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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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TV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청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첫방송부터 본방사수를 하려고 노력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비정상회담>과 <썰전>이 그러하다. 훤칠한 남자들이 한 자리에서 지성과 감성 그리고 본능을 다투는 모습이 꽤나 볼만 하다는 이유가 첫째요,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들이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점이 둘째요, 그 사건들 중 제일은 가장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는 점이 세번째 이유이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며 두 프로그램에 대해 그러하듯이 책 역시 시리즈를 모두 읽어내겠구나 알아차린 것은 [로마의 일인자]에 위에서 꼽은 세 가지 이유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처음 읽는 로마사]를 미리 읽어둔 것은 에피타이저로 훌륭했다. 자칫 길고 긴 이름의 인물들의 대거 등장에 당황할 뻔 하였으나 이미 머릿속을 적당히 워밍업 해 둔 터라 당황하지 않고 순조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저 곧 펼쳐질 장황하고 드라마틱한 로마의 이야기에 빠져들기만 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기원전 110년으로 가 네 남자, 즉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유구르타를 만났다. 김영하 작가가 언젠가 말했듯 소설에서는 괜히 쓰이는 문장이 없다고 하여 초반에 집중해서 읽었으나 쏟아지는 긴 이름들의 행렬에 잠시 생각을 멈춘 적도 있었지만 가이우스가 술라를 처음 만난 그 순간만은 놓치지 않았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가이우스의 모습을 보고, 곧 두 사람이 굉장한 인연을 맺겠구나 싶었는데 역시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이 소설로서도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한다. 곳곳에 배치된 작은 유머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아아! 저기 주목해야 할 자가 있구나. 젊지만 완연한 성인의 모습을 갖춘 그자는 기사 대열 가장자리에 서 있었지만, 토가 아래 튜닉의 오른쪽 어깨에 기사계급을 상징하는 좁은 띠조차 없었다. 젊은이는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내 포룸 로마눔을 향해 카피톨리누스 언덕길을 내려갔다. 잛은 순간이었지만, 마리우스는 젊은이의 비범한 연회색 눈동자가 반짝 빛나더니 이내 불꽃처럼 타오르며 시뻘건 피투성이 광경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았다. 전에 본 적이 없는 자였다. 마리우스는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범상한 자가 아니다. 여성미와 남성미를 동시에 갖춘 양성적인 외모, 그리고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 피부는 우유같이 희고 머리칼은 떠오르는 태양빛이었다. 마치 아폴로의 현신인 듯했다. 진정 아폴로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온 것인가? 아니, 신은 결코 방금 이 자리를 떠난 인간과 같은 깊은 눈빛을 띠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고통받는 자의 눈빛이었다. 신이 되어서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신이 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35-36쪽)

 

과해도 너무 과한 찬탄이 아닌가? 앞서 언급한 다른 책에서 이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조금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그 책에서 술라라는 인물의 매력이 매우 건조하게 언급되었기에 이런 마리우스의 마음은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아마 두 사람의 관계 변화에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작가는 이렇게 둘 사이를 자꾸만 붙여놓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니면 작가 자신이 술라에 대한 호감과 평가가 저러할 지도 모르겠다. 술라의 행동과 마음을 읽자면 왠지 오페라의 유령이 떠오르리만치 섬뜩하기도 한 터라 앞으로의 변화가 가장 기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카이사르는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역사 시기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카이사르의 시기를 모두 접착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온화한 성품과 정확한 정치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우리 정치사에 있었을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있을까? 씁쓸하고 부러웠다. 함부로 판단할 일은 못되지만 당파싸움과 이권보다도 먼저 가문의 품격이 느껴지는 정치 명가가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단박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씁쓸한 일이다. 아무튼 카이사르 집안의 역할로 로마 역사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마리우스와 술라, 기존의 중심 집단이 아닌, 당시 만연했던 뇌물과 공작이 아닌 정책과 신념으로 로마의 일인자가 될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은 비단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만은 아닐 것이다. 곧 다가올 총선에 기존 권력에 조금이라도 빌붙어 마케팅을 하는 저급한 정치 전략을 펼치는 우리의 정치인들을 보자면 응원은 커녕 <썰전>의 전원책 변호사의 말처럼 '올단두대'로 보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어 어디선가 마리우스나 술라와 같은 인물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펠릭스'와 함께 등장한다면 간절히 응원하지 않고는 못 살 테니까. 그런 면에서 지난 대선에 그런 응원을 받고 등장한 한 사람이 주는 실망감은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유구르타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런지. 개인적으로는 유구르타의 냉정하고 강단있는 모습이 그 보단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유구르타에게 부족한 것은 '펠릭스'이되 그 정치인은 이래저래 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마 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을 마리우스라고 믿는 판단력이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구태의연한 시대에 자신만이 신진이라고 내세우지 않은 마리우스의 생각('구태의연한 원로원, 구태의연한 인민, 구태의연한 로마, 구태의연한 마리우스.' 37-38쪽) 은 충분히 배울만 한 일이다. 자신을 먼저 살필 일이다.

 

 [로마의 일인자 1]을 생각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문제적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덕분에 책을 평소보다 깊게 읽게 되었다. 지금은 2권을 읽는 중인데 2권을 읽기 전에 노트에 정리한 1권의 내용과 생각을 틈틈히 읽게 된다.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이기에 스스로가 정리해 놓은 내용이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진행될 로마의 역사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지만 굉장히 묵직했고 그래서 앞으로의 내용이 더 기대가 되었다. 그 기대만큼 펼쳐질 로마의 이야기가 찬란할 것임을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에 그러하지만 우리의 시대는 그러하지 못해 맘이 아프다. 옳은 행동에 대하여 지지를 보내고 옳은 행동을 하는 자에 대하여 박수를 쳐주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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