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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문자가 신성시 되던 때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성시 되던 통치 계층과 신관들만이 문자를 이용해 한정된 인간의 기억을 뛰어넘어 결국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출판 매체는 바야흐로 정보의 광범위한 확장을 가져왔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와 최고의 목판 등등이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문명에 끼친 영향에 비함 뭐라 말인가. 종교 경전 인쇄에만 쓰인 인쇄술이 지닌 가치가 얼마나 높으면 높단말인가.)

17세기 18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산문이 탄생하고, 소설이 등장하여 팔리면서 모 학자는 돈 주고 사보는 소설에 대해 '돈을 주고 교양과 도덕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책 값이 5,000원 이라면 우린 5천원 어치의 도덕과 교양을 돈을 주고 사게 되었다는 소리이다. 사실 책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 - 졸부가 화려한 금박의 하드커버 책들로 서재를 장식하는 것을 무시하면서도 - 우리가 내심 흐뭇하게 책을 읽은 데에는 그만큼 지식과 교양이 내지는 도덕이 늘었다는 자기만족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무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들어 롤로메이는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서 현대인들은 길을 몰라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이 너무 많아 길을 잃는다,는 통철을 또한 보여준 바 있다.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며 (복사, 인쇄술, ) 무한대로 확장하는 시대에서 과연 개개인들은 어느 길로 가야할 것인가. 거기다 이제 한 술 더떠 개개인들이 무한대로(?) 자신의 글을 올려 보급시킬수 있는 블로그라는 수단이 등장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가히 빅뱅에 가까운 정보 폭발 시대에 살며 나는 과연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고.

고등학교 때, 우리가 재잘재잘 떠들때마다 고전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러셨다. "말로써 말많으니 말많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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