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 예술과 과학, 역사와 인류학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땅속 안내서
윌 헌트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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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동굴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마존이 선정한 2019년 2월의 책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어서 조금 헛갈릴 수도 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작가 윌이 세상의 아래. 지하를 돌아다니며 그곳 세계를 탐험한 것을 적은 것이다.

 

 

땅속에 지하철과 하수구 또는 터널만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윌의 이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딱히 모험가 타입이라고 볼 수 없는데 어째서 땅속에 취미를 붙였을까?

 

 

세상의 모든 구멍은 밑으로 나 있다.

위로 나 있는 구멍은 그 아래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얘기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저 상상으로만 이해했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땅 아래 세상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곳의 적막과 메아리 때문이었다. 터널이나 동굴에 잠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평행 현실로 탈출하는 듯한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동화책 속 주인공들이 어떤 관문을 통과하여 숨겨진 세상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이 마치 꼭 이러할 것만 같았다.

 

 

 

 

지하세계에 발을 디딘 저자는 알려진 유명한 곳들을 탐험한다.

뉴욕의 지하세계에서 그는 한 사람의 연대기를 찾아낸다.

그라비티로 쓰여진 레브스의 일기를 수집하던 저자는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그를 만났지만 그에게서 자신의 궁금증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프랑스의 지하세계 카타콩브는 정말 신세계였다.

카타콩브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지금도 그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대를 이어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자들이 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지하 문화는 그 바로 위에서 벌어지는 문화와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아주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오랜 시간을 걸쳐 이루어진 지하 세계 카타콩브에는 개성 있게 꾸며진 방과 어디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공연과 비밀리에 벌어지는 클럽 파티들이 있다.

물론 조용히 자신들만의 지도로 지하를 여행하는 탐험족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만약에 프랑스에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루브르도, 에펠도, 개선문도 아닌 땅속의 카타콩브라고 생각했다.

파리 여러 번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다음번엔 이 카타콩브로의 여행을 슬쩍 권해본다~

 

다크존으로의 여행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문화적 관행이며, 우리 종이 존재하지 않았던 수십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적 증거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땅속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굴 벽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동굴과 지하세계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어떤 학자들은 생명체가 지하에서부터 존재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우리가 가보지 못한 저 깊은 지하 어디엔 우리의 조상 격인 생물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지하세계는 인간의 역사에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금기시되고, 두려움의 원천으로 남았다.

 

 

 

가던 길에서 벗어나 신경이 백지상태가 되었을 때, 세상과 우리의 관계는 유연하게 변한다. 아주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던 신념이나 생각의 줄이 스르르 풀리면서 현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우리 자신을 열어놓는다.

 

 

저자는 스스로 하루 동안 깊은 동굴에서 보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체험담은 내게 생생한 호기심을 남겨 주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인간의 뇌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 어떤 빛도 없는 어둠이란 어떤 느낌일까?

만약 내게도 그런 경험이 주어진다면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발밑에 있는 지하 속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거 같아서 그것을 파헤쳐 보고 싶다는 생각과

반면에 그 깊이 묻어진 이야기는 끄집어 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지하 세계에서 있었을 인류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이 책의 5장 두더지 족에서는 땅을 파는 사람들이 나온다.

지하실을 파기 위해 시작했던 땅 파기는 도무지 멈추지 못했다.

파고 또 파고 계속 파서 몇십 년을 땅만 팠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땅을 팠는지는 그들도 몰랐다.

그저 땅을 파고 있노라면 긴장이 풀린다고 했다.

그들이 파놓은 땅의 모습은 개미집과 동일했다니 우리는 개미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이 책에 담긴 땅속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호기심만 남겼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하 세계를 탐험하다 길을 잃었던 경험 앞에서는 마치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문득 지금 내 발밑의 지하 세계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발밑 세계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을까?

우리에게도 윌 같은 지하 탐험가가 있을까?

 

 

 

나는 우리가 '원래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에서 얼마나 멀어졌으며 인류의 가장 깊은 본능과 충동에서 등을 돌렸는지 알게 되었다. 그 오래된 방식이 살아남은 곳이 바로 지하와 우리의 관계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어쩜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

진화의 역사의 비밀이 우리 발밑 가장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지켜져야 할 것임을 이 책은 말해준다.

이 책은지하 세계의 모든 비밀을 다 파헤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묻힌 것들은 그것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만 알고, 묻어야 할 것은 잘 묻어나야 한다.

세상은 알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몰라야 좋은 것도 있기에.

 

 

그럼에도 내 발밑에 존재하는 세계가 어떤지 '맛'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랄밖에.

 

 

윌 헌터의 언더그라운드는

그나마의 궁금증을 조금 덜어주는 존재감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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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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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요리책을 냈던 이 소설가는 그 영역의 끝을 모르겠다.

이번에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라는 미술 에세이를 냈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여러 유명 잡지에 실린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첫 장에 등장하는 제리코의 이야기는 마치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재난을 미술로. 라는 부제가 붙은 이야기는 제리코가 그린 그림을 낱낱이 분석한 자료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그림에 그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니 그림만 보았었던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은 사실화였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신화나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그렸다.

그렇게 알고 보니 그림이 예사로이 보아지지 않는다.

 

 

 

 

 

일화주의자 프로이트.

지그문트의 손자인 루치안 프로이트는 자신을 생물학자라 표현했다.

 

그는 당면한 순간의 현실을 그렸다.

그는 자신을 생물학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동물학자로 표현한 그답게 그의 행동들은 괴짜적인 측면이 많다.

여성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현실의 모습이 아닌 더 나이 든 모습으로 표현했다.

민낯 보다 더한 깊이를 들여다봤기 때문일까?

좀 더 사실적 느낌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포토샵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진처럼 프로이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거 같다.

 

어쩌면 때가 되면 이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예술 작품은 언젠가는 작가의 전기를 벗어나 자유로이 떠돈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이 책엔 16명의 화가의 이야기와 한 편의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화가에 대한 이야기. 는 그림 에세이에 늘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러나 모두 감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에세이에 그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스는 그 에세이조차도 그답게 접근했다.

소설 같고, 에세이 같고, 다큐 같고, 기록 같은 아주 사적인 산책.

그래서 이것이 에세이인지 부분적인 단편소설인지 헷갈린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그림을 들여다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도대체 그림에서 무엇을 느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도대체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야 화가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탐구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줄리언 반스의 그림과 화가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분석을 다룬 책.

 

 

이 책은 저 둘 사이의 경계에 있는 책이다.

아마도 좀 색다른 그림 에세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그림과 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 테고

나처럼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재밌는 일화가 담긴 에세이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균형을 잡은 이 에세이는 그림을 보는 시각에 어떤 부당한 선입견을 주진 않는다.

그저 화가의 그림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 뿐이다.

 

줄리언 반스라는 소설가의 그림 보기는

그래서 한 편의 예술영화를 본 기분을 갖게 한다.

미술 산책이란 제목처럼 줄리언 반스와 그림이라는 공간을 함께 산책한 느낌이다.

 

다른 날 이 책에 언급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나는 줄리언 반스를 떠 올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 같다.

그건 반스가 원하는 그림 감상이 아닐 테니까.

그는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길 원할 것이다.

자신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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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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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가장 큰 세계

아르테의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를 처음 만났다.

박솔뫼 작가의 인터내셔널의 밤으로.

 

 

여자에서 남자가 된 한솔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기로 결정한 한솔의 머릿속엔 생각이 그득하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앉기가 무섭게 자리를 양보해 달란다.

한솔은 말없이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고 탐정소설을 읽는다.

 

 

종교로부터 도망쳐서 부산행 열차를 탄 나미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건다.

누군가 자신을 쫓을 거라 마스크까지 써가며 주의를 기울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그런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부산에 가는 한솔과

도망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나미는 그렇게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준다.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작은책도 박솔뫼 작가도 처음이다.

낯설은 모국어의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뭐지? 이야기는?

 

 

생각의 흐름대로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으로

이 이야기를 하다 어느 순간 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기승전결에 길들여진 내게는 넘을 수 없는 고지처럼 느껴졌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시작과 절정과 끝은 어디란 말인가!

 

 

 

배제를 알지 못하면 배제를 배워야 할 것이다.

밖에서? 세상에서?

 

 

이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배제를 알아야 한다.

한솔과는 다른 이유로.

 

 

새로운 시작이다.

두 사람의.

 

 

자신의 과거와 안녕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나러 가던 그 둘이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던 거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그들은 서로의 시작이 외롭지 않게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주어진 자리 대신 서로의 자리를 바꿔 앉는다.

 

 

새로운 시작과 자리바꿈.

한솔과 나미의 모습이다.

 

 

항구도시 부산엔 외국인들이 많이 다닌다.

어떤 의미에서 한솔과 나미 역시 이방인이다.

과거를 잊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준비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은

불안정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불안을 안정으로 바꾸는 진정제 같은 효과가 있다.

 

 

생각의 타래들이 이 작고 얇은 책을 길게 늘여준다.

마치 범퍼카를 탄 기분이다.

이렇게 쿵

저렇게 쿵

이리저리 요리조리 달리며 부딪히는 순간의 충격이 흥겹게 온몸으로 전해진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거처럼 읽혔던 글들이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방향을 잡아 같이 움직인다.

첫 장부터 작가의 말까지 이 이야기는 기승기승하다.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거 같은 이야기는 일관성 없게 일관되어 있다.

이 독특함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부산행 기차와 탐정소설

부산항 여객선과 일본

자신의 세계에서 도망쳐 나온 젊음

 

 

밤은.

낮보다 이러한 것들을 더 잘 포용하지.

 

 

 

지금은 서로를 보고 있지만 왠지 먼 곳에 있을 각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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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203가지 사랑 이야기
올린카 비슈티차.드라젠 그루비시치 지음, 박다솜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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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박물관.

그런 곳이 있다.

 

이별 후 남겨진 상처 보다 더 오래 곁에 남아 있는 사물들.

버릴 수도 없고, 갖고 있기도 뭐 한.

그럼에도 그것들에 담긴 추억들 때문에 어딘가에 묻어 놓고 잊고 싶은 그런 시간이 깃든 물건.

그 어쩌지 못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바로 이별의 박물관이다.

 

 

 

공적인 공간에 전시된 사소하리만치 일상적인 물건과 그에 얽힌 사연은 완전한 타인에게 일시적인 동료애를 일으킨다. 마치 마법 같다. 아니, 이건 정말 마법이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순간 세상의 수많은 이별가들에게 자신의 이별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사연과 함께 기증품들이 도착하고 있다.

 

 

이별을 멋지게 갈무리하는 곳.

이별의 박물관.

 

 

 

 

 

 

세상엔 참 다양한 이별이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추억의 사물들이 있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와 홀가분함이 그 사물들과 함께 그들의 사연으로 남아있다.

 

 

 

이별의 대부분은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나 떠난 것이다.

죽음과 사고와 서로의 이해에 의한 이별도 있었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담긴 이별.

사라진 엄마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이별.

병이 갈라 놓은 이별.

증조할머니의 오래전 이별이 담긴 엽서.

전쟁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별.

서로의 사랑이 식었음을 이해한 이별.

 

 

 

 

 

 

 

 

재밌는 건 우리나라의 이별이다.

시집살이에서 독립한 며느리가 그 기념으로 고무장갑을 박물관에 보냈다.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받은 자신과 이별하고 인생의 다른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 헐렁해진 청바지를 기증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야말로 웃프다.

억압된 모든 것과 이별하기를!

 

 

 

권태로운 일상이라는 어두운 날들에 작별을 고한다. 후회하고 자책하던 날들에 작별을 고한다. 나는 당신의 길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이별이 담긴 물건 하나를 버리지도 못하고 없애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기도 뭐 하지만 어딘가에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아니 그건 우리 모두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아직도 이별을 이해하지 못해서 괴로운 사람에게 이 전시에 기증된 물건들과 사연이 자신의 이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직도 이별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이 전시는 이별을 털어내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아직도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에게 이 박물관은 공감의 위로를 줄 수 있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해야 하듯이

이별도 이별로 치유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별을 경험해 보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이별의 후유증을 다독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멸종 위기일지도 몰라. 사람들이 이 특별한 감정을, 그리고 그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을 존중하고 보호했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국제사랑보호협회'에 가입하는 건 어떨까?

 

 

사랑의 달콤함이

사랑의 고통으로 변질된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덧붙이며.

 

 

 

[너만 이별한 게 아니란다.

이별 선배들의 이야기가

네 이별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 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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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랑이라고 너에게 말할 거야 - 전 세계 젊은 작가 200명이 다시 사랑을 말하다
밥티스트 볼리유 외 지음, 자크 콕 그림, 김수진 옮김 / 더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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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콕. 일러스트레이터.

그가 전 세계 200명의 작가들을 초대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물었다.

그리고 그 정의에 맞는 200개의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이 책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모두 각자의 사랑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사랑을 꿈꾸면서 이럴 거야라고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사랑스런 그림과 짤막한 사랑의 단상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사랑이 묵혀지면 생활이 되는 법이다.

사랑은 말하지 않으면 사장되는 것이다.

이 책엔 200가지 다른 버전의 사랑의 느낌들이 담겨있다.

 

 

그러니 넌즈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때

사랑을 잊고 사는 사람에게 사랑의 온기를 불어 넣고 싶을 때

사랑을 하는 건지 생활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졌을 때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려는 사람에게

사랑은 모르지만 그 시작점에 있는 이들에게

아니면 건조해진 내 마음에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200가지 사랑의 레시피들을 읽다 보면 나도 그런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이쯤 어디인지 가늠해 보게 된다.

 

사랑을 해본 사람의 정의

사랑을 꿈꾸는 사람의 정의

사랑을 떠난 사람의 정의

사랑이 떠난 사람의 정의

사랑을 잃은 사람의 정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정의

사랑의 철학적인 정의 등등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사랑을 가르쳐 준다.

 

 

같은 재료를 200가지로 요리할 수 있는 사랑의 레시피

 

여전히 사랑이라고 너에게 말할 거야.

 

사랑처럼 불게 물들어가는 가을에 손에 넣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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