에서 밝힌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철학과 건축을 접하기에는 조금은 난해할수도 있겠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를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텍스트를 읽는 것만으로는 철학이 건축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이 되려면 풍부한 시각적인 도판이 첨부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건축과 철학의 관련성을 통시적이며 또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전문 지식의 분업화가 완전히 정착된 오늘날에 두 분야에 대해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추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과 철학의 관계를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내는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충분하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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