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史 : 백제,일본 그리고 왜 - 김산호 회화극본
김산호 지음 / 여시아문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책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민족사관의 입장에 섰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 근거가 뚜렷하고 체계가 서 있다. 그런 내용을 아름다운 유화에 담아냈으니 금상첨화로세. 화풍의 대부분은 서양화(유화)지만, 일부 그림들은 또 일본 전통 화풍을 채용해서 흥미롭기도 하다.

<대쥬신제국사>를 본 지 오래 되어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그 책 서문에서 김산호 화백이 이 그림들을 그린 것은 단순히 역사적 고증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뭔가 영감 같은 것을 받아 그렸다고 설명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나도 그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딱히 꼬집어 이유를 말할 수는 없으나 정말 뭔가 실제로 일어난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영감에만 의지하지 않고, 그 사이에 쏟아져나온 새로운 학설들을 열심히 흡수하여 보강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칭찬할 만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 김씨왕권의 유래를 선비족(모용씨) 별동대에서 찾고 있는 점. 신라 왕릉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이 흉노가 몽골고원과 시베리아에 남긴 유물들과 놀랄 만큼 유사성을 보이는 점이 이 이야기를 읽고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신라의 기원이 아니라 일본과 백제의 관계이다. 논지의 중심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과 일치하고 있으므로, 이해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백제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대방고지(오늘날의 요령성 서부 해안가) 이전 역사, 즉 북만주에서 소서노와 비류 세력이 고구려와 공존하던 시절부터 추적하여 그려낸 것은 처음 보는 시도라 대단히 신선했다. 倭의 어원이 위(上)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처음 듣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합리적 설명이라 생각되었다.

나아가 百濟를 '밝지'(밝은 땅, 태양의 나라)로 풀어낸 것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고구려의 어원이 '가우리'일 것이라는 주장을 내가 처음 접한 것도 <대쥬신제국사>에서였는데, 지금은 그 주장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백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우리말의 음차일 것이란 생각만 했지 정확한 어원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김산호 화백의 설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었다. 위국(倭國) - 위밝지(倭百濟) - 나라밝지(奈良百濟)로 이어지는 계통적 설명은 백제사에 얽힌 수많은 수수께끼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틀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도가 훌륭하다는 것. 화백의 작품이니만큼, 역사 교양서에 수록되는 보통 지도들보다 훨씬 큼지막하고 유려하게 고대 세계 각 세력들의 분포와 이동로가 잘 그려져 있다. 올컬러 인쇄에 고급용지를 사용해서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소장용으로 손색이 없다.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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