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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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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화권마다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문화적 산물이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는 삼국지가 있다면 서구에서는 뱀파이어물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화적 산물이 고정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삼국지가 유교적 가치관과 맞물려 촉한 정통론이 강조되는 것이나 충의를 상징하는 관우가 신격화되는 것과 유사하리라고 봅니다.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 역시 역시 어둠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기본으로 인간의 욕망, 성적인 환상, 공포, 죽음, 선과 악의 대립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시대의 요구에 맞게, 혹은 작가의 의도에 맞게 쓰여진 변화무쌍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의 원형이 되는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한가지는 '두려움'이고 또 한가지는'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경험이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지요. 인간이 두려워하는 두가지 요소인 죽음과 밤에 대해 생각해보면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공포스러운 감정과 연결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 혹은 사후세계는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욕망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우리는 성적인 욕구와 같은 본능적인 것에서부터 영원히 살고 싶은 초월적인 욕구까지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지만,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라는 우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두가지가 뱀파이어를 만들어낸 중요한 재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은 뱀파이어에 대한 다양한 변주곡이 어떤 기원으로부터 시작했는지 밝혀갑니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혹은 히브리 신화에 등장하는 릴리트(23p)는 악행을 통해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사악한 존재입니다. 여기에 유혹적이며 파괴적인 매력을 가진 이미지가 덧붙여지는데, 이를테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선원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몰고가는 세이렌(30p), 로마 신화에서 한밤중에 나타난다 성적인 환상으로 희생자의 생기를 뽑아간다는 인쿠부스와 수쿠부스(36p)를 들 수 있겠네요.

 

 이쯤되면 뱀파이어를 만들어내기위한 가장 기초적인 밑그림이 준비된 셈입니다. 여기에 역사적인 근거와 실제적인 장소를 덧붙이고나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흡혈귀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 중 중요했던 몇가지 재료들을 덧붙이면, 영생을 위해 젊은 이들의 피를 마시거나 목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17p)나 적군들을 창에 꿰뚫고 그 앞에서 식사를 했다는 드라쿨레아라고 불리웠던 블라드 체페슈 3세(134p)와 같은 용맹하지만 잔인했던 실존 인물들의 사례 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되자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흡혈귀물들이 조지프 셰리던 레퍼뉴의 <카르밀라>나(110p) 브램 스토커의<드라큘라>와(128p) 같은 거의 완성된 형태로 드러나게됩니다.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자본과 맞물려 영화화되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됩니다. 오늘날 만들어지는 흡혈귀물들은 앞서 이야기한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재료에 또 다른 것들을 추가해 만들어낸 요리라고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자본주의와 연결된 흡혈귀라는 문화적 양식에 대한 끊임없는 소비라는 측면입니다. 매년 여름의 무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만들어지는 흡혈귀 공포영화와, 인간의 성적 환상을 묘하게 자극하고 한편으로는 충족시켜주기도하는 섹시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뱀파이어물들 끈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고있는 오늘날 입니다. 가벼움과 더불어 끊임 없는 소비를 추구하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체계와 흡혈귀물이 가진 표면적인 공포스러움이나 에로틱함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는 어쩌면 둘도 없는 궁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 붙은 '끝나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는 흡혈귀물이 가질 수 있는 삶과 죽음, 혹은 욕망과 같은 근원적인 주제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소비되고 또 소비되어야만하는 오늘날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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